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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역해 :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역해 : 종요의 대서사시>
ⓒ 경연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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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 무제(재위 502~549) 때에 천자문(千字文) 열풍이 불었는데, 양무제는 <천자문>을 ‘신이 내린 글’이라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에 천자문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오랜 동안 학습교재로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여왔다. 옛 위인들의 전기에는 세 살 혹은 다섯 살 무렵부터 천자문을 배웠다는 기록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이 <천자문에 대한 평>에서서 “천자문은 어린아이가 배울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천자문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기대승이 5살 때 천자를 다 외우고도 천지현황(天地玄黃)의 본뜻을 몰라 3년간이나 고심했다는 이 책의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천자문은 전후문맥과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천자문의 첫 구절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이 동양철학의 바탕인 <주역(周易>에서 인용한 것을 비롯해, 각 구절이 모두 '시경', '서경', '효경', '예기', '논어', '춘추', '맹자', '사기' 등의 동양고전에서 발췌하여 사언절구에 압축적으로 의미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천자문>을 ‘신이 내린 글’이라고 하면서도, <천자문>에 대해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글’이라는 오해와 무지가 천 수백 년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사서삼경을 비롯한 각종 경전들에 대해서는 集註(집주)니 傳(전)이니 하여 수많은 해설서가 나왔음에도, 지난 천 수백여 년 동안 <천자문>에 대해선 ‘왜 신이 내린 글’인지를 해설한 책이 없었다.

하지만 10월 발간된 <종요(鍾繇)의 대서사시 천자문 역해(易解)>는 천자문이 저자인 종요의 인생역정을 토대로 문학(文)과 역사(史), 철학(哲)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일장(一章 : 章은 千의 단위)의 대서사시(大敍事詩)로서 탁월한 문학작품임을 밝혔다. 또한 천자문의 각 구절이 인용된 출처를 일일이 밝히고, 각종 경전(經傳)에서 관련내용을 발췌하여 해설함으로써 왜 천자문이 ‘동양고전 종합입문서’인가를 밝혀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기존의 <천자문> 해설서와 다르다. 천자문의 저자가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아니라 위(魏)나라의 종요(鍾繇:151~230)라고 본 것이나, 천자문이 단순한 사자성어 선집(選集)이 아니라, 일천자를 일관(一貫)된 내용으로 전개한 완결된 글로써, 내용 전개에 따라 총 13절로 분류된다고 한 것이 그렇다.

특히 이 책은 인문학적 측면에서의 천자문 해설을 넘어 최초로 낱글자 파자해(破字解)를 통해 뜻글자인 한자의 창제과정까지 밝혀냈다. 파자해(破字解)의 고전인 <설문해자>와 가장 권위있는 자전(字典)인 <강희자전> 2008년도 수정판과 <주역>과 <서경> 홍범의 음양오행론에 의거하여, 한자가 천문과 지리에 의한 象(상)과 數(수)와 理(이치)가 담겨있는 <주역>의 괘(卦)를 근거로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日과 月은 해와 달의 형상을 본뜨고 음양의 ‘󰁌(음),一(양)’을 담아낸 글자이며, ‘士(선비 사)’는 “<설문해자>에 士는 一과 十으로 이루어졌다. 공자는 열가지 사항을 정리하여 한가지로 합하는 이를 士라 하였다”라며, “自一至十, 聞一知十, 一以知十하는 사람을 뜻한다”이다.  

나아가 한자라는 뜻글자를 창제한 민족이 동이족임도 밝혔다. '주역'의 괘(卦)를 만든 복희씨가 동이족이고, 최초의 한자라고 일컬어지는 갑골문자 또한 동이족인 세운 은나라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낱글자 속에 담긴 상수리(象數理)의 이치에 의해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전통은 동이족의 후손인 우리민족에게 면면히 이어져왔다. 우리나라의 태극기에 '주역'의 핵심사상이 담겨있는 태극과 괘를 사용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달력의 ‘일월화수목금토’가 '주역'의 음양오행을 나타내는 것이나, 중국이나 일본이 미국을 米國이라고 하는데 반해 우리는 美國(美=羊+大의 글자로 羊은 '주역'에서 서방을 의미한다. 즉 美國은 서방의 큰 나라라는 뜻이다.)이라 표기하는 것이 그렇다.

이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이며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주역'을 근거로 천자문을 해설하고 또한 낱글자를 파자(破字)하여 글자의 어원과 뜻을 밝혀내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동안 점서적인 측면으로만 치우쳤던 '주역'을 경세(經世)철학으로서의 경전(經傳)이라는 본래의 위치를 되찾게 해주었다.

'공자가어'에서 “孔子, 晩而喜易 韋編三絶(공자가 말년에 역경을 즐겨보시어 대나무 책 끈이 3번이나 끊어지다)라고 한 것이나, 공자가 말년에 '주역' 십익전(十翼傳)을 저술하여 '주역'을 완성시킨 점을 제시함으로써 '주역'이 결코 점만을 치는 책이 아니라 유학사상의 뿌리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 ‘易解’는 '주역(周易)'으로 풀이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바꿀 역(易)’이라는 뜻에서 기존의 도식적 해설을 탈피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즉 천자문은 주흥사가 아닌 삼국시대 위(魏)나라 때의 종요가 지은 작품이며, 일장(一章 = 千字)의 대서사시로서 탁월한 문학작품이자, 동양경전을 압축적으로 담아놓은 동양고전 종합입문서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천자문'이 사언절구의 운율시 형식으로 125개의 문장이 모두 바깥짝이 ‘ㅇ운’과 ‘ㄱ운’ ‘받침 없는 운’으로 구성되었기에, 운이 맞지 않는 세 곳의 글의 순서를 바꾸어 바로잡았다. 또한 많은 해설서에서 잘못 읽고 있는 推(퇴→추), 索(삭→색), 屬(속→촉), 綏(유→수)의 음을 바로잡았다.

끝으로 쪽수마다 천자문의 해당 글자를 쪽수와 함께 배치해 예로부터 천자문이 순서를 매기는데 사용되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끝으로 이 책은 문학사적으로나 어학사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해설하였기에 (600쪽) 가히 한문공부의 토플 책이라고 할만하다.

덧붙이는 글 | 이달원 기자는 <천자문 역해 : 종요의 대서사시>의 편자입니다.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역해

이윤숙 지음, 이달원 엮음, 경연학당(2008)


태그:#주역 ,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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