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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당시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근대건축물이 생길 수 없을까요. 계속 성형을 하며 젊음을 지키는 도시와 손수 가꾸며 곱게 늙어가는 도시, 과연 우리가 바라는 도시 모습은 무엇일까요. 여기 오랫동안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다 쓸쓸히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도시가 곱게 나이를 먹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부산타워는 1973년 만들어진 국내 최초 전망타워로 서울n타워보다 건립연도가 빠르다.
 부산타워는 1973년 만들어진 국내 최초 전망타워로 서울n타워보다 건립연도가 빠르다.
ⓒ 부산시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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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자랐으며, 부산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첫번째 해운대·광안리 등 부산 전역에 흩어진 해수욕장에서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물장구치던 기억, 두번째 구도(球都)의 도시답게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던 기억, 세번째 영화거리 남포동과 수산시장 냄새가 가득한 자갈치 시장에 관한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산타워가 있는 용두산공원에 관한 기억이다.

특히 부산타워와 용두산공원은 내게 특별한 장소이자 추억의 장소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했던 90년대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남포동 극장가에서 영화를 본 후 늦은 시간 용두산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곤 했다. 특히 용두산공원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40계단은 남달랐다.

용두산공원에 도착하면 부산타워와 함께 1973년 만들어진 꽃시계가 맞이한다. 꽃시계는 정확히 부산타워 정면에 놓여 타워의 전체 미적 감각을 높여준다. 꽃시계 앞에서 수많은 청춘 커플들이 사랑을 맹세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나에게도 용두산공원 꽃시계는 젊은 시절 열병과 같이 지나갔던 첫사랑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장소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첫 사랑이 수줍게 사랑을 받아들였던 장소가 바로 그 곳이다.

당시 영화를 본 후 용두산공원에 올라 우뚝 서있는 부산타워 아래로 펼쳐지는 부산항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 등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용두산 공원에 오르면 젊은 날 좌절과 설렘 등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지금은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남포동을 찾은 많은 외지인들에게도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추석 혹은 설날 때 외지에 나갔다 고향에 돌아온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용두산공원에 올라 함께 나눈 추억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나 친구들에게 지나간 추억과 그 추억을 묻은 장소들은 영원히 그 시절에 멈추어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것 같다. 

이런 기억들은 단지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만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구 줄고 경제 최악... 탈출구는 용두산 재개발?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 부산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용두산공원 재개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부산시청이 중구 광복동과 남포동 근처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옮긴 이후 용두산공원 주변 지역 상인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부산 지역 중심 거리로 이름을 떨치던 광복동과 남포동은 예전 활기를 잃어버리고 침체에 빠졌다. 영화 중심 거리이자 쇼핑 중심거리로 부산을 이끌던 이 두 지역은 서면과 해운대에 밀려 그 위치와 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게다가 부산은 서울 강남과 강북처럼 동부산권과 서부산권으로 나눠져 경제 격차와 문화 혜택 차이가 지역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부산 인구 감소와 일자리 감소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1995년 389만명에 이르렀던 부산 인구는 2008년 6월 360만 명으로 13년새 3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최근에는 인천이 부산을 제치고 대한민국 2위 도시 자리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지역에서 위기감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부산시가 대책을 찾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경제 문제와 지역 문제, 균형 발전 문제를 위해 부산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계획 중 하나가 용두산 공원 재개발 계획이다. 부산시는 총 공사비 1조6천억원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투자하여 용두산 공원 6만9119㎡와 주변상업지역 7만5190㎡를 포함해 총 14만4300㎡를 완전히 재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부산 지역에 새로운 명물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부산시 계획은 얼핏 보면 나쁜 계획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용두산공원을 재개발하면서 디자인이 수려한 주거용 고층 건물을 세워 부산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부산지역 시민들에게도 귀가 솔깃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 기존에 있던 부산지역 대표 랜드마크인 부산타워를 허물겠다는 발상이다.

나 역시 부산 사람이기에 부산시의 고심에 찬 선택을 이해한다. 하지만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 부산을 대표하던 기존 랜드마크를 철거하겠다는 자세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랜드마크란 그 지역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랜드마크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표지물이라고도 한다. 주위의 경관 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쉬운 특이성이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 특이성은 형태나 배경과의 대비성, 공간적 배치의 우수성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특히 배경과의 대비성은 색채 ·역사성 ·청결감 ·디자인의 특수성, 움직임 ·음향 등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서울 시내에 들어섰을 때 남산 타워나 역사성이 있는 서울 남대문 ·경복궁·광화문, 여의도에서는 고층빌딩인 대한생명 63빌딩, 강남에서는 한국종합무역센터빌딩 등은 훌륭한 랜드마크이다." 두산백과사전

부산 사람들이 가장 기억할 상징물은 과연 무엇일까 

부산시는 용두산 재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계획에 따르면 지금 부산타워는 철거된다.
 부산시는 용두산 재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계획에 따르면 지금 부산타워는 철거된다.
ⓒ 부산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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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의 사전 의미를 찾아본 후 부산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물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나에겐 부산타워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이라면 부산타워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부산타워는 고향처럼 친근감을 주는 상징 건축물이다. 달리 말하면 부산 사람들이 타지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보고 느낀 반가움이 아닐까 싶다.

부산타워는 1973년 대한민국 최초 전망대로 만들어졌다. 당시 홍익대 교수로 유명한 건축가였던 나상기 교수가 부산항을 상징하는 등대를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하였다. 디자인이 부산의 항구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면서 단시간에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부산타워는 역사성과 미적 가치를 따질 때 충분히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부산타워는 오랫동안 부산 중심가였던 중구 상징물이기도 하다. 중구엔 남포동이 있다. 영화도시 부산을 만든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한 곳이 남포동이다. 남포동엔 영화배우 동판과 기념물 등 영화도시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적지 않다. 별다른 문화생활이 없던 시절 남포동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용두산까지 걸어가면서 하루 산책이나 데이트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부산타워는 부산 시민들에게 추억이 가득한 장소다. 보통 추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 깊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간혹 시간이 지나면 추억을 함께 나눈 사람을 그리워하고 추억의 장소를 떠올리면서 미소짓기도 한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부산타워는 랜드마크로서 35년간 부산과 함께 했다.

이런 부산타워가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속 건축물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부산시가 공청회를 몇 차례 했다곤 하지만 충분히 의견을 들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재개발도 좋다. 하지만 최소한 보존 가치가 있는 역사 건축물을 안고 가야 부산 문화가 좀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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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용두산 공원, #부산타워, #40계단, #꽃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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