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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라스 까사스가 스페인 국왕에게 제출한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서’를 보면 신대륙 도착 이후 40년 동안 1200만 명 내지 1500만 명의 원주민이 학살되었다고 나오지요.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일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일들이 많지요.

 

그 학살은 20세기에 아우슈비츠라는 곳에서 정교하고 빠르게 이뤄지죠. 몇 안 되는 유대인들은 지옥으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뒤 끔찍한 인간상을 기억하고 증언했지요.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006. 창비)로 어두운 인류사와 한국근대사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네요.

 

쁘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써서 아우슈비츠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지요. 지은이 서경식 교수는 쁘리모 레비의 책을 읽으며 그가 겪어야 했을 고뇌와 아픔을 헤아려보는 가슴 저린 작업을 하지요. 차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는 쁘리모 레비를 찾아가네요. 그를 따라 가다보면 일그러진 인류근대사와 한국의 잘못된 역사가 드러나지요.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파시즘 정권이 들어서자 쁘리모 레비는 반파시즘 운동을 하지요. 그러던 그는 스파이에게 속아 어이없이 체포되어요. 다른 빨치산들처럼 바로 처형을 당하지 않고 ‘유대인’이기에 아우슈비츠로 보내지지요.

 

그때까지 유대인으로서 인식은 ‘주근깨’ 정도의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쁘레모 레비는 174517라는 수인번호를 받고 인간이 만든 지옥으로 보내지지요. 그는 아우슈비츠의 몇 안 되는 생존자였으나 거기서 겪은 일들은 평범하게 살지 못하게 하네요. 기억해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며 살아남은 그는 다른 생존자들에 비해 유쾌하고 명랑했으나 진실을 고발하고 끝내 자살하지요.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쁘리모 레비 뿐 아니라 서경식 교수에게도 벗어지지 않는 굴레였지요. 인류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파괴된 20세기를 겪으면 사람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지요. 위 질문은 현재도 진행형이니까요. 

 

인간존엄파괴와 인간성 상실은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후발 제국주의국가 독일은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가 오랫동안 유럽의 ‘바깥’에서 벌였던 일을 짧은 기간에 ‘안’에서 터뜨린 것이니까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학살할 때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지요. 그것이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형태로 유럽에서 벌어지자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되었지요.

 

과거사 아우슈비츠, 끈질기게 부정하고 쉬쉬해

 

그렇다고 독일에게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 되지요. 독일 국민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 책임’이 있어요. 독일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뽑은 지도부가 일으킨 사태를 광기서린 지도부만을 탓해서는 안 되지요. 독일 국민들의 무관심과 방관이 유대인 학살의 숨은 주역이니까요.

 

독일이 처음부터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어요. 196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라인강 기적’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만이 칭송될 뿐 나치 시대의 죄를 독일 스스로 밝히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지요. 1968년, 68혁명 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일어났지요. 이것은 ‘세대 간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심각했다고 하네요.

 

나치만행을 덮어두지 않으려는 지식인들의 솔직한 고백과 젊은이들의 진실을 향한 열정으로 아우슈비츠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지요. 지금이야 수백만 명을 죽인 나치의 만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가스실은 없었다는 황당무계한 아우슈비츠 부정론은 전쟁 직후부터 끈질기게 이어져왔대요. 서독에서 나치의 범죄를 부정하는 발언은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유로 1985년 이후 형법상의 처벌 대상이 될 정도로 과거를 부정하는 발언은 끊이지 않았지요. 법률로 제한할 만큼.

 

나치 문제에 대해서 나라 지도부가 고개 숙여 사과와 용서를 구했던 독일, 나치를 진솔하게 가르치는 독일교과서를 보면서 한국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국 역시 근현대사에 커다란 상흔들로 셀 수 없는 아픔들이 있는 나라니까요. 

 

일본인의 긍지를 지키려 위안부 삭제하라는 목소리

 

정신대 문제는 한국 일본 모두 부정하고 덮어두려고 쉬쉬하지요. 가해자가 사실을 인정을 하지 않기에 1992년 8월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정신대’였다는 산증인이 나타나지요.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이지요. 김학순 할머니 이후 아시아에서 피해자의 고백이 이어졌지요.

 

산증인들이 나타나고 일본의 관여를 증명하는 증거자료가 발견되어 일본 정부는 종래의 공식견해를 바꿔서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했지요. 그렇다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공식으로 사죄하거나 보상에 응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 뿐이 아니지요. 일본인의 긍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교과서에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삭제하라고 목소리 높여 요구하기 시작했지요.

 

과거를 잊고 싶은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지요. 일본은 그때는 ‘시대’가 좋지 않았고 ‘전쟁’은 그런 것이며, 일부 ‘광신 군인’이 폭주한 것이지 국민도 일왕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심지어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는 일본이 아니었으면 러시아가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결과는 불행했지만 일본은 뒤처진 조선인을 일본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 선의를 인정하라고 큰소리치지요. 

 

그들은 실제 ‘증오’의 원인이 된 역사와 사회 현실을 바꾸기는커녕 가해자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어조로 과거를 잊어버리라고 강요하지요. 지금은 서로 ‘미래 지향’하여 앞으로 ‘공생’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죠. 좌편향된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어떤 사람들은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쓴 말을 거듭 읽어보며 아이들의 머리 안을 두고 다투는 형국을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앞이란 말인가? 그들이 확신하는 바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자신들이며 낡은 것은 내 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새롭다’는 것은 경제 ‘풍요로움’과 동의어이며, 그것이야말로 ‘정의’보다 우선하는 척도인 것이다. - 책에서

 

미래 지향, 자랑스러운 역사를 외치는 한국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으로서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틈바구니에서 두 곳에서 다 소외받았지요. 그는 일제침략으로 한국인들이 받은 고통과 군부독재의 탄압, 거기다 ‘고향을 잃은 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움까지 아는 사람이에요. 치열하게 시대를 아파한 사람으로서 쁘리모 레비를 민감하게 그려내지요. 

 

지은이는 자신의 가슴 아픈 과거를 조심스럽게 얘기하지요. 지은이의 두 형은 ‘모국 유학’을 가게 되나 1971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박정희 3선 저지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북’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검거되지요.

 

큰 형 서승은 고문에 굴복하여 학생운동에 타격을 입힐까봐 분신자살을 했으나 실패하여 안면과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고 붕대를 둘둘 감은채로 법정에 나타났다고 하네요. 작은 형 서준식은 혹독한 더위와 추위, 불량배들의 폭력, 반복되는 고문, 절망스런 저항, 이어지는 자살을 회고록에 쓰지요.

 

형들이 고문을 받고 있다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장기화되는 감옥 안 단식투쟁으로 형의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던 그 때. 재판 방청을 위해 한국에 달려갔던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앤, 화상을 입어 귀도 없더라’며 통곡을 들었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는 분노하기보다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하지요. 그렇기에 쁘리모 레비라는 거울을 내밀면서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을 거네요.

 

'한국의 유대인', 여성·빨갱이·호남·노동자

 

판사보다 증인이고 싶다는 쁘리모 레비가 죽은 뒤 무덤에는 174517만이 적혀있지요. 죽은 자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쁘리모 레비 부인은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남을 거부하지요. 외부의 폭력과 억지로 ‘유대인’이 된 쁘리모 레비는 결코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한국 역시 여성, 빨갱이, 호남, 노동자라는 ‘한국의 유대인’들이 있으니까요. 

 

홀로코스트는 ‘구워서 신전에 바치는 희생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로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을 순교자로 여기고 죽음을 미화하는 단어이지요. 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최근에는 대파괴, 파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쇼아’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요.

 

대학살을 마주보고 기억해야지 다시는 ‘쇼아’가 일어나지 않지요. 언제나 망각은 불행한 일들을 부르는 주문이지요. 한국에서도 가슴 아픈 역사들을 잊으려는 움직임이 있지요. 과거가 없이 미래는 있을 수 없답니다. 바삐 가기보다 조목조목 짚어가며 살펴가길 바랍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창비(2006)


태그:#역사교과서, #쁘리모 레비, #서경식, #유대인학살, #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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