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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4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욕설 파문이 벌어졌을 때 나는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유 장관의 욕설 파문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국감장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 YTN 진상 조사단 구성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으로 '인화성 가스'가 가득 찬 상태였다.

 

오후 5시 무렵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이명박 졸개' 발언이 나왔다.

 

"10년 전 부도난 국가 넘겨받았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8개월 만에 600억불 까먹었다. 한나라당은 반성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난 10년이 그립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은 참회해야 한다. 정권 잡자마자 주가 3000 얘기했다. 그러기는커녕 8개월 만에 40% 삼켰다. 정권 사기극 벌였다. 이명박 대통령 어디 나와 웃을 자격 없다. 장차관들,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낙하산 대기자들, 다 '이명박'의 '휘하'들, '졸개'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가해자'들이다."

 

국감장의 '인화성 가스'에 불꽃을 튀겼다. 여야 의원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결국 오후 5시 55분께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이 '감사 중단'을 선언했다.

 

고 위원장은 회의장 중앙으로 걸어 나와 유 장관 쪽으로 갔다. 감사가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유감 표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건은 바로 이때 벌어졌다.

 

얼굴이 굳어진 유 장관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 위원장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위원장님 이게 뭡니까. 저희 정말 겸손하게 감사받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증인 발언대 근처에 서있던 3~4명의 사진 기자들이 이 순간을 놓칠 리 없다.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직업적 본능'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순간 갑자기 유 장관이 사진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사진 찍지 마…이씨, 찍지 마", "성질 뻗쳐서 정말~." "사진 찍지 마."

 

많은 언론에는 'XX'으로 처리를 했는데, 내가 듣기에는 '이씨ㅂ'이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문방위 회의실에 앉아 유 장관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취재중이었다. 나도 유 장관에게 욕설을 당한 것 같은 불쾌감이 들었다.

 

내 귀에 유 장관의 반말은 이렇게 들렸다.

 

'취재하지 마. 취재 수첩에 쓰지 마, 이씨~.'

 

민주당 의원에게 뺨 맞고 기자들에게 화풀이?

 

 

유 장관은 26일 욕설 파문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 기자가 "당시의 일에 대해 현장에 있었던 기자에게 연락해서 사과했나?"고 물었다. 유 장관은 "그때 그 이후, 정회 후에 다시 시작됐을 때 공식적으로 취재하던 기자분들에게 사과를 했고, 오늘도 내가 통화를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상황과는 다르다. 욕설을 한 뒤 유 장관은 오후 6시 45분경 저녁 식사를 위해 나갔다.

 

저녁 8시 무렵 유 장관은 다시 문방위 회의실에 들어와 대기했다. 다시 속개된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이 사이에 유 장관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회의가 속개된 후 민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국회 관계자에게 작은 소리로 "아까 여기 있던 기자들 좀 찾아달라"고 말했다.

 

밤 11시 무렵이었다. 당시 회의실에는 카메라 기자들은 한 명도 없었고 취재 기자들도 대부분 철수한 뒤였다. '정회 후 다시 시작됐을 때 공식적으로 기자분들에게 사과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유 장관 자신도 마지막 회의에서 "사과했다"고 하지 않고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과 한나라당은 욕설 파문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종걸 의원이 원인 제공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의 '졸개'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러나 "성질이 뻗친다"고 해서 '인간 유인촌'이 '장관 유인촌'에서 그리 쉽게 이탈해서는 안 된다. 이건 장관의 기본 깜냥, 자질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에 빗댔던 한나라당

 

차라리 유 장관이 고 위원장에게 정중히 발언 기회를 얻어 또박또박 본인의 의사를 개진했더라면 어땠을까. 유 장관 말처럼 "부모님에게도 듣지 못했던 소리"라는 표현을 적절히 넣어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또 '이명박 졸개' 발언에 화가 난 것이 진실이라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욕을 했어야지 왜 취재 기자들에게 욕을 했는지 의문이다. 유 장관은 의원에게 뺨 맞고 기자들에게 화풀이했다.

 

과거 한나라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했던 발언은 훨씬 심했다. 지난 2006년 2월 전여옥 의원은 DJ를 '치매 노인'이라고 불렀고 2004년 3월에는 '미숙아(노무현 대통령)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2003년 8월 22일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서는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무현과 개구리의 공통점 5개는 무엇인가를 화제로 올렸다. (<오마이뉴스> 개구리 비유 파문, 4자회담 불투명 )

 

그들이 낸 답은 ▲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 ▲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인다 ▲ 가끔 슬피 운다 ▲ 어디로 튈지 모른다 ▲ 생긴 게 똑같다 등이다.

 

그들은 현직 대통령을 '양서류'로 만들었다. 그래도 '이명박 졸개들'은 '영장류'다.

 

카메라 플래시도 못 참으면서 비판적 보도는 어떻게 참나?

 

이종걸 의원의 '이명박 졸개' 발언은 덜 심하다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과거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입은 무척 험했지만 당시 정부 관료가 국감장에서 "×× 찍지 마" 식의 욕설을 한 적은 없다.

 

유 장관 욕설 파문 당시 국회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한 직원은 "국감장에서 장관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지난 정부 국감 때 한나라당이 당시 국감 대상 기관장들을 소름 돋을 정도로 모욕을 줬지만 저런 적은 없었다"고 혀를 찼다.

 

지난 9일 지식경제위 국감 때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한국산업단지공단 직원의 거액 횡령 사건을 지적했다. 지적을 받은 A본부장은 1시간 뒤 화장실에 가는 최 의원을 따라가 담뱃갑과 라이터를 던지면서 항의하고 협박성 발언을 했고, 최 의원이 국감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몸으로 막는 난동을 부렸다.

 

우연의 일치인가? 한나라당이 의석수의 거의 3분의 2에 육박하자 피감 기관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뻣뻣하다는 지적이 많다.

 

유 장관은 "카메라 플래시가 갑자기 터져서 우발적으로 그랬다"고 해명했다. 이건 수십 년 톱스타 유인촌답지 않은 발언이다. 유 장관은 대한민국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많이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을 때 하던 행동도 멈춰야 했다.

 

사진기자들은 카메라로 취재한다. 사진기자들에게 사진 찍지 말라고 한 것은 취재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가 언론 장악 논란 한복판에 있는데, 유 장관의 행동은 의혹을 사실로 굳혀주는 짓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성가시다고 욕설이 버럭 나올 정도니 대한민국 정부 공식 대변인으로서 불편한 보도와 취재를 어떻게 참을 수 있을 것인가?

 

유 장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물러날 때가 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벌써 유행어가 생겼다.

 

"정치 하지 마, 이쒸, 하지 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이쒸, 정치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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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인촌, #신재민, #이종걸, #국정감사,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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