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논현동의 한 고시원.
 논현동의 한 고시원.
ⓒ 오마이뉴스 김영균

관련사진보기


"깜짝 놀랐죠. 저도 놀랐는데, 여기 있던 사람들은 오죽했겠어요?"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 M고시원에서 만난 총무(고시원 책임자)는 'D고시원 방화 난동' 사건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사건 당일(20일)이 M고시원 첫 출근이었다.

"지나오면서 그 고시원을 봤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 못 했죠... 그래도 여기 분들은 큰 동요는 없네요."

그는 42~43개 정도 되는 방이 거의 다 차 있다고 했다. 바로 인근 고시원의 사고 소식을 다 알고는 있지만, 그 일로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이 고시원은 사건 현장으로부터 불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M고시원 총무의 말대로 현장 부근의 풍경은 평온해 보였다. 21일과 22일 다시 찾은 D고시원은 의경 몇 명이 현장 보존을 위해 근무를 서고 있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봐야 갈 데가 어딨어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이불과 짐을 챙겨들고 나오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재중동포 여성이 이불과 짐을 챙겨들고 나오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틀 전 참극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큰 충격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21일 오후 인근 도로에서 만난 김아무개(48)씨는 "오십 가까이 살았지만, 바로 내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곧 담배도 빼물었다. 불을 붙여 주며 말을 건네자 김씨는 자신도 "고시원에 산다"고 답했다.

경북이 고향이라는 김씨는 장사를 하다 2년 전에 망했다고 한다. 고향집을 팔고 가족은 처갓집 근처에 단칸방을 구해준 뒤 상경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학비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일에 뛰어들었다.

"뭐, TV에서 보니까 막 불 지르고 회칼 썼다고 하데... 그 좁은 복도에서 불나면 어디 피할 데나 있겠어요? 앞에는 (정씨가) 칼 들고 서 있지... 나도 (고시원) 생활하지만, 참 남일 아니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씨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다. "고시원 생활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그래도 고시원만한 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봐야 갈 데가 어디 있어요? 없는 처지에 따로 방 구하기도 어렵고... 고시원은 보증금도 없고, 매달 조금만 내면 잠자는 거, 밥 먹는 거 다 해결되니까."

김씨는 고시원비를 한 달에 20만원씩 낸다. 창문 없는 '값싼 방'이다. 여러 차례 부탁에도 김씨는 자신의 방을 한사코 보여주지 않았다. "볼 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그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감지덕지"라고 말했다.

20일 사건이 일어난 D고시원의 사망자와 피해자 중에는 '재중동포'가 있었다. 주로 인근 영동시장 먹자골목에서 식당일을 하는 여성들이다. 사건 당일 현장에서 만난 재중동포 석아무개씨도 "일터가 가깝고 해서 고시원에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인근 다른 고시원은 사정이 좀 달랐다. 대부분 강남 지역 직장인이나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R고시원 총무는 "유독 그 곳(D고시원)에만 재중동포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영동시장 한 곳에서 어렵게 재중동포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최아무개(여·41, 출신지역은 동북 3성이라고만 했다)씨는 일찍 홀로 되고 1년 전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고향에는 어린 딸이 할머니 손에서 크고 있다. 최씨도 돈을 아끼기 위해 인근 고시원에 산다.

식당에서 일하는 최씨는 한달에 150만원을 받는다. 입국할 때 든 돈 때문에 매월 브로커에게 월급 절반 이상을 보낸다고 했다. 고시원 생활비 18만원과 용돈을 빼고 나면 고향에 돈 보내기가 빠듯하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날 아는 언니한테 전화가 왔더라구요. 부근에 불이 났다고... 걱정돼서 전화했다는데."

최씨는 "그 일이 나고 조금 무섭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들 중 3명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동포들이라 더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내 있는 곳(고시원)은 사람들이 착한데... 잘 보지는 못하지만 (복도서)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빨리 돈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지요."

최씨의 방에는 옷가지와 화장품 외에 다른 짐이 없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고 나면 잠자고 나오기가 바쁘다고 한다. 그는 고시원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싸고 편하니까"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어차피 밥은 식당에서 해결하는데, 굳이 잠만 잘 방을 전세나 월세로 구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화장실이나 씻는 건 좀 불편해도 할 수 없죠. 쓰고 싶은 대로 돈 쓰면 언제 모아서 돌아가나요?"

"고시원 단속? 지방서 상경한 학생, 직장인 먼저 피해 볼 것"

논현동 한 고시원 내부. 작은 방 입구가 거의 붙어있다.
 논현동 한 고시원 내부. 작은 방 입구가 거의 붙어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관련사진보기

방화와 흉기 난동으로 6명이나 죽었지만, 저소득층이 숙박시설로 애용하는 고시원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값이 싸기 때문이다. 마음 내키는대로 언제든지 짐을 쌀 수도 있다. 하지만 고시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또 한번 고시원이 '단속 대상'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었다.

S고시원 원장 최아무개씨는 "무슨 일만 터지면 소방 설비가 미흡하네 어쩌네 하면서 고시원을 닦달하는데, 이번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소방방재청에서 소방 설비를 갖추라기에 돈을 들여서 했더니, 규정에 맞지 않다고 싹 바꾸라고 해서 수백만원을 손해봤다. 불만 나면 고시원이 문제라면서 규정을 엉터리로 만들고, 자꾸 바꾸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최씨는 "(D고시원 방화 같은) 그런 일은 고시원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만약 이대로 고시원 단속을 강화한다면, 고시원 운영자보다 당장 방을 구할 수 없는 지방 학생들이나 직장인들부터 손해를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씨가 운영하는 고시원은 방이 30개 정도 된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고시원에 불을 지르는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죠.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먼저 사회적 대책을 세워야 된다고 봅니다. 당장 언론이 떠드니까 우선 고시원부터 점검하고 보자, 이런 방식은 결국 값싼 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아닐까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는 현재 3451개의 고시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용자는 10만8428명에 이른다. 이용자 중에는 회사원이 24.1%(2만6086명)로 가장 많고, 무직자도 20.5%(2만2237명)나 된다. 단순 노무직 종사자가 12.7%(1만37555명)로 세 번째로 많았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이 중 20%에 해당하는 637곳이 비상구 크기가 규정에 미치지 못하다고 파악하고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태그:#고시원 방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