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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자료사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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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기업범죄와 친하겠다는 뜻은 아니죠? 재벌의 폐단이 아직도 남아있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경제모델로 삼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런데 이 정부는 왜 이래요?"

벌써 1년이다. 맵찬 늦가을, 자고나면 새로운 뉴스가 터졌다. 국내 최고의 엘리트 회사 삼성 내부의 '부패한 진실'은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벗겨졌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는 놀라웠다. 그래서 동네 야쿠르트 아줌마조차 걱정했다. 삼성이 망할까 봐.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특검과 대한민국 사법부는 삼성 편에 섰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폭로의 성과가 무엇이냐고 따져 묻기도 한다. <오마이뉴스>는 14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찻집에서 김용철 전 팀장을 만났다. 삼성 특검 이후 공식적인 인터뷰를 삼갔던 그는 '양심 고백 1주년'에 즈음해 묻어 두었던 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찬 밥' 신세라고 했다.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왔는데 주변은 도로 나가라는 분위기라는 것. "기피인물이 됐나 싶어 헛웃음이 난다"고 했다. "개업 4개월째지만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했다. 선임계를 단 한 번도 못 썼다는 게다.

차림에도 변화가 생겼다. 명품 백금 손목시계가 검정 고무 손목시계로 바뀌어 있었다. 팔았다고 했다. 사치했던 세월 사두었던 것들 가운데 제법 팔 게 있더라며 명랑하게 웃었다. 잘 나가던 특수부 검사에서 삼성 법무팀장으로, 한국사회 주류 보수층에서 반재벌운동가로 그의 인생역전이 드라마 같다.

김용철 변호사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삼성사건은 한국사회 주류의 방어 메커니즘이 철저히 작동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특검제도는 비효율 불합리, 없애야 한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자료사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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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삼성 에버랜드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는데, 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뉴스를 보니 재판부가 회사에 끼친 손해가 없다는 식으로 판시했던데,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넘어가는 경영지배권은 인정하면서 거기에 활용된 CB(전환사채)가 저가발행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필요도 없다?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영권 승계를 논의한 이사회에 하자가 있든 말든 문제가 안된다는 식이던데, 이 재판부는 향후 회사법 연구에 이상한 판례를 남겼다고 기록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건희·이재용 부자는 일개 봉급쟁이가 아니다. 종범도 아니다. 수천억대 재산가들이 직접 벌인 대형 부패사건을 사법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참 딱한 일이다."

-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삼성 내부문제를 양심고백한 지 1년이다. 지난 1년, 어땠나.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책임하게 폭로해놓고 아무것도 책임 안 진다고 댓글을 썼던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나는 세상이 다 알던 것을 공식화하고 한번 논의해 보자고 불을 지른 격이다. 수사기관이나 헌법기관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걸 책임질 수 있겠나."

-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특검과 사법부가 나서서 과거 삼성의 잘못된 행위를 오히려 말끔히 정리해 줬다는 평가도 있다. 
"맞다. 특검이 삼성관련 중요 사안들, 특히 비자금 문제를 깔끔히 정리해 줬다. 문제 없는 걸로. 또 삼성이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쇄신됐는지 확인 안 된다. 문제가 됐던 인물들의 급여나 처우·영향력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삼성사건은 한국사회 주류의 방어 메커니즘이 철저히 작동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 주류 방어 메커니즘이라니.
"한국사회 주류집단 가운데 삼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뇌물을 먹었다는 게 아니라 삼성의 광범위한 인사관리에 포획당하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명문고·명문대 등. 한국사회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정규직 20만명에 협력사까지 합치면 100만명이다. 삼성이 동원할 자원은 무제한급이다."

- 최근 한 강연에서 특검 무용론을 설파했는데.
"특검은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조직이다. 비전문가들에다 연합군 형태다. 비효율적이다. 이 불합리한 제도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수사기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수사 못하겠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도 억지로 특검법 만들고 특검을 한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성과가 있었나.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 불법행위 규명운동, 실패한 싸움 아니다"

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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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문제를 통해 본 한국사회의 이중성, 그런 건 없었나.
"적어도 지금 우리는 중국에서 아이들이 '멜라민 독분유'를 먹고 죽었다는 소식에 한심한 놈들이라고 욕하지 않나. 중요한 건 정책이다. 욕만 하고 말 게 아니라 우리 정책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장관이 뇌물 먹고 구속되는 일은 없어야 하고, 기업가가 뻔뻔하게 탈세해서는 안 된다. 그래 놓고 '선진한국'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들은 '더 물증을 내놔라, 폭로해라, 명단 있으면 더 밝혀라' 온갖 재밌는 얘기들을 기대한다. 솔직히 부잣집 불구경 좀 더 하자는 거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부잣집 불덩이가 내 집에 붙으면, 당장 어느 놈이 불을 질렀냐고 따질 것이다. 그런 게 참 싫다."

- 온갖 문제들이 터졌지만 결과적으로 뭐가 달라졌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역사가 퇴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삼성 문제를 집요하게 다룬다더니 결과적으로 도로아미타불 아니야? 이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실패한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사건 재판한 사람들은 떳떳할까. 혹시 정당하게 판결했다가 주류사회에서 떨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낸 것은 아닐까. 역으로 생각한다."

- 한국 사법부에 대한 불만은 없나.
"검찰 내부 중간 간부들이 '우리 조직은 장래가 없다'고 자학한다는 얘길 들었다. 허무적 발언이 아니라 그 정도 위기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검사로서 명백한 중대범죄를 외면하고 있는데 바늘방석 아니겠나.

윤보선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당선무효소송을 낸 바 있다. 대통령 입후보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는 5년 이상 경과해야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데, '여순사건'으로 무기징역형 받은 사람이 어떻게 대선에 출마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각했다. 이유는 한국에서 재판 받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한국의 사법절차다. 정권장악 후 자료를 폐기했더라도 지금 자료 없으면 기각하는 게 법원이다. 사법부가 이토록 특정기업에 대해 편향적인 판결을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법학자나 법률가들이 나는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뭐하는 분들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조선일보>는 독자를 매수해야 유지되는 신문인가"

- 언론에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언론이 이리저리 삼성에 너무 엮여있는데 무슨 수로 삼성문제를 집요하게 다룰 수 있나 생각은 든다. 어쩌면 이미 모두 삼성에 포획된 건지 모른다. 그것도 아주 구조적으로. 젊은 기자들이 비분강개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나.

<조선일보> 판촉사원들은 아파트단지에서 봉투에 현금 5만원씩 넣어 돌린다. 여러 번 봤다. 심지어 나한테도 권하더라. <조선일보>는 독자를 매수해야 유지되는 신문인가. 노골적으로 신문 보라고 봉투 내미는 사람들, 이건 코미디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이 이런 식으로 장사해서야 되겠나. 사제단 신부님들이 오죽했으면 <조선일보>를 악마적 존재라 했을까 이해가 됐다. 이 언론이 한국의 주류라는 게 한심하다."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벌에게 유리한 정책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기업범죄와 친하겠다는 뜻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는 재벌의 잘못된 행동을 지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재벌정책을 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인다."

- 재벌정책 가운데 특히 문제삼을 만한 대목은. 
"삼성화재가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미지급 보험금을 마치 지급한 것처럼 회계 처리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봤지만, 금융권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린다. 그런데 우리는 비자금을 관리해 온 문제적 금융기관에 대한 폐쇄조치는 없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살아있는 건가 의심된다. 누가 얼마의 돈을 꿀꺽했나에 대해서는 열불을 내지만 정작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말 없다. 재벌의 영속불변적인 시스템에는 눈 감고 있다." 

"<중앙일보>, 신용훼손 운운하더니 소 취하 왜?"

김용철 변호사가 4월 23일 오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삼성특검 수사결과와 삼성그룹 쇄신방안에 대한 사제단 평가'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4월 23일 오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삼성특검 수사결과와 삼성그룹 쇄신방안에 대한 사제단 평가'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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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은행업 진출 가능성은?
"특검 직후 발표한 삼성 쇄신안에 따르면 은행업엔 진출 안 한다고 돼 있지 않나. 물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삼성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은행업에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업을 하든 안 하든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 이유는.
"국내 은행 가운데 삼성의 영향력 하에 안 있는 데가 있나. 국내 시중은행에 삼성 돈 예치 안된 데 있을까. 그런데도 삼성은행이 필요할까. 굳이 '삼성은행 명의의 자기앞수표'가 필요하다면 모를까."

- 1년 전과 비교하면 '개인 김용철'의 인생은 전환됐다. 어떤가.
"나는 기득권층이었다. 사치도 많이 했다. 요즘은 팔고 있지만(웃음). 내가 뒷골목에서 황폐한 최후를 맞게 되는 걸 고소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뭐 팔자인 걸 어쩌겠나. 내몰린 측면도 있지만. 누구는 내가 영웅이 되고 싶어 그랬다고 하지만 정말 그건 아니다.

나는 정말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남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해 일하고 싶다. 그런데 솔직히 그게 잘 안 된다.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내 무능 탓이 크지만, 장사가 잘 안 된다(웃음). 사무실 유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다."

- 찾아오는 사람이 없나.
"있다. 그렇지만 대개 사법 피해자들이다. 억울한 사건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참 구제하기 힘든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나를 선임했다는 말만으로도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더라(웃음). 상대 쪽에서 나를 수임했다고 하면 자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주는 모양이다. 나한테는 별로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 일상의 변화는 없나.
"나 살던 양평에 컨테이너 대신 자그마한 집을 지었다. 무농약으로 배추·무·아욱·근대·상추 등을 아주 성공적으로 길러냈다. 정말 맛있다. 우리 집을 방문하면 내가 한 상자씩 준다. 그러나 그건 일상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쓰라 하지만 글쎄다. 내가 글을 쓰면 모두 턱없는 주장이라 깎아내리지 않을까(웃음)."

-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 모조리 취하했다. 왜 그랬을까.
"자기들 맘대로 고발했다 취하했더라. 암튼 나는 명예훼손과 관련해 조사 한 번 받은 일이 없다. 동시각하 됐던데, 그런 것도 날짜 맞춰 하나. 재밌는 일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 같은 놈과 붙어 싸워봐야 자신의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 날 한 시에 모두 취하하지 않았겠나. 재밌는 건 <중앙일보>다. 신문 1면에 신용훼손 운운하더니 스스로 취하했다. 내가 '인간 말종'이라 상종도 못할 수준이라고 본 걸까."


태그:#김용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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