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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기념회에 와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정지환 기자와 오한흥 전 <옥천신문>대표
▲ 기념사진 찰칵~ 출간기념회에 와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정지환 기자와 오한흥 전 <옥천신문>대표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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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차 같은 차에 마이크 달고 ‘조선일보 보지 맙시다.’를 하고 다니기에 저는 오한흥 씨를 ‘돈키호테 같다,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지른 바보다.’라고 생각 했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권력 조선일보를 건드리다니. 그런데 옥천에서 조선일보가 절독 되었어요.” 

“용케도 조선일보에게 소송당하고도 살아남았고 고달픈 길을 자원하는 정지환기자도 바보예요.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농산물을 안겨주며 집에 가져가라고 했어요. 이러한 두 어리석은 사람이 만나 큰일을 벌였네요.”

14일에 희망제작소 강당에서 열린 <고삐 풀린 망아지, 옥천에서 일내다> 출판기념회에서 김성훈 상지대 총장은 격려사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조선일보에 맞선 오한흥 전<옥천신문>대표와 정지환기자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고마움과 대견함을 전하네요.

그 바보들의 성과에 대해 사람들은 대단한 일이라며 칭찬을 하네요. 이상기 아시아 기자협회 회장은 “전인미답의 아무도 가지 않은 세계로 간 두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고 최상재 전국 언론노조 위원장은 “불의에 저항과 반역을 하는 느낌”이라며 “후배들이 주장하는 목소리를 따르자.”라고 축하를 하더군요.

1990년대말부터 벌어진 안티조선운동과 풀뿌리언론운동에 나선 오한흥씨는 지역신문 1세대로 <옥천신문>을 성공시키며 언론에 주목을 받았지요. <조선일보>를 ‘언론을 위장한 범죄집단’이라고 냉정하게 규정하고 바른 언론을 위해 달려온 그의 길을 정지환기자가 엮어냈네요.

지역 풀뿌리 언론을 안착시킨 오한흥 대표는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며 지난 시간을 얘기하네요.
▲ 오한흥 전 <옥천신문>대표 지역 풀뿌리 언론을 안착시킨 오한흥 대표는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며 지난 시간을 얘기하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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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바보에 대해 쓴 책’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에서 두 바보를 만나 보았어요. 먼저 말투가 시원하고 넉넉하신 오한흥 전 <옥천신문>대표

- 안티조선이 옥천에서 성공한 이유가 있다면?
"예전에는 옥천에서 조선일보를 두 집 건너 한집 봤었는데 시내 중심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요.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한 부 한 부 늘리는 방법밖에 없지요. 왕도가 없어요. 옥천신문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똑같이 이식할 수 없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 지역에 맞게 고민을 해야 해요. 지역마다 문화 특성을 고려해야 해요.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지역주민들에게 전달하여야 하지요."

- 힘들었을 거 같은데?
"힘 안 들었어요. 즐겁게 고민하면서 했어요. 왜냐하면 확신이 있었거든요. 옥천신문이 맺을 결실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일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제가 국회에서 길거리 특강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왜 <조선일보>만 공격하는지 조선일보는 수구신문의 상징이기에 대표로서 비판하는 거라고 대답하며 조선, 중앙, 동아에 이어 한겨레까지 문제라고 얘기했어요.

신문의 주인은 독자에요. 말로만 시민과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데 상투적 거짓말이에요. 한국 언론은 급한 나머지 광고로 수입을 얻으려 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원가에 비용계산하면 신문을 만드는 만큼 적자예요. 이것을 광고 수익으로 때우지요. 그러면 정직한 발언을 할 수 없고 광고와 자본에 휘둘릴 수밖에 없어요. ‘죽 써서 개주는 꼴’이에요. 

이 구도를 깨야 해요. 고급지로 가야해요. 그만큼 내용이 실해야겠지요. 상품가격이 올라가더라도 당당하게 편집권이 독립해서 말을 해야겠지요. 그만큼 독자들이 독립언론을 봐줘야하고요. "

그러면서 사실을 바탕으로 보도하지 않고 이분법으로 해석해서 기사를 썼던 한국언론에 대해서도 따끔한 소리를 하네요.

"조선일보 반대하는 이유가 확인안하고 왜곡해서 보도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조선일보 뿐 아니라 한국 언론들도 이런 일을 많이 해요. 진보라는 사람들도 조선일보 기사만 보고 확인 검증 안하고 글을 쓰면 안 되지요. 그것은 조선일보와 다름없거든요. 예로 유명인사 폭행사건에도 연루되어 보수단체라고 알려진 HID에 대한 오해를 말씀드릴게요.

지난 2002년 3월 15일 세종로 차도를 점거한 북파공작원 동지회 회원들이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자, 20여 미터이상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지난 2002년 3월 15일 세종로 차도를 점거한 북파공작원 동지회 회원들이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자, 20여 미터이상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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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가스통 시위’로 알려진 북파공작원모임 HID에 찾아갔어요. 그런데 입구부터 안중근 의사 단지사진과 ‘나는 오늘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어록이 걸려있어요. 대단한 애국자들이에요.

제가 찾아가서 찾아온 이유를 말하니까 환영하면서 홍보물을 주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영등포역 가스통 사진은 이미지 왜곡으로 억울하다고 했어요. 그들은 알다시피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어요. 그들 대부분이 중증 환자예요. 인정받은 군부대가 아니기에 보상도 받지 못하고 법정근거도 없어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그들을 끌어들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박정희거든요. 그들 조직은 태생적으로 친박연대와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어요. 제가 차근차근 조선일보의 친일행위와 반민족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니까 난리가 났어요. ‘안티조선들이 월권한 것이다. 안티조선은 여러분의 몫이다,’라고 얘기를 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한 분들이에요. 일그러진 시대의 피해자인 그들을 사회에서 생각하고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또 한국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고요."

HID에 대한 재평가와 적합한 보상을 하여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역사를 넘어서자고 열변을 하시는 오한흥씨에 이어 정지환 기자를 만났어요.

월간<말>,<시민의 신문>,오마이뉴스 등 언론매체에서 15년 동안 활동한 그는 현재 <여의도통신>대표기자로 있어요. 그는 1998년부터 조선일보 족벌사주 비리의혹을 추적하면서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애칭을 얻었지요.
▲ 정지환 기자 월간<말>,<시민의 신문>,오마이뉴스 등 언론매체에서 15년 동안 활동한 그는 현재 <여의도통신>대표기자로 있어요. 그는 1998년부터 조선일보 족벌사주 비리의혹을 추적하면서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애칭을 얻었지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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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이 제 2고향 같은 곳이라는 정지환 <여의도 통신>대표기자는 “옥천을 통해서 전국을 만난 것 같다.”며 옥천신문의 성공에 대해 보람을 표시하였어요. 옥천신문의 의미를 묻자 “이 작업은 언론을 바르게 세우는 과정이고 옥천을 통해 풀뿌리언론의 희망을 보았다.”며 “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책을 냈다.”고 답하네요.

바보가 바보에 대해 쓴 책을 사갖고 돌아오는 밤거리는 유난히 밝았어요. 묵묵히 세상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한국 언론사를 공부할수록 한숨이 짙게 나오지만 그만큼 희망의 싹을 키운 사람들의 노고도 알게 되지요.

<옥천신문>의 성공은 지배언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소중한 증거이고 척박한 지역에서 풀뿌리언론이 꽃피울 수 있다는 상징이죠. 지역주민에게 사랑받고 소통하는 지역 풀뿌리 언론의 대표 <옥천신문>에 이어서 전국 여기저기 풀뿌리 언론이 튼튼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태그:#옥천신문, #오한흥, #정지환, #조선일보, #안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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