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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공감
▲ 책표지 천개의 공감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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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작가의 눈을 보면(물론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작가 자신의 내면을 오랫동안, 그리고 깊이 들여다본 자의 그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온다. 깊은 자기 응시, 치열하게 자기 상처와 대면하고 어렵게 이겨내고 소설로 승화시켜 낸 작가적 장인정신, 오랜만에 김형경 소설가의 소설 아닌 에세이를 만났다.

1983년 문예중앙에서 시가 당선되었고, 1985년 ‘문학사상’에 중편소설 <죽음잔치>가 당선되어 등단한 김형경 작가는 1993년 첫 장편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로 국민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학에 대한 남모르게 간직한 꿈으로 신열을 앓을 때, 국민일보 문학상 수상한 작품과 작가의 얼굴이 국민일보에 크게 나왔던 그때, 신문을 오려서 스크랩 해두고 가끔 꺼내보며 가슴 설렜던 그 시절을.

이후로도 작가는 장편소설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 <성에>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세월>, 창작집 <담배 피우는 여자> <단종은 키가 작다> 등을 활발하게 펴냈다. 작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정신분석치료를 오랫동안 받기도 했던 작가는 심리에세이 <사람 풍경>을 펴내는 한편, 이어서 <천개의 공감>을 펴냈다. 평생 소설만 쓰고 싶다는 작가가 심리에세이를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끌어안고 힘들어했던 자신의 상처, 해결되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고민하다가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정신분석치료를 받았을 것이고, 그것과 관련된 책들을 수없이 접하면서 내공이 싸인 것 같다. 상처 입은 자가 이제는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독자들 가까이 다가왔다. 소설로 만났던 작가를 이젠 위로자로, 격려자로 독자들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언젠가 김형경 작가가 쓴 어느 글에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난다. 작가의 친구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다. ‘네가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너는 세 권 이상의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심각하게 자기의 상처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작가가 그것을 극복하고 이제는 그 상처가 진주가 되고 별이 되어서 많은 이들의 위로자요 격려자가 된 것 같다.

김형경 작가의 심리치유에세이를 읽다 보면 마치 정신분석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추천 글을 쓴 정혜신 정신과전문의조차도 경탄해 마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해 정신분석 전문가 집단에게 먼저 일독을 권하고 싶을 만큼 치밀하다고 찬사를 보낸다. 소설가의 작가적 상상력과 자신의 정신분석 경험, 방대한 관련 지식, 섬세한 문장과 설득력 등이 합쳐져서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것만 아니라 가슴이 느껴지는 글로 독자들에게 더 깊은 공감을 주고 있다.

김형경 작가의 심리치유 에세이 <천개의 공감>(한겨레출판)은 두 번째 심리치유에세이로 <한겨레>의 상담코너 ‘형경과 미라에게’에서 독자들과 나누었던 숱한 질문들과 대화를 기초로 하여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관계 맺기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조근조근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자기알기’는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통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고, 2부 ‘가족관계’는 가족관계에서 우리의 성격과 생존법이 형성된다는 내용이다. 제3부는 ‘성과 사랑’으로 생애 초기에 배운 사랑의 역량을 성인이 된 후 사랑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짚고 있으며, 4부 ‘관계맺기’는 개별적인 감정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모색하고 있다. 각 장의 끝에는 속담이나 명언 등이 적혀 있다.

“심리치료의 핵심은 유년기를 수선하는 일입니다. 유년기에 만들어진 왜곡된 자기 이미지, 미숙한 생존법, 잘못된 현실 인식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 실제와 환상, 자기와 타인, 내면세계와 외부 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영역을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자기 자신과 생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 유년기의 생존법이 아닌 성인의 생존법, 이번 생에서 지향하고 성취할 소명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독자들의 질문과 작가의 대답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은, 인간은 결국 어릴 때, 그 가장 중요한 생애 초기 유아기 시절의 상처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그 문제로 파생되는 문제들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돌출 행동은 알고 보면 더 깊은 곳에 해결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의 깊은 내면에 울고 있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부모의 별거를 비롯해 젊은 날 원치 않았던 사건 등을 통해 캄캄한 절망의 바닥에 닿았던 작가 자신을 승화시켜 내놓았던 자전적 소설 <세월>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바다 앞에서는 절망하지 말 것, 감히 바다 앞에서는 절망에 대해 말하지 말것, 그래, 바다만큼 깊은 심연을 제 속에 거느리고 있는 자가 있는가. 아니, 바다 앞에서는 절망뿐 아니라 희망에 대해서도, 광활함에 대해서도, 어떠한 낙관주의나 허무주의, 박애주의에 대해서도 말하면 안된다. 바다 앞에서는 침묵하여야 한다. 바다는 그 모든 것을 품에 간직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한 바다는, 이제 단 하나의 방식으로 제 마음을 보여준다. 그건 높은 파도나 물굽이를 따라 나는 갈매기나, 아름다운 푸른색 따위가 아니다. 그건 부력이다. 바닷물의 부력, 모든 물체를, 그 무게가 가지고 있는 질량만큼 떠오르게 하는 힘, 부력. 그건 바다가 가지고 있는 애정이고 모든 것을 극복한 자의 의연함이다.”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한겨레출판(2006)


태그:#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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