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교육과학기술부는 8일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하고, 오는 14일과 15일, 양일에 걸쳐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실시하려고 한다.

4%에서 5%의 학교를 표집하여 결과를 분석하지만, 나머지 비표집 학교들도 사실은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시험을 실시해 채점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표집이 아니라 전집형 일제고사다.

일제고사의 문제점으로 예상되는 것은 학교 간 서열화와 학부모, 학생들의 위화감 조성, 사교육비 증가, 입시 위주로 변질되는 공교육 파행 등인데 고교 입시제도가 비평준화 제도인 광명 지역에서는 이것이 예상되는 바가 아니라 이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고 대다수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느끼는 문제점들이다.

학교 간 서열화, 교복 수치스럽게 한다

교복은 성적표가 아니다
 교복은 성적표가 아니다
ⓒ 김창욱

관련사진보기

옛날 옛적에는 성적표를 종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천으로 만들어 입고 다닌다. 옛날 옛날에는 선생님의 회초리가 무서웠지만, 요즘에는 사람들 눈총이 더 무섭다.

신분제 사회의 관료들은 복색(服色)으로 신분을 나타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전근대 방식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옷색깔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 바로 학교 간 서열화가 이루어진 비평준화 지역에서다. 이 곳에서 교복의 차이는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긍지를 나타내주는 표식이 아니라, 신분을 드러내 주는 복색과도 같다.

경기도 광명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7개 있는데 광명 시민이라면 초등학생까지도 1위부터 7위까지의 순위를 알고 있다. 상위권의 K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늦게까지 학교에서 '야자'(야간자율학습)하고, 학원에서 또 공부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하위권 고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공부는 안 하고 왜 이렇게 돌아다니냐"라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이는 선생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는 공립학교 교사로 처음에는 상위권 K고에서 5년 동안 근무하였다.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 가면, 아이들 가르치느라 고생하신다는 말을 매번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위권 학교로 전근왔는데 병원에서 나를 대하는 눈빛들이 마치 '능력 없는 교사'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상위권 고교 학부모들은 빨래가 다 말라도 며칠씩 걷어가지 않는 반면, 하위권 고교의 학부모들은 교복을 세탁하고는 밖에 내다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광명시의원은 학교장들에게 교복 색깔을 통일해달라고 건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광명에서는 교복색깔을 통일한다 해도 고등학생들을 구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교복보다 더 강력한 버스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 등교시간에 학생들이 몇 번 시내버스를 타는지를 보면 학생들의 등급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광명은 비교적 성적이 높은 고등학교들은 철산동, 중간 정도 되는 학교들은 광명동, 하위권에 속하는 학교들은 소하동 쪽에 있다. 어느 버스를 기다리는지, 어느 버스를 타고 있는지를 보면 그 학생의 성적과 등급이 드러나는 것이다. 버스는 지나가지만 어린 동심들의 가슴에는 상처가 남는다. 비평준화와 학교 서열화의 대표적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빨래 걷지 않는 학부모, 밖에 내다 말리지 않는 학부모

등굣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등굣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정보공시제를 통하여 학교 성적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하고, 서울시 교육감은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고교선택제를 하겠다고 한다. 말이 좋아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지 선택할 수 있는 학생과 선택 기회를 박탈 당한 학생으로 나뉜다. 이 역시 광명에서 이미 오래 전에 경험한 '미래 상황'이다.

학교가 서열화되어 있는 지역에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두 종류의 학생들이다. 첫째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올린 학생들이다. 성적이 높은 이 학생들은 서열의 최상부에 있는 학교들에 진학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성적에 원하는 학교를 맞춘 학생들이다. 이들은 일찌감치 성적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자신의 점수로 진학 가능한 학교들을 선별하여 원하는 학교로 진학한다.

소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부류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한다고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서열화 체제에서 누가 하위 서열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겠는가? 자신의 점수에 맞는 학교를 자신이 원하는 학교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비평준화 제도하에서 학교선택권을 보장받는 학생들은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낙오자'가 되거나 '자기기만자'가 될 뿐이다.

2002년 광명시 청소년 상담실에서는 광명소재 중·고등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고교 입시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광명의 고교 입시제도와 관련한 다른 자료들이 여전히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자료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설문조사 내용 중 "비평준화 제도 고교입시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오'(42.2%), '잘 모르겠음'(39.5%)과 같은 부정적 답변이 '예'(17.5%)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비평준화 제도가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해 준다는 논리는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그 반대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면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나? 고향인 광명을 떠난다.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인 인근 서울·안양 등으로 떠나는 광명 소재 중학교 학생들이 해마다 1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중3이 되면 이주를 준비한다

2006년 3월 5일자 기준으로 광명 소재 10개 중학교 재학생의 숫자는 1만4057명인데 반해 고등학교 재학생의 숫자는 1만 1332명(공립 9898명, 사립 1434명)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재학생 숫자는 2700여명 가량 차이가 난다.

이에 더하여 사립학교인 진성고(1057명) 학생의 과반수 이상이 광명시 출신 학생이 아님을 감안하면 해마다 1천여 명 이상의 광명 출신 중학생이 광명시내 소재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이다.(위 도표 참조)

첫 번째 경우는 고교 입시에서 실패하여 광명시 소재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어 외지로 내몰린 '강제 이주 학생들'이다. 평준화가 되었더라면 근거리 배정 등의 원칙에 입각해 광명시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푸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터인데 비평준화로 인해 어린 나이에 낙방의 쓴맛을 보고는 좌절한 채 서울이나 안양 등으로 쫓겨가는 것이다.

광명 시내로 귀향하기 위해서는 외지의 고등학교에 일단 입학하여 수개월을 다닌 후 다시 광명시 고등학교에 전학생의 신분으로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나마도 서열화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성적을 보고 이러저러한 핑계(우리 학교는 교칙이 엄격하다든가, 학생의 성적으로는 하위권을 맴돌 수밖에 없어 정상적 학교생활이 우려된다든가 하는)를 들어 전입 거부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서열화 되어 있는 광명시의 고등학교 입시제도의 현실이 싫어서 떠나는 '자발적 이주 학생들'이다. 이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이사갈 채비를 하거나 주소를 이전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교 입시에서 해방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 이주'를 강요당한다는 면에서 희생자들이다. 비평준화 제도하에서 어차피 1000여 명은 낙방의 설움을 맛봐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발적으로' 평준화 지역으로 미리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코 '고향'이 싫은 것이 아니다. 돈 좀 있는 집은 강남이나 목동으로 떠나고, 돈 없는 집은 서울 금천구나 안양, 부천 등으로 떠난다. 또 많은 경우에 집은 광명에 그대로 있어 먼 거리를 어쩔 수 없이 통학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한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광명에서 '교육복지'의 혜택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경기도의 교육 여건은 전국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학급당 학생수의 기준은 김대중 정부 때에 35명으로 맞추어졌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35명 이하인 곳도 있다. 그러나 광명시의 2007년 고입 학급당 모집 학생수는 39명이다.

고등학교를 신설하거나 학급을 증설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광명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내 고양을 비롯한 지역들은 학급당 학생 수가 46명에 달하고, 안산에는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50명을 넘는 곳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고 하기에 창피한 수준이다.

선진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교육환경이 OECD 국가 평균 수준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학급당 학생수가 많아지면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에 맞는 '개별화 교육'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켜 자녀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결국 학교교육은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기 힘들고 학부모들이 개인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시켜야만 학교교육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면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 누가 경쟁에서 승리할지는 뻔한 것 아닌가?

얘야, 네가 쫓겨난 건 공부못한 탓이 아니란다

상황이 이러해도 피해자인 이 중학생들은 어디에다 하소연 하지도 못한다. 부모들은 부모대로, 학생들은 학생대로 '내가 잘못해서(자신이 성적이 낮아서) 불합격한 것인데 누굴 탓하랴'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광명시에 고등학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본 대로 매년 1천여명의 중학생들은 외지로 떠날 수밖에 없다. 운 좋게도 나나 내 자식이 그 1천명 안에 들지 않고 가까운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내 친구나 옆집 학생인 누군가는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만약 광명시가 평준화 지역이었다면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이 벌써 고등학교 증설을 요구하고, 교육환경 개선을 촉구하며 행동했을 것이다. 같은 비평준화지역인 의정부의 경우, 2006년 고입 당시 잘못 예상한 입학생 수로 인해 외지로 나가야 하는 중학교 졸업자가 생겨나자 교사와 학부모들이 제2경기도교육청사에 가서 시위를 하고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촉구하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경험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에 160억원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반면 교육복지예산 중 삭감된 돈은 140억원이다. 일제고사가 치러지면 정부 예산만 낭비되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의 성적이 노출되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광명의 경우 지금까지는 대체적인 학교간 서열 정도였지만 이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서열이 매겨질 수 있다. 마치 죄수의 수번처럼(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는 경기도에서 283등하는 중학교에서 415등 하는 학생이에요. 결론적으로 23만8679등이라는 뜻이죠!").

대다수 학부모들은 학교 서열화를 반대한다. 수학 잘하는 아이와 음악 잘하는 아이가 어울려서 협동하기를 바라고, 영어 잘하는 아이와 사회 잘하는 아이가 함께 토론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 무언가 부족함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 적절한 처방이 내려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의 콩나물 학급에서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수준으로 낮추어져야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학부모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렴하고 표집 형태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아래는 광명시의 평준화와 사교육비 관련 여론조사 결과다. 참고로 올린다.

[그림] 광명시 고교평준화에 대한 찬반 여론(2006 여의도리서치)
 [그림] 광명시 고교평준화에 대한 찬반 여론(2006 여의도리서치)


[그림] 광명시 사교육비 현황 (2006 여의도리서치)
 [그림] 광명시 사교육비 현황 (2006 여의도리서치)


[관련기사]
☞ 오늘 초등3학년 60만명, 10년만에 학력평가
☞ 초등생 160명 "일제고사 거부하고 생태학습"
☞ 전국 일제고사, 득보다 실 많다
☞ 강남 학부모들 "공정택 찍었지만 지금은 께름칙"
☞ 명박 왈 "배우고 때때로 일제고사 보면..."

덧붙이는 글 | 양두영 기자는 광명시 고교평준화와 교육복지실현을 위한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평준화, #일제고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