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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 투쟁 문화제, 이랜드 언니들과 함께 한 시간들 제가 지난해부터 이랜드 투쟁, 이랜드 언니들이랑 만나면서 보낸 시간들, 문화제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죽 이어 보았어요. 이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그리고 이 노래모임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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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을,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 오랜 숙원은 바로, 이랜드 일반노조 언니들이랑 같이 노래 모임을 만드는 거랍니다.

지난해부터 이랜드 투쟁을 작게나마 함께 치르면서 언니들을 만났지요. 노래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게 어떤 건지 온 몸으로 보여준 이 언니들이랑 함께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니 생각만 가져왔습니다.

한명 두명, 딴따라 기질이 보이는 언니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꼈던 기쁨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나랑 비슷한 성정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거. 그건 정말 짜릿한 일이거든요. 그런 언니들한테 슬쩍 슬쩍 이런 이야기를 던지곤 했지요.

"언니 노래 진짜 잘하네요! 우리, 나중에 같이 노래모임 해요."

이랜드 언니들과 노래모임을 만들다

저런 이야기를 던질 때, 사실 별다른 목적이 있지는 않았어요. 진심으로 같이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죠. 같이 노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랜드 일반노조 언니들이었을 뿐이죠. 처음엔 제가 그런 말을 건네면 "뭔 소리냐"는 듯 그냥 지나치는 언니들이 많았어요. 당연하죠. 노래모임이란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노래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저조차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 노래하는 거 많이들 좋아하면서도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또 창피하게 생각하거든요. 노래방에서는 그렇게 멋있고 신나게 잘 부르면서도.

그런데 시간이 약이 된 건지 정이 약이 된 건지, 어느 새부터인가 그런 제 이야기를 그냥 흘려듣지 않는 언니들이 생겨났죠. 한명, 두명…. 때론 먼저 노래모임을 얼른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저보다 더 열심히 바라는 언니도 있었어요. 처음엔 제 이야기에 "내가 무슨 노래모임이냐"면서 손사래를 치던 언니들도 조금씩 손사래 치는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몰라"에서, "알았어, 알았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말도 달라졌어요.

한두 명만 한다고 해도, 한 번 해봐야지 마음먹었는데 그렇게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언니들이 어느새 다섯 손가락이 넘어가더군요. 그래서 그동안 말로만 하던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에 노래모임 만드는 일을 본격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는 게 바쁘고, 이래저래 치이는 일도 많아서,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내 소중한 숙제였죠.

아픔과 기쁨이 고루 교차하는 고향같은 이 곳, 상암 홈에버 앞 천막농성장에서 첫 노래모임을 잘 치렀습니다.
▲ 이랜드 천막 농성장에서 치른 첫 노래모임 아픔과 기쁨이 고루 교차하는 고향같은 이 곳, 상암 홈에버 앞 천막농성장에서 첫 노래모임을 잘 치렀습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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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뭐해야 하는 거야? 나 노래도 잘 모르는데"

시작이라고 해 봤자 뭐 별다른 건 없고, 언니들한테 "이제 진짜 노래모임 만들 거예요, 전에 한다고 말한 거 기억하죠? 꼭 하기에요. 노래 못한다는 말 저한텐 안 통해요. 지난 번 노래방에서 다 잘 불러놓곤, 이제 와 발뺌해도 소용없어요. ^^" 

이렇게 단속을 하고, 노래모임 첫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꼭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이 언니들이랑 몇번 노래방에 갔던 시간은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완전 즐겁고 신이 났지만, 언니들이 노래를 잘하기도 하고, 참 좋아하기도 한다는 걸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런 시간들을 거쳐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첫 만남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그 날은, 2008년 10월 2일!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첫 노래모임을 하고 싶었던 민중의 집. 하지만 천막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두 언니 덕분에 이 곳에서 치르지 못했다.
▲ 민중의 집 풍경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첫 노래모임을 하고 싶었던 민중의 집. 하지만 천막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두 언니 덕분에 이 곳에서 치르지 못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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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마포에 있는 민중의집에서 모임을 하려고 했습니다. 노래모임 참여하는 언니들이 대체로 마포에 사는 분들이 많아서요. 앞으로도 이 공간을 노래모임 장소로 써볼 수 있는지 확인도 할 겸해서요(주택가라서 노래를 마음껏 불러도 되는지, 아직 확실치 않아서요).

이 날, 몸짓 연습을 하고 온 주영씨랑 은주언니가 약속 시간인 저녁 7시보다 이르게 와 있었죠. 저는,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며 먹을거리들을 주섬주섬 사갔고요. 아 그런데! 장소를 바꾸게 생겼지 뭐예요. 노래모임에 참여할 언니 두 분이 천막농성장 지킴이를 하는 날이라는 거죠.

이러다 첫 모임 잘 안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그 마음은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첫 노래모임을, 아예 상암동 홈에버 앞 천막농성장에서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거든요. 우리는 천막농성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거기서 이야기가 잘 될지, 여전히 걱정을 안고서요.

그런데, 제 걱정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저부터 천막이 참 포근하게 느껴지지 뭐예요. 좀 어수선할지라도 우리 모임 성격에는 이런 공간이 더 나아 보였죠.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기에 첫 노래모임을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노래모임 구상도 들려드리고,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모임을 하고자 했는지도 써서 편지로 나눠드리고, 노래모임에 오신 언니들한테 선물도 드렸어요. 나를 이랜드 투쟁으로 이끈, 가장 첫 공신이랄 수 있는 지민주 언니 2집 CD랑 언니 콘서트 팸플릿이죠. 회장 뽑는 일도 금방 진행되었어요. 언니들이 추천을 하고, 추천받은 언니가 어려움 없이 승낙하고.

"회장은 뭐해야 하는 거야? 나 노래도 잘 모르는데…."
"언니 원래 회장은 노래 못하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사람들 잘 챙기고 연락 잘 해주고, 일정 잘 전달하고 그런 거 하면 돼요. 노래는 제가 있잖아요. 저랑 많이 이야기 나누면 돼요."
"그래, 뭐 어차피 나밖에 할 사람 없지 뭐. 직무대행에 또 뭐에뭐에,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거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회장을 뽑았어요. 아무도 안 하려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빨리 진행돼서 역시 오래 투쟁한 언니들이라 공력이 만만치 않다 싶더군요. 이쯤에서 많이들 궁금하실 텐데요. 바로 노래모임 이름이요.

음주가무에서 비상으로, 날개 단 언니들

그 이름은 바로 '비상(匕翔)'이랍니다. 저 이름이 나온 배경은, 제가 언니들한테 선물로 준 지민주 언니 공연 팸플릿 때문이에요. '음주가무, 노래만큼 좋은 세상, 노모사모(노래도 못하면서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한울타리, 불패, 한결같이…' 이름 짓기 전에 나온 후보들이죠.

'음주가무'는 제가 생각했는데 처음엔 다들 딱 자기들한테 맞다고 좋아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공력이 느껴지는 '반대'가 나왔죠. 나중에 이 모임이 다른 곳에 가서 연대 공연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음주가무'라고 소개받으면 너무 이상하지 않겠느냐는 거였어요. 사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언니들도 저랑 마음이 같은 거였죠.

그러다가 한 언니가 팸플릿을 보더니 "비상 어때?" 하는 거예요. 저도, 다른 언니들도 무릎을 치며 "그거 좋다!" 했지요. 부르기도 싶고, 멋도 있고, 무엇보다 노래로 '비상'하고픈 마음을 담기에도 딱 좋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노래모임 이름은 '비상(匕翔)'이 되었답니다.

노래모임을 하던 그 날은,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가 본격으로 장사를 시작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십만원 넘게 산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네요.
▲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바뀐 풍경 노래모임을 하던 그 날은,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가 본격으로 장사를 시작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십만원 넘게 산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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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들이 첫 노래모임을 하는 중에, 천막농성장 바깥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공정위 승인을 받은 홈플러스, 드디어 홈에버에서 본격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죠. 그래서 많이 산 사람들한테 사은품을 주는 행사를 하는 중이었어요. 여느 날보다 사람이 많다 했더니 그런 까닭이었죠.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나는, 우리는, 바로 저 자리에서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결성식'을 하고 있는데 법으로는, 그 순간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 분회'는 없는 거잖아요. 나중에 홈플러스에 복귀하더라도 그 땐 홈플러스 직원들이지 홈에버 직원은 아니니까요. 홈플러스랑 교섭이 잘 되서, 이 언니들이 모두 복직 또는 복귀를 하게 되면 그땐 이 모임은 어떡하나.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 분회 노래모임'이라는 이 이름은 어떡하나. 

사실은, 지금도 그 게 많이 헷갈리고 어렵기만 해요. 하지만 나중에 이름이 혹 바뀌더라도 우리들의 정체성만큼은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우리들의 뿌리고, 출발이고, 바탕이라는 거. 그래서 복잡했던 마음을 접고 이렇게 우리들의 소중한 노래모임 만들어진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름'보다 '소속'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일 테니까요. 그 마음일 테니까요.

마음모아 부르는 노래, 함께 들으실래요?

그런 마음으로, 우리들은 오는 금요일(10월 10일)에 상암 홈에버 앞에서 열리는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금요문화제'에서 첫 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전날 목요일, 노래 연습을 나름 알차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마음껏 노래 연습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은평구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아주 좋은 공간을 물색했어요. 일정 시간 동안 빌려서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곳이죠. 노래연습이든, 그 무엇이든. 물론 '돈'을 내야하는 곳이지요. 다만 제가 속한 진보신당 은평위원회에서 여러 번 행사를 치른 곳이라 인연이 있어서 좀 싸게 쓰기로 했습니다.

참! 이쯤에서 제가 이 노래모임에서 무얼 하는지 말씀드려야겠군요. 아시다시피 저는 월드컵분회 조합원이 아니에요. 해서 언니들이랑 같이 지은 이름은 '노래 매니저'랍니다. 노래강사 그런 거랑은 아주 달라요. 전 기타코드 말곤, 음표 읽을 줄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 건 할 수도 없어요.

말 그대로 매니저지요. 언니들 챙기고, 어떤 노래 부를지 같이 고민하고 여건이 되서 외부 노래강사들 부를 때 중간다리하고. 그런 몫을 하게 될 거 같아요. 언니들이랑 앞으로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지 그런 것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마다 열리는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문화제만큼은 이 노래모임이 조금은 책임질 수 있겠는, 그런 노래들부터 불러 볼 생각이에요.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비상'은 저 포함 모두 9명이 시작했습니다. 남자 분은 그날 함께 있던 분으로 회원은 아니랍니다. 회장 맡은 언니가 일이 있어서 사진에는 안 나오네요.
▲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비상' 회원들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비상'은 저 포함 모두 9명이 시작했습니다. 남자 분은 그날 함께 있던 분으로 회원은 아니랍니다. 회장 맡은 언니가 일이 있어서 사진에는 안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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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씀인데요. 이건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모임 '비상'의 노래 매니저로서 요청 드리는 겁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열릴 문화제에 많이들 와주세요. 남들 앞에서 노래한다는 거 주저주저 망설이던 이 언니들이, 노래모임을 만든 뒤에 여는 첫 공연이랍니다.

쉬운 노래들로 몇 곡만 부를 테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박수 쳐주고, 힘도 주시면 우리 언니들이 힘 많이 받을 거에요. 딴따라 기질은 타고나기도 하는 거지만,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많이들 오셔서 이 언니들의 딴따라 기질을 마구 이끌어내 주세요. 용기와 힘주시는 것도 물론이구요.

저 기분 아주아주 좋으면서도, 저 때로 아주아주 걱정도 돼요. 내가 매니저 노릇 잘 할 수 있을까. 이 노래모임 잘 굴러가게 힘이 될 수 있을까. 이거 한다고 언니들한테 또 다른 짐이 되지는 않을까. 사실은 저부터 용기와 힘이 필요해요. 혼자 무대에 서는 거랑은 정말 다른 느낌이예요. 꼭 오셔서 저와 이 언니들한테 힘을 실어 주세요. 기다릴 거예요. *^^*


태그:#비정규직, #이랜드, #홈에버, #노래패,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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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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