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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촛불집회 시위대 진압명령을 거부했다가 탈영·근무지 이탈, 상관에 대한 명예훼손, 명령 불복종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길준 이경의 첫 심리공판이 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북부지방법원 101호 법정에서 열린다.

 

명예훼손과 명령불복종... "인정할 수 없다"

 

이길준 이경은 당시 양심선언을 통해 '전의경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면서 7월 27일 외박을 나온 뒤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5일간 서울 신월동 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월 31일 농성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 직후 서울 중랑경찰서로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으나, 경찰은 소속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날짜를 어긴 데 대해 전투경찰대설치법 위반 혐의로 8월 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현재까지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이경은 이번 첫 심리공판에 앞서 '전의경제도 폐지를 위한 연대'로 편지를 보내 최근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팀 '밀란'의 구단주이자 이탈리아 총리인 베를루스코나는 기업 최고 경영인 출신으로, 어마어마한 재산도 갖고있고 언론사도 3개씩이나 갖고 있다"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총리로 뽑아놨는데 우리나라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많은 해석과 논의과정을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이끌려는 열망은 어긋난 소통의 모습"이라며 "언론은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권력을 낳기도 한다"고 현 정권을 겨냥했다.

 

또한, 그는 "소통을 하고 그 속에서 주체로 서기 위한 움직임, 다양한 생각이 뒤섞여 재조합하고 재생산되는 과정들의 기본은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라며 "내가 지키려고 했고 앞으로 지키려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의 박스 기사는 이길준 이경이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소통의 풍경들 : 힉스 입자, 나폴리의 쓰레기, 그라운드 제로, 조형기"

 

1. 얼마 전 대통령과의 대화가 TV로 중계되었다죠. TV로는 못보고 무슨 얘기와 포즈가 있었는지 궁금해 신문에 실린 기사로 좀 봤는데 역시 별 감흥이 없더군요.

 

작은 목소리들은 묻혀져가고, 북쪽 독재자의 건강상태에 호들갑을 떠는 요즘, 그나마 제게 재미있는 소식은 강입자가속기 실험이에요. 양성자들을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빅뱅을 재현하고 그 안에서, 다른 입자와 접촉해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나 다른 입자와 짝이 되며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구성입자와 숨겨진 고차원을 발견하게 해줄 초대칭 입자 같은 것들을 찾는 거죠. 인상적이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알게 모르게 삶을 바꿔놓을 거에요.

 

소통이란게 이런게 아니겠어요? 이 실험 자체가 거대한 소통이죠. 모인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이자,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 간의 소통. 더 잘 알기 위한 실험은 정복적 지식욕이라기보다 매혹적인 소통의 제스추어죠. 더 많은 이해는 더 깊은 소통을 불러오고, 소통들은 또다른 이해를 불러오니까요. 충돌과 빅뱅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의미들, 힉스입자처럼 각자의 삶에 질량을 부여하는 수많은 관계들, 초대칭 입자처럼 사회의 암흑물질을 파악하고 숨겨진 차원을 발견하도록 자극하는 소통의 흐름들. 소중하지만 망각하기 쉬운 것들.

 

2.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팀은 밀란이에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선 구단주 때문에 그 팀을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 구단주가 이곳의 어떤 분이랑 이미지가 비슷하다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텐데, 기업 최고경영인 출신으로 국가수반에까지 오른 현직 정치인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있고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죠. 바로 이탈리아의 총리인 베를루스코나인데, 돈도 많고 축구에 대한 안목도 있는 듯해 구단주로는 괜찮지만 그래도 팀의 팬 입장에선 정치나 팀 둘 중 하나에선 손을 떼면 좋겠어요.

 

어쨌거나 이 사람이 하던 기업이 건설업체였고 열심히 삽질하려하면 그것도 피곤한 일일텐데, 그건 아니지만 또 언론사라 그게 피곤한 모양이에요. 언론사 세 개가 이 사람 소유거든요. 여기 와서 이 사람에 대한 다큐를 봤는데 -아마 사장문제로 시끄러울 때 KBS가 만든듯- 대단하더군요. 오래 전부터 방송을 통해 베 총리가 내세우는 가치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아왔고,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경제를 위해 또 그를 찍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언론인들은 한없이 무기력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고요. 베 총리가 가진 부와 권력이 모두 그의 이미지 플레이에 동원되죠. 축구조차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에 대한 지지가 되고, 응원구호는 정치적 구호가 되죠. 하긴 그런 일은 이곳에서도 있었군요.

 

뭐, 개인이든 단체든 얼마간의 언론 플레이는 필요하고 충분히 유쾌할 수 있는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그 뒤에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열망이 있을 때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많은 해석과 논의과정을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이끌려는 열망. 대단하달 수도 있겠지만, 어긋난 소통의 모습이기도 하죠. 편견이 만든 편견에 의해 통제하여 통제되는 폭력적인 소통의 연계들.

 

이런 것들은 숙고해서 전략을 짜 복잡하게 기획됐을 수도 있지만 작동방식은 단순해요. 베 총리가 한 것 중에 밀란의 전통적 라이벌인 나폴리의 쓰레기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이 쓰레기들을 전 정권의 기간과 일치시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언론은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권력을 낳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희생자이면서 공조자가 되고, 사회는 만들어진 가치로 굴러가죠. 그저 눈 크게 뜨고 쓰레기는 쌓이기 전에 치우고, 만들어내지 않아야겠어요.

 

3. 그러고보니 며칠 전은 9·11테러 7주기이기도 했어요. 먼 산 바라보고 살짝 찌푸리며, 허허, 벌써 7년이라니.라고 하기라도 해야 할 기분. 그 때 전 학교에서 내준 과제로 도장에 이름을 새기고 있었어요. 마천루를 뒤덮은 연기와 비행기가 거짓말처럼 쏘옥 안기는 광경도 제 머릿 속에 새겨지고 있었죠. 그 광격이 생중계되는 동안 전 메신저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 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엇나간 소통이 만든 참극이었어요.

 

다시온 그날을 맞아 추모의 빛도 쏘고, 새 건물도 짓는 걸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저 잿더미 위에 쌓아올릴 것, 새 랜드마크 뿐 아니라 평화적인 소통에 대한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먼저 폭력을 그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구호가 반복되며 밋밋해지난 만큼이나 일상에서 반복되는 폭력들에 무감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엇나간 소통으로서의 전쟁이 정말 잔인하다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낀 건, 전설로 들은 베트남 전쟁도, 동네 애들하고 스커드가 이길지 페트리어트가 이길지 내기하던 걸프전도, 입으로만 반전구호를 외치던 이라크 전쟁도 아니었어요. 그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었는데, 어떤 사진 때문이었죠.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미사일에 낙서를 하는 사진이었어요. 폐기되는 미사일에 평화의 메세지를 적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레바논에 발사될 미사일에 저주의 말을 쓰는 거더군요. 세상에. 그 무자비한 소통의 풍경. 이웃나라 사람이 죽는게 그리 신나는 축제인가요. 그 어린 애들한테? 그 증오는, 웃는 얼굴 뒤의 무심한 잔인함은 어디서 체득한건지. 서핑하다 우연히 본 사진이 퍼뜩 정신을 들게 하더군요. 그 또한 언론플레이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도 여기에선 증오의 비행기가 날고 냉혹한 미사일이 쏟아지고 있어요. 무너지는 잔해에 비명들이 묻히기 전에, 너무 늦지 않아야할텐데요. 한편으론 희망적이지만, 또 한편 막막한 기분.

 

4. 어떤 것이든 소통은 삶의 기본 단위라 생각해요. 각자의 방식대로의 이해가 부딪히고 접점을 찾으며 새로운 의미들을 만드는 과정은 유쾌하고, 떠들썩하고, 따뜻한 것이죠. 타인에 대한 권력욕이 움직일 때 생기를 잃고 족쇄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소통을 하고 그 속에서 주체로 서기 위한 움직임, 다양한 생각이 뒤섞이고 재조합, 재생산되는 과정, 그 기본이 되는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제가 지키려했고 지키려하는건 이런 것들일지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방 사람들에게 저의 인터내셔널한 프랜드쉽을 알리고자 쉼리(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이스라엘 병역거부자)씨의 메세지를 읽어주었죠. 발음이 그게 뭐냐고, 조형기냐고 그러더군요. 답장을 쓰고 싶어도 '헬로? 아임 파인, 땡큐'에서 진전이 안되고. 정보화시대에 공용어도 제대로 모르는걸 통탄하며 방성대곡하다 문득 어뤼지날 잉클리쉬의 터득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소통에 있어서 이해와 인정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리하야 연휴 끝무렵 반성하며 이런 얘길 쓰고 있네요.

 

처음에 입자가속기 얘길 했죠. 이 실험의 부작용으로 블랙홀이 생겨나 모든걸 삼킨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가 떠도는데, 현실에선 이 블랙홀이 모든걸 삼키며 질량을 부여하고 숨겨진 차원을 찾는 일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굴하지 않는, 야릇한 입자들의 꿋꿋한 활약을 응원합니다. 얍!

 

2008. 9. 15.

성동구치소에서 길준

덧붙이는 글 | 정미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이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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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 활동을 통해 '기자'라는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문제를 비롯해 인권, 대학교(행정 및 교육) 등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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