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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이하 협의회)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들어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 모여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2009년부터 적용될 초등학교 1, 2학년 '즐거운 생활' 실험본 교과서의 내용이 예전에 견주어 현저히 개악되었다며 이를 바로잡아달라고 주장하고 이런 건의서를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건넸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현행 7차 교육과정에 의한 '즐거운 생활' 교과서에 1학년 음악 27시간 중 국악이 13시간(48.1%)이었던 것이 실험본(2007 개정교육과정)에는 19시간 중 7시간 (36.8%)으로 줄었으며, 2학년은 음악 32시간 중 12시간(37.5%)이 22시간 중 2시간 (9.1%)으로 급격히 줄어 서양음악에 견주어 국악 시간은 1/4 밖에 되지 않아 국악교육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반발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는 없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검토 중인바, 이에 협의회는 일인시위를 벌이며, 초등학교 1, 2학년 '즐거운 생활' 실험본 교과서의 내용이 바로잡히도록 애쓰는 가운데 9월 22일 늦은 2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광복 63년, 초·중등 국악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대토론회는 먼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한명회 이미시문화원 원장의 개회사에 이어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정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 의원(민주당)의 격려사가 있었다.

 

격려사에서 황병기 감독은 "국악은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서양클래식은 세계공통어라고 말하지만 실제 이렇게 말하는 서양클래식은 18~19세기 음악이다"라는 점을 지적했고 김광웅 교수는 "서양 합리주의의 2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춘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국가가 되려면 우리 것을 알리고 소중하게 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국악교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한국국악학회 회장인 서울대학교 국악과 황준연 교수가 '한국 음악교육의 문제와 대책'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황 교수는 지금의 한국 음악교육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개괄적으로 제시하고 토론자들이 이를 바로잡을 방안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또 그는 현재 초등학교 1, 2학년 '즐거운 생활' 실험본 교과서 발행 저지를 위한 투쟁은 일인시위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국악 연주자 2천여 명과 시민 10만여 명이 참여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영운 한양대 교수의 사회로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자 우선 서울대 국문학과 권두환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는 "학교를 시장으로, 학생을 고객이나 수요자로만 보는 교육관은 큰 잘못임이다. 학생들이 재미없어하고,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려워한다는 논리로 꼭 가르쳐야 할 내용을 배제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권오성 동북아음악연구소 소장은 "초등학교 고과서는 우리 것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 특히 언어·역사·예술 등을 초등학교 때 확실히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금 교과서는 일본 강점기 때 우리 것을 말살한 내용을 조금씩 고쳐온 정도일 뿐임을 상기시켰다.

 

이어서 교육 현장의 말을 들었다. E-국악아카데미에서 전래동요 사이버연수 강의를 하는 김영미 서울 창신초등학교 교사는 "국악이 어렵다거나 재미없다는 말하는 것은 자주 접하지 못하는 탓에 의한 <낯섦>이다. 이 <낯섦>을 극복하려면 <마주 대하기>를 자주 해야만 한다. 교과서에 더 많이 실어주고, 아이들이 놀 마당을 만들어주면 될 것을 단순한 논리로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짚었다.

 

이후 사회자가 국악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 스스로 달걀이 되어 바위에 던져지기를 마다치 않았다고 소개한 이인수 대구교육대학 교수는 "현재 교육대학 교수 중 서양음악 전공자는 평균 5명이지만 국악전공자는 대부분 1명뿐이며, 심지어 사범대는 9개 대학 중 6개 대학이 한 명도 없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학교 음악교육의 왜곡은 바로잡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에 나선 주태연 서울 장지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우리 것과 외국 것을 같이 존중하면서 즐길 줄 아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과서를 쓴 사람들은 우리 것이 내면화되지 않은 대신 서양 것만 아는 사람들이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는 아이들의 음악적 성장에 폭행을 가한 잔인한 행동이다. 국악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들어가서 아이들을 위해 전면 다시 집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자들의 발표가 끝나고 한국국악교육연구회가 주관한 '즐거운 생활 국악교육과 관련한 초등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인식 조사' 결과를 서울 거여초등학교 허정미 교사가 발표했다. 발표는 우선 전래동요 선호조사에서 좋아함과 싫어함의 비율이 교사는 56.8% 대  14.3%, 학생은 37.8% 대 21.2%, 학부모는 41.8% 대 13.1%로 나왔다고 보고했다.

 

이어 국악교육의 비중을 '대폭 또는 좀 더 늘려야 한다' 대 '필요없다'의 비율이 교사는 72% 대 0.6%, 학부모는 42.5 대 2.4%였으며, 학생은 국악을 '더 많이 배우고 싶다'와 '필요없다'의 비율이 53.2% 대 4.2%로 드러났다. 청중들은 이 결과 보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논리가 매우 궁색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이 발표가 끝난 뒤 최상화 중앙대 교수가 사회를 본 자유토론 시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조순자 선생, 경기도립국악단 김영동 예술감독, 국립국악학교 박희덕 교감, 분당 청솔초등학교 김선희 교사도 한 마디 거들었다.

 

특히 국립국악원 김경희 학예연구관은 "국악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면 매번 만원이다. 어떻게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정길선 경기청소년국악관현악단장은 "이번 문제엔 국악 교육자만이 아닌 연주자들도 모두 참여하여서 하나가 될 때 바로잡을 수 있다. 그리고 교육청마다 국악교육 교사 연수를 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행사의 맨 마지막은 전통음악회 회장인 단국대 서한범 교수의 성명서 낭독이 맡았다. 성명서를 통해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와 국악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국악이 곧 우리 문화임을 간과하고 문화말살정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비율로 국악의 비중을 축소하여 제작한 현 실험본 교과서의 국악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재검토하여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에 어긋남이 없도록 교과서와 지도서를 새롭게 제작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들은 "초 중등학교에서 국악 교육이 정상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교육대학 및 사범대학에서 교사에 대한 국악 의무연수 등 구체적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시행하라"는 등의 요구도 덧붙였다.

 

국악을 사랑하는 이들은 외친다. "국악 짓밟은 교과서, 지금이 일본강점기인가?"라고 말이다. 더하여 "일본과 중국은 없는 역사도 거짓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뿌리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스스로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외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 #국악교육, #교과서, #즐거운 생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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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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