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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관이라 부르며 현재는 아동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세자관. 심양관이라 부르며 현재는 아동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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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의 신하들이 줄줄이 잡혀왔다는 보고를 받은 소현세자는 망연자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명길은 현직 영의정 신분으로 잡혀왔고 김상헌은 전 판서다. 뿐만 아니라 전 정승 이경여, 동양위(東陽尉) 신익성, 전 판서 이명한, 전 참판 허계, 전 정언 신익전이 잡혀 왔으니 조선의 내로라하는 신하들이 모두 잡혀 온 셈이다.

심양의 추위는 가히 살인적이다.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북풍한설은 공포 바로 그것이다. 소·대한이 겹친 정월 추위가 매섭다. 의주에서 심양까지 7백리. 목에 철쇠를 두르고 통원보와 요양을 거쳐 심양에 도착한 신하들의 고생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소현은 어디에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이대로 두면 많은 신하들이 희생될 수 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신하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소현이 재신(宰臣)과 종관(從官) 그리고 인질생활하고 있는 질자(質子)들을 불렀다.

"국가가 이와 같은 비상한 변을 만나 명경(名卿) 귀척(貴戚)이 불의의 화를 당하였으므로 상께서 지금 몸을 조섭하고 계시는 가운데 걱정이 깊으실 것이다. 내가 친히 황제 앞에 가서 글을 올려 힘껏 구제하여 억울함을 풀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하! 저희들은 저하와 함께 죽고 살기를 맹세했습니다."

소현은 제신들을 거느리고 황궁을 찾았다. 황제의 처소에 나아가 글을 올리니 황제가 곧 응답했다.

"동양위 형제와 심천민· 이지룡을 석방하라. 이들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국왕의 가까운 척속이며 세자가 하소연하기 때문에 특별히 용서하여 국왕과 세자의 광채를 내주기 위해서다. 그 나머지는 세자가 아무리 간청하더라도 풀어줄 수 없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물꼬를 텄다'고 자위한 소현이 세자관으로 돌아왔다. 뒤따라 온 범문정과 용골대가 동관에 투옥되어 있던 동양위 형제를 불러냈다. 세자관에 불려온 그들을 기둥 아래에 꿇어앉히고 범문정이 황제의 명을 전유(傳諭)했다.

새로운 강자에게 고개를 꺾어라

"조선은 남조와 한집안이었고 임진년에 큰 은혜를 받았으니 선왕(先王)이 충성을 다한 것은 옳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병자년 동정 때, 황제께서 친히 병마를 거느리고 나가 한 나라의 군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가 화친을 약속한 뒤에 국왕과 세자에서부터 만조백관과 백만 창생에 이르기까지 다 우리의 은혜를 입어 살아났으니 금왕(今王)이 그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는가?"

"반드시 이 말을 국왕에게 치고(馳告)하겠습니다."

정명수가 목에 씌운 칼과 포박을 풀어주고 황제의 처소를 향해 사배(四拜)하라 명했다. 이튿날 용골대가 세자관을 찾아왔다.

"김상헌은 북관으로 옮겨 안치하고 이경여· 이명한· 허계 세 사람은 사형으로 조율하였으나 황제께서 차마 죽이지 않고 모두 삭직하여 방면한다. 이경여와 이명한은 각각 은 1천 냥을 바치고 허계는 6백 냥을 바치되 각자 자기 집에서 준비하여 바치게 하시오."

속환금을 국고에서 바치면 자신들이 흩어갈 자금이 고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계산이다. 봉황성에 압송된 아버지가 심양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접한 최명길의 아들 최후량은 돈을 싸들고 심양을 찾았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 어떻게 뇌물을 써야할지 난감했다. 돈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후량이 세자관을 찾아 빈객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식된 자로서 아버지를 위하여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죽고 사는 것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약간의 돈을 마련해왔는데 어떻게 써야 하겠습니까?"

"옥에는 자네의 아버지와 청음이 있네. 자네 아버지만을 위한 구명계책은 모양새가 좋지 않네. 또한, 김상헌은 곧은 사람이네. 청음은 자네가 뇌물을 써서 화를 완화시키려는 것을 반드시 그르다고 여길 것일세."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는데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대감을 만나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했으나 자신이 없었다. 김상헌은 천하가 아는 대쪽 같은 사람 아닌가. 후량은 김상헌이 투옥되어 있는 북관을 찾아 옥사장에게 뇌물을 주고 김상헌을 면회했다. 갑작스러운 후량의 면회를 받은 김상헌의 심정은 야릇했다. 정적의 아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이지만 먼 길을 찾아온 손님이다. 김상헌은 물리치지 않고 면회를 받아들였다.

주나라의 신의생이 한 일 "잘했나요? 못했나요?"

"산의생(散宜生)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김상헌의 표정을 살피던 후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옛날의 성인이지."

동쪽을 바라보던 김상헌이 말끝을 흐렸다. 동쪽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이다. 허공을 응시하던 김상헌의 동공이 간절한 소망으로 흔들렸다. 김상헌의 답변을 얻어낸 후량은 한숨을 놓았다. 신의생은 주나라의 문왕이 주(紂)에게 잡혀 옥에 갇혀 있을 때, 주에게 보옥과 미인을 뇌물로 바치고 문왕을 석방시켰던 인물이다.

"김 대감의 은미한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자관으로 돌아온 후량은 빈객에게 결과를 알렸다. 빈객의 안내를 받은 후량은 아버지 최명길과 김상헌을 잘 봐달라고 정명수에게 뇌물을 퍼부었다.

최후량의 면회로 최명길과 벽 하나 사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상헌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정적. 그러나 한 지붕 아래 있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다. 순리라면 한 지붕 아래 있어서는 아니 되지 않은가? 모순이라 하기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상헌은 시를 지어 옆방에 넣어 주었다.

아침과 저녁을 바꿀 수 있을지라도/雖然反夙暮
웃옷과 아래옷을 거꾸로 입을소냐/未可倒裳衣
성공과 실패는 천운에 달려있으니/成敗關天運
모름지기 의로 돌아가야 하잖은가/須看義與歸

권세는 혹 어진이도 그르칠 수 있으나/權或賢猶誤
경만은 모든 사람이 어길 수 없는 것/經應衆莫違
이치에 밝은 선비에게 말하노니/寄言明理士
급한 때라도 저울질을 삼가라/造次愼衡機

날선 시다. 김상헌은 최명길이 오랑캐에 빌붙어 권세만 쫓는 경박한 선비로 이해했다. 하지만 삼전도 항복 후, 명나라와 소통을 추진했던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나라 사랑이 단순한 개인 영달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을을 다 열지는 않았다.

끓는 물도 얼음장도 다 같은 물이요/湯氷俱是水
털옷도 삼베옷도 옷 아닌 것 없느니/裘葛莫非衣
고요한 곳에서 뭇 움직임을 볼 수 있어야/靜處觀群動
진실로 원만한 귀결을 지을 수 있는 것/眞成爛熳歸

어쩌다가 일이 때를 따라 다를지라도/事或隨時別
속마음이야 어찌 정도와 어긋나겠는가/心寧與道違
그대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君能悟其理
말함도 침묵함도 각기 천기로세/語黓各天機

최명길 역시 김상헌이 국체보전은 안중에 없고 명예에 집착하는 인물이라고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었다. 정승 천거에 반대한 일도 있다.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를 보고 그의 지조에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운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극적인 만남

운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극적이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한 논쟁이었다 하더라도 물과 불처럼 갈려 격론을 펼쳤던 사람이 논쟁의 대상 청나라에 잡혀와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구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옥중시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경여는 탄복했다. 즉시 시를 지어 두 사람에게 보냈다.

두 어른 경ㆍ권이 각기 나라를 위한 것인데/二老經權各爲公
하늘을 떠받드는 큰 절개요 한때를 건져낸 큰 공적일세/擊天大節濟時功
이제야 원만히 함께 돌아간 곳/如今爛熳同歸地
모두가 남관의 백발 늙은이일세/俱是南館白首翁
- <지천유사>

김상헌도 최명길을 남송의 진회(秦檜)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며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찢으면 주워 맞추는 사람도 있어야지요'라며 최명길이 지은 항서를 자신이 찢어버렸을 때 그 조각을 줍던 최명길의 모습에서 전율했다. 또한 그의 마음이 본래 오랑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에 접었던 마음을 풀었다.

진회는 송나라 시대 정치가다. 오랑캐라 얕잡아보던 금나라가 우세한 군사력으로 남침을 거듭하자 목숨 걸고 항전하자는 군벌과 명분논자를 물리치고 중국을 남북으로 가르는 굴욕적인 협정에 합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나라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취하고 세폐를 바쳤다. 차츰 국력을 회복한 송나라는 군신의 예를 숙질의 예로 변경하고 국채를 보전하였다.

명분과 실리. 선비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명분이다. 실리는 짧고 명예는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명분이 국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 기로에 선다. 그 기로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갈등했던 것이다.

양 대의 우정을 찾고/從㝷兩世好
백 년의 의심을 푼다/頓釋百年疑

김상헌이 시를 지어 보내자 최명길이 답 시를 보냈다.

그대 마음 차돌 같아 끝내 돌리기 어렵고/君心如石終難轉
나의 도는 둥근 고리 같아 신념 따라 돈다/吾道如環信所隨

이들이 시를 주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택당(澤堂) 이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청음(淸陰)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비록 지조가 높으나 또한 완성군(完城君)이 열어놓은 남한산성의 문으로 나왔다."


태그:#소현세자, #최명길, #김상헌, #최후량,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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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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