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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2006년 10월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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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파이 의혹'을 받았던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9월 초 청와대·외교통상부·대검찰청·국정원 등에 진정서를 낸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백 회장은 '경인방송 이사회 의장'과 '영안모자 회장' 명의로 지난 3일과 4일 각각 외교통상부·대검찰청, 청와대·국정원에 각각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진정서에는 "나는 성실한 기업가일 뿐이지 미국 스파이로 활동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수 성향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안응모 전 내무부장관도 지난 9일 백 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성학 회장은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와 함께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과 관련 국회 위증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10월 2일 열린다.

'미 스파이 사건' 4월 정상회담에서 비공식 의제로 다뤄졌나?

백 회장이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권력기관 등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을 두고 '법정구속만은  피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정부의 리차드 롤리스 현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의 구명 움직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의 핵심은 리차드 롤리스 당시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백성학 회장을 통해 국가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 정부가 한국에 '스파이단'을 운용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지난 2년간 한미 양국 사이에 잠복된 외교현안이었다.

미국 정부는 '우방국가에서 스파이 활동을 벌이는 국가'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한미동맹관계의 복원을 바라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미국 정부에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롤리스 특보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한국 정부측에 요청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관련 지난 9일자 <내일신문> 보도는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이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때 비공식 의제로 다뤄졌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백성학 미국 스파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관계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4월 이 대통령 방미 때 캠프 데이비드에서 우리 정부가 한미관계 복원을 강조하자 미국측이 그동안 계류 중(pending)인 문제 중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했다. 그는 '외교부 장관이 당시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측은 '롤리스 특보와 백 회장의 스파이 혐의를 벗겨줘야 한미관계 복원이 가능하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이 기사에서 언급된 '외교소식통'이 미국 사정에 정통한 한나라당 고위 인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보도 직후 청와대 측은 "어떻게 그런 것이 한미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수 있느냐"며 "당시 회담에서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은 비공식 의제로도 거론된 바 없다"고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국가보훈처장은 왜 롤리스 특보를 만났을까?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미국측의 압박에 이명박 정부가 나름대로 대응했다는 징후가 포착됐다는 점이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6월 초 리차드 롤리스 특보를 만나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한 사실이 확인된 것. 

김 처장과 롤리스 특보는 20여년 지기일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장이 롤리스 특보를 만나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을 논의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 처장을 이명박 정부의 메신저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김 처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월간 <신동아>는 2008년 9월호에서 김 처장이 "지난 6월 초 로버트 게이트 미 국방방관이 주한미군사령관 이·취임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게이츠 장관을 수행한 롤리스 특보와 '미국 스파이 사건'을 논의했다, 메신저 역은 아니고 우리 정부 관료로서 주로 그쪽 입장을 청취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김양 처장과 허만섭 <신동아> 기자의 일문일답 중 일부다. 약간 길지만 중요한 맥락을 담고 있다고 판단돼 주요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 롤리스 특보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 및 미국 스파이 사건을 논의했나요.
"네, 네. 스파이건은 당사자인 그분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듣는 차원에서. 쇠고기 건은 그때 한참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때여서 화제가 된 거고요."

- 처장께선 보훈처에 계시고 롤리스 특보는 미국 국방부에 소속되어 있는데 두 분이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아, 내가 롤리스 특보와 안 지가 한두 해도 아니고 20여년 전부터 알고 지냈어요. 우리 두 사람이 기업에 있을 때부터. 그쪽으로부터 미국 스파이 사건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받기도 했고요."

- 처장께서 미국 스파이 사건의 한국 정부측 메신저 역이라는 얘기도.
"옛날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불만 사항 하소연하면 들어드리고, 아이디어 물으면 답 드리고, 조언하는 정도죠. 메신저는 아니고요."

- 롤리스 특보는 미국 스파이 사건의 미국측 주동자로 몰렸었죠.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처장께 무엇이라고 말하던가요.
"짧게 말하더군요. '이 사건이 해결 안 되고 있다. 펜딩(pending) 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 이 문제가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요.
"거꾸로 말해 한미관계에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네이밍(naming)을 당하는 입장인 미국 정부로선 굉장히 억울해할 만하다고 봅니다. 자기를 스파이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상대방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 결국 쟁점의 핵심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물증이 있느냐는 건데요.
"없다는 거죠. 전(前) 정권 때 정확한 에비던스(evidence, 증거)도 없이 동맹국에 스파이 누명을 씌운 건 아닌가 합니다."

김양 처장 "법원 판결 통해 손 털고 나올 수 있으면 좋은 것"

김 처장의 답변 내용은 그와 롤리스 특보의 만남에 '한미관계 복원'이라는 노림수가 숨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또다른 발언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전 정권이 미국과의 관계를 이런 방식으로 몰고 갔는데 새 정권은 미국과 잘해 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미국 스파이 사건과 같은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정부 출범 이후 한꺼번에 국내문제가 나와 스파이 사건까지 처리하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또한 김 처장의 발언은 개인 의견을 넘어 이명박 정부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현 정권은 스파이 사건이 무리하게 사건화됐다는 점에 동의하고 법 제도의 틀에서 문제를 매듭짓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재규명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특히 김 처장은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의 해결 방안까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간 사안이므로 행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일단 판결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매듭지어져야 한다"며 "(한미관계 관련 부분은) 법원 판결을 통해 완벽하게 손 털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김 처장의 발언에는 10월 2일 예정된 1심 판결에서 롤리스 특보와 백 회장의 '미국의 스파이 활동' 혐의가 깨끗히 정리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실려 있다.   

김양 처장은 최근 한 언론사 기자와 만나 "롤리스 특보 등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롤리스 차관보와의 만남도) 사적인 것"이라고 '이명박 정부의 메신저 역할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김 처장은 "<신동아>에 보도된 '법적 제도적 틀 안에서 매듭짓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발언은 (사건이 법정에 가 있으니까) 그건 법정에서 끝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그렇게 어렵게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태그:#백성학,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 #리차드 롤리스, #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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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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