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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교 문제가 공무원 사회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종교편향 대책 때문이다. 나는 10년차 현직 공무원이며, 종교에 관심이 있을 뿐 종교는 따로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종교 편향 문제로 불교계와 갈등을 겪는 현 정부가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쏟는 듯하다. 유화 발언과 대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8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현 정부에서 종교차별로 오해할 사례가 있었다고 운을 띄운 후, 9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과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린다면,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종교 차별을 하지 않겠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으로는 정부의 대책은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전시행정에 불과한다고 본다. 또한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해법처럼 보인다.

 

민원인 종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정부가 발표한 종교차별 금지 대책은 크게 3가지 정도다. ▲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개정하고 ▲ 관련 내용에 따라 공무원행동강령을 개정하고 ▲ 전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종교편향 방지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결국 내놓은 대책이란, 종교차별을 하지 않도록 전국의 공무원들을 감시·감독하고 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나는 일선 공무원들이 민원업무를 하면서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차별대우하거나 특정종교를 우대 혹은 홀대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각종 인허가, 서류 발급, 민원 처리, 재판 업무 등을 하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없다.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최소한 이에 대한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 편향 논란을 불러온 원인이 무엇이고,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따져 보자.

 

새 정부 들어 종교 차별 논란이 부각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불교계와 국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주요 공직자 임명에서 특정 종교에 치우친 인사,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고위 공직자의 종교 관련 부적절한 발언, 고위직 인사가 특정 종교행사에만 참석하거나 참석을 독려하는 행위, 국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특정 종교자료 누락, 특정 종교계 지도자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검문 때문이다.

 

공무원 전체 아닌 극소수 고위직 문제

 

이같은 논란의 당사자는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교육감, 자치단체장, 경찰청장 등이고 그들의 발언과 행동이 구설수에 올랐다. 결국 극소수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하거나 오해 살 만한 처신이 문제가 된 것이다.

 

냉철히 따져 보면 종교편향 문제는 100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 전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인사권 행사, 예산 집행, 정책 추진, 인력 동원 등 막강한 권한이 있는 극소수 고위직, 선출직 공무원에 국한된 문제다.

 

청와대와 정부는 종교차별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불교계와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어쨌거나 대통령도 결국 유감 표명을 하였다.   

 

설사 순전히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라 해도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물의를 빚은 사람들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옳다. 일벌 백계 차원에서 그런 행동을 한 고위직 공무원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책은 몇몇 고위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공무원 전체의 문제로 떠넘기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또 종교편향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종교계 인사들과 대화하고, 대통령의 권한으로 타당한 요구는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차별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 공무원들이 복무규정을 외우고, 종교 차별 방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다. 이것은 업무처리하는 데 종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오히려 종교를 의식하게 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정부의 말대로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관리· 감독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시 행정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헌법 11조 대로 일하면 그만

 

대다수 공무원들은 "종교 편향 문제로 사고를 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또 동원되어 뒷수습해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13년차 공무원인 직장 동료는 "정부는 무슨 일만 벌어지면 공무원들이 잘하라고 하는데, 뭘 잘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11조 1항)의 정신대로 공무원들은 공정하게 일하면 된다. 민원 업무에 바쁜 일선 공무원들을 전시 행정에 동원해서는 안된다.


태그:#종교, #종교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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