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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 입은 여성의 다리 촬영 무죄.'

지난 7일부터 대부분 언론과 포털사이트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법원이 지하철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내용이다. 여성의 신체를 카메라에 담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에겐 솔깃한 내용이다.

또한 기사에는 올해 초 대법원이 유사한 사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사실도 소개됐다.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본인 동의 없이 촬영해도 괜찮다는 법원의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언론 보도만 보자면, 법원이 '지하철 몰카'에 면죄부를 준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그럴까. 이젠 길거리에서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다리를 카메라로 찍어도 아무 상관없을까.

검찰 "미니스커트 입은 하반신 촬영은 성적 욕망·수치심 유발"

기사거리가 된 것은 9월 2일 선고한 수원지방법원(2008노 2021호 사건) 판결이다. 지난 4월,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항소한 사건이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하기 위해 검찰의 공소사실과 판결문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A씨는 2007년 10월 전철을 타고 가던 중, 자신의 맞은 편 대각선 방향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앉아 있던 B씨를 발견한다. A씨는 B씨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촬영 직후 셔터소리가 나는 바람에 A씨는 승객들에게 발각되었다.

사진에는 B씨의 얼굴은 없고 어깨 이하부터의 몸 전체가 촬영되어 있으며, 옆 좌석 사람들까지 함께 촬영이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전철 안에서 소란이 일었는데도 B씨는 사진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냥 자리를 떠났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기소했다. 이 법 제14조의2는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배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검찰의 주장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앉아있던 피해자의 하반신 부위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1심, 항소심 모두 검찰의 주장과 달랐다. 법원은 "증거로 제출된 사진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법원 "성적 수치심은 건전한 상식 가진 사회구성원 기준"

항소심인 수원지방법원은 9월 2일자 판결을 통해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하는지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피해자가 그 촬영으로 인하여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따라 판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촬영된 영상이 저장되고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노출한 신체부분이라도 무조건 위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원해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사진으로 찍으면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점에서는 검찰의 견해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 사진에 피해자의 얼굴은 없고 어깨 이하 몸 전체가 촬영되어 있으며 ▲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촬영된 사실 ▲ 치마도 아주 짧은 것이 아니어서 노출된 부분은 종아리 및 허벅지 일부에 불과한 사실 ▲ 피해자가 사진을 확인한다거나 처벌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채 그냥 그 자리를 떠난 사실 등을 주목했다.

따라서 "피해자의 노출된 다리 부분만 중점적으로 부각된 사진은 아니라고 보이고, 피해자가 문제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난 점이나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성적인 수치심을 느낄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 8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다시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법원 판결 '치마 속 촬영에 면죄부'로 볼 수 없어

이에 앞서 2007년 1월 대법원은 유사한 사례에 대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하여 지하철 내에서 치마 밑 다리 부위를 찍고, 역 구내에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여성 바로 뒤에서 촬영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증거 사진만으로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여성의 치마 속 다리 부위'가 반드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라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촬영한 사진은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며 1심부터 3심까지 무죄를 선고했다. 

이 두 사건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로서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처벌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사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치마 속을 촬영한 사실 자체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이같은 무죄 판결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허벅다리 부각 촬영에 피해자 항의했다면 유죄 인정 

최근 판결 하나를 보면 무죄가 선고된 사건과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이 사건 역시 "버스 안에서 여고생 허벅지 찍은 교장 '유죄'"라는 제목으로 많은 언론에서 다루었다. 피고인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지난달 기각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서울중앙지법 2008노 1386)에서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대한 촬영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촬영된 원판의 이미지 자체와 더불어 촬영 장소, 촬영 각도 및 촬영 거리, 특정부위의 부각 여부, 촬영자의 의도에 대한 평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 피해자가 노출을 숨기기 위하여 몸을 가리고 있었으며, 촬영 직후 항의하였던 점 ▲ 피고인이 피해자와 버스 옆 자리에 상당히 밀착된 점 ▲ 불과 30cm 정도의 거리에서 허벅다리 부분을 정면으로 촬영한 점 ▲ 허벅다리 부분만 부각시킨 사진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도록 유포될 수도 있는 점 ▲ 피해자는 촬영 사실을 감지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1심 재판부의 유죄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사실관계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사건들과 확실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노출한 신체라도 촬영하면 범죄

법원의 판결들을 보면, '여성의 치마 속 다리 부위'를 어디까지 어떻게 촬영해야 유죄이고, 무죄인지 판단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 일반 구성원의 시각에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판단한다는 것도 모호하다. 대법원 판례를 통하여 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자신이 원해서 노출한 신체를 몰래 찍어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상대방의 허락 없이 신체를 촬영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실제로, 신체의 부위를 떠나 몰카에 찍힌 여성이 수치심을 느꼈다면서 고소를 한다면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 언론 보도만 믿고 괜히 미니스커트 촬영했다간 전과자 되기 십상이다.


태그:#미니스커트, #치마, #무죄, #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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