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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른바 '여간첩 사건'이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아 사건 실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경향신문><서울신문><조선일보>는 1일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해 일제히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지난 8월 31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것을 대부분 그대로 인용한 내용들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지난 27일 합동수사본부가 이 사건을 발표했을 당시, 3년 전부터 원씨의 행적을 의심하면서도 원씨의 군부대 강연 등을 방치한 정황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원정화씨 진술 내용, 앞뒤 안 맞아

 

8월 31일 이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연합뉴스> 최선영·장용훈 기자의 '간첩 원정화 북한 내 행적 진술에 의문점'은 과연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 자체가 맞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진술 내용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이다.

 

원정화씨의 의심스런 행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가 근무했다는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는 '서기'라는 직책이 없고, 북한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구성된 사로청에 중졸 출신이 배치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또 원씨는 "낮에는 일상생활을 하고 오후에만 금성정치군사대학(현재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노동당이 운영하는 공작원 양성 전문교육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이 철저하게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이 역시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이다.

 

두 기자는 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말을 빌어 "원씨가 사로청에서 근무했으며 사실상 건설노동자집단인 돌격대 간부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공작원 전문 교육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이 아니라 청년 간부들을 양성하는 금성정치대학을 말하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이밖에도 ▲원씨가 특수공작원 교육을 받았다는 특수부대가 평양 모란봉 구역에 있다는 진술 ▲후보당원이 아닌 예비당원을 신청했다는 진술 ▲노동당규약이 후보당원 신청 자격을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만 15세에 예비당원을 신청했다는 진술 등에 대해서도 지금껏 알려진 북한의 실상과 배치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원씨가 공부 등을 잘해서 받았다고 하는 '이중영예 붉은기 휘장'은 개인이 아니라 학교나 학급이 받는 것이라는 점 ▲원씨가 '공작원 가족'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어머니가 2년 만에 재혼했다고 주장한 점 ▲북한의 상부가 원씨의 임신사실을 알고도 국내에 침투시켰다는 진술 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연합뉴스>는 특히 "북한에서 공작원은 가정 성분을 철저히 보고 뽑는데,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아연을 훔쳐 팔아넘기던 절도범을 정식 공작원으로 내려보내는 일은 북한의 대남공작 원칙상 상상할 수 없다"는 공작원 출신 탈북자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원씨가 넘긴 정보 중엔 국가 기밀이 없다

 

<조선일보>는 이같은 보도에 더해 ▲중국 소재 북한 보위부가 원씨로부터 '남측 정보요원이 북한 정보를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일부 자료 제공을 허락하면서도 이 남측 정보요원을 암살하도록 지시내린 점이나 ▲원씨가 암살 지시와 함께 독침과 발사장치까지 받고도 남측요원이 자신에게 너무 잘 해줘 암살하지 못한 '마음약한 간첩'이란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2건의 절도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고 2년 정도 복역을 했던 원씨가 북한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아연 5톤 절도미수)를 저질렀음에도 5촌 아저씨의 도움으로 풀려났다는 진술이나, 계부인 김동순씨가 북한의 거물급 인사라는 점도 확인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또 "원씨가 북한에 넘겨준 정보 가운데 주요 국가기밀이 없다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라면서 "원씨가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과연 공소유지가 가능할까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원씨가 북한에 넘겨준 정보라는 것이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군부대 위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원씨가 과연 북한의 '정식 간첩'인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연합뉴스>는 이와 관련해 "원씨는 구속 전에 대북무역을 하면서 사기당해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녔으며, 원씨를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남한 실정을 잘 아는 원씨가 몇 년 감옥살이 하고 나오면 몸값을 높여 돈을 벌려고 북한 보위부의 끄나풀인 자신의 북한내 이력을 과장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원씨가 남북 양측 정보기관에서 활용한 '끄나풀' 정도 된다는 이야기다.

 

여권, 때 아닌 메카시 공포 조성하나

 

만약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론은 물론 대북 수사당국까지, 비중있는 여간첩으로 자신의 행적을 치장한 한 탈북 끄나풀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당한 꼴이다. 문제는 원씨를 오래 전에 대북 정보 수집용으로 활용까지 했던 대북 정보기관들이 과연 이런 사실을 몰랐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보기관의 한 대북 관계자는 수사당국의 발표가 있은 뒤 한 언론사 기자에게 "뭐 이런 간첩이 다 있냐"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 정보 전문가라면 처음부터 '각색된 여간첩'이란 사실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경향신문>은 9월 1일 1면 머리기사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계기로 "군부에 침입한 간첩 용의자가 50명이나 된다"는 군 당국 대책회의 메모, "앞으로 공직사회에서 북한 간첩에 포섭되거나 불순한 사상을 지닌 대규모 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발언 등을 전하며 여권이 '때 아닌 메카시 공포 조성'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무리하고 황당해 보이는 여간첩 사건의 배경을 읽어볼 수 있는 시사점 가운데 하나다. 여간첩 사건 수사 발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태그:#여간첩 사건, #원정화, #간첩사건 진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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