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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가 긴장하고 있다. 정부의 언론장악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북 옥천에 모인 언론인들은 2박3일 동안 활짝 웃었다. 29일부터 열린 옥천언론문화 축제로 옥천은 흥겨웠다.

 

주 행사장인 옥천 관성회관 앞 광장은 하루 종일 떡메 치는 소리가 끊이지 앉았다. 조중동을 향해 날리는 떡메였다. 3일동안 조중동은 떡메에 맞아 '콩가루'가 돼야 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이 난 듯 떡메를 들었다.

 

토론회에는 첫 옥천전투를 이끌었던 사령탑이 한 자리에 모였다. 행사 첫날인 29일 열린 '옥천 언론개혁 운동의 회고와 전망' 토론회 참석자는 전 <옥천신문> 오한흥 대표, 옥천 민족문학작가회의 조만희 위원장, 서예가 김성장씨,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이들에 의해 옥천전투의 그 날이 되살아났다.

 

회고 토론회 통해 되살아난 <옥천전투>

 

2000년 8월15일 옥천 주민 33명이 모여 '조선바보'를 결성하고 '조선일보로부터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조선>에 대한 변방에서의 선전포고였다. 이후 옥천 일대에서는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옥천에서 1천여 부에 이르던 <조선일보>는 1년 만에 절반으로 추락했다.

 

당시 작전명령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라'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알려라' '절독을 권유해라' '절독할 때까지 포기하지 마라' '전투(활동)상황을 세밀히 공개해라'

 

전투상황은 조선바보의 주무기인 인터넷사이트 '물총닷컴'을 타고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듬 해인 2001년 이들의 활동은 6㎜ 디지털 장편다큐멘터리영화 <옥천전투(감독 황철민)>로 소개됐다.

 

2002년 8월 15일.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 해방구 선포식'을 갖고 옥천이 조선일보로부터 해방된 지역임을 공식 선언했다. 전투를 시작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전리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먼저 언론이 다원화됐다. 지역사회 전체에 상식과 원칙이 대접받는 풍토가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원로 언론인 정경희 선생은 전투가 끝난 뒤 옥천을 둘러본 후 이 곳을 '별천지'라 칭했다.

 

2003년 8월 15일. 옥천주민들은 치열했던 옥천전투를 기념해 첫 옥천언론문화제를 열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2008년 8월 29일 토론회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조중동을 살리고 비판언론을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미 조중동의 권력은 무너져 내렸다"며 "옥천전투에서 촛불과 인터넷 광장으로 진화한 시민들이 있는 한 더 이상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는 성공할 수 없다"고 장담했다.

 

"언론인들 옥천에서 다시 힘 얻자"

 

다음 날 이른 아침에는 옥천이 낳은 인물들의 유적을 순례했다. <독립신문> 창간 주역인 유정 조동호(1892~1954) 선생과 청암 송건호 선생, 정지용 시인 등이 옥천에서 자랐다.

 

이 행사에는 참가자가 많아 대형버스가 동원됐다.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과 정청래 전 의원의 강연,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의 조동호 선생에 대한 강연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같은 날 저녁 주민 100여명은 풍물을 앞세우고 '옥천 언론대행진'을 벌였다. 해가 저물자 주민들은 다시 관성회관에 모여 촛불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즐겼다.

 

행사 마지막 날인 31일 오전 9시부터 금강2교에서 열린 '조선일보반대 옥천마라톤대회'에는 400여명의 주민들과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김성장 언론문화제추진위원장은 "이번 언론문화제는 옥천이 벌인 언론운동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이후 언론개혁 운동의 방향을 가늠하는 고민의 장으로 마련했다"며 "언론인들이 옥천에서 다시 힘을 얻고 단합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와 주간 옥천신문사 주관으로 '참 언론이 가득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행사는 청소년 논술, 시사만평·보도사진전, 전국 지역신문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태그:#옥천언론문화제, #옥천전투, #언론장악,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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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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