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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봉정암 철계단
▲ 가장 긴 봉정암 철계단 가장 긴 봉정암 철계단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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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아침 6시 30분, 관음도량으로 이름이 난 오세암은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관음전 뒤에 솟아 있던 관음봉과 동자봉에 구름이 걸쳐 있습니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도 그쳤습니다. 설악의 절집은 수행 온 불자에게는 기도 도량으로 산악인들에게는 쉼터였지요.

하지만 배낭의 짐은 가벼워지질 않았습니다. 다만 길손들의 공양을 위해 절집에 보시했던 쌀의 무게만 줄어들었을 뿐이지요.

오세암 공룡릉 주변등산로
▲ 등산로 오세암 공룡릉 주변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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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등산로

오세암 공룡릉 옆으로 길이 나 있습니다. 봉정암 가는 길입니다. 출발부터 급경사더군요. 이 길을 4km 걸어야 봉정암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조금은 겁이 나더군요. 사실 전날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10km 정도를 걸었는데도 말입니다.

돌계단을 5분쯤 걸으니 내리막길이더군요. 봉정암 길은 오르막길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내리막이 있으니 룰랄라, 흥분된 순간이었습니다.

내리막길은 제법 긴 철 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철 계단 아래에서는 설악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들이 바위틈에서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설악의 능선은 험난했습니다. 바위덩어리가 굽이굽이 이어진, 그리고 그 오름과 내림의 경도가 급했습니다. 특히 보폭의 길이도 높았습니다.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몸을 지탱할 수 없는 코스였지요.

계곡세수
▲ 계곡세수 계곡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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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소리, 내설악 아침을 열다

설악의 아침은 스님의 염불소리인 줄 알았는데, 폭포소리였습니다. 봉우리를 오르는 순간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폭포수를 한 입 물어 목을 축였습니다. 그리고 오세암에서 궁색하게 마친 세수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지요. 설악의 계곡물이 모두 내 것 같았습니다. 바위덩어리 틈새에는 보라색 야생화가 밤새 내린 빗방울을 흠뻑 안고 배시시 웃고 있더군요.

설악의 능선에 동이트다
▲ 동이트다 설악의 능선에 동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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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봉우리를 넘으니 첩첩산중에 아침 햇살이 내립니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햇살을 보는 순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뜨는 게 해인데, 비 끝에 맞이하는 설악의 햇살이 왜 그리도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이쯤해서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들어오는 산행인파와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새벽녘에 출발했다는 이들은 힘들 테지만 어찌 그리 얼굴마다 희색이 만연한지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엔돌핀이 솟나 봅니다.

단아한 폭포
▲ 단아한 폭포 단아한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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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매력은 바위, 계곡, 숲의 어우러짐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렸는지 모릅니다. 몇 개의 계곡을 건넜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선가 햇빛에 드러난 공룡능선을 볼 수 있었지요. 온몸이 드러난 나한, 그리고 단풍나무와 소나무 구상나무는 설악의 숲을 만들었더군요.

계곡을 가로지를 때면 여지없이 철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그 철 계단을 건널 때는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봉우리를 오를 땐 돌계단도 있었지요. 그리고 험난한 코스마다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이 있었습니다. 바위와 계곡 숲과 폭포와 어우러짐은 내설악의 매력이 아니던가요.

아침 8시 30분, 폭포 아래 계곡물이 푸르다 못해 비취빛입니다. 산 속에 이렇게 파란 연못이 있었다니요. 기암괴석이 만들어 놓은 연못, 우리 일행은 가장 넓적한 돌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리고 풋사과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새콤하면서 조금은 달콤한 풋사과의 맛. 산행 길에 맛보는 그 맛의 알싸함을 아시는지요.

바위등산로
▲ 바위 등산로 바위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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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도의 경사로 퇴적층의 산길 같아

설악의 등산로는 꼭 한 사람이 걸으면 좋을 길입니다. 때문에 산행 중 양보의 미덕은 꼭 지켜야 할 덕목이구요. 가능한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면 더욱 좋겠지요. 왜냐면 설악은 험난하고 모두 3시간 이상을 걸어야 할 코스니까요.

표지판
▲ 표지판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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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만난 이정표는 힘을 줍니다. 봉정암까지 0.8km. 아스팔트 길도 걷기 싫어서 자동차에만 의존했던 게으름뱅이들에게 설악의 0.8km는 험난했습니다. 더욱이 그 길은 50도의 경사로였으니까요. 그때부터 나는 우리 일행과 거리가 생겼습니다.

퇴적층처럼 생긴 산길, 넓적한 돌길을 지나니 바위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 걸었던 흔적도 없습니다. 그저 네 발로 기어 올라가다 보면 숲길이 이어지지요. 다행히도 바위를 뚫고 버팀목을 설치해 놓아 부상의 위험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지만, 노약자나 산행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힘든 코스입니다.

다람취
▲ 다람취 다람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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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끊긴 산행길 다람쥐가 친구 돼 줘

이쯤해서 일행들도 멀어졌으니 인적이 끊겼습니다. 그저 혼자 뚜벅뚜벅 올라가고 있었지요. 이때 내게 친구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단풍나무 아래로 달려오는 다람쥐 한 마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서너 마리의 다람쥐들이 곡예를 합니다.

“녀석들! 그렇지 산골짜기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었지. 야, 이놈아 알사탕 받아라!”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호주머니에서 알사탕과 초콜릿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단풍나무 낙엽 위에 알사탕을 던져 주었습니다. 한 녀석이 알사탕을 안고 잽싸게 달아나니 드디어 다른 녀석들이 알사탕을 서로 차지하려고 뒤쫓고 있습니다. 다람쥐들의 곡예는 산길을 안내하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경사도는 높아만 갔습니다. 숨을 헉헉 대기도 하고, 오세암 동자승에게서 받아온 약수도 바닥이 났습니다. 혹시 이곳이 그 험난하다는 깔딱고개인가?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길손에게 나는 물었습니다.

깔딱고개
▲ 깔딱고개 깔딱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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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에서 본 설악
▲ 깔딱고개에서 본 설악 깔딱고개에서 본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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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깔딱 넘어갈 '깔딱고개' 네발로 기어올라

“혹시 여기가 깔딱고개 입니까?”

내려오는 행인의 넌센스는 한마디로 개그였습니다.

“숨이 깔딱하고 넘어갈 지경에 이르면 그곳이 깔딱 고개인 줄 아세요. ㅎ-ㅎ-ㅎ-."

9시, 드디어 깔딱고개입니다. 네 다리도 부족합니다. 이만큼 큰 바윗덩어리가 어디서 굴러왔을까요? 바위에 홈이라도 패어 있어야 발을 디딜 텐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 갈수 없습니다. 이때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산악인 한 분이 바윗덩어리 위에서 앵글에 사진을 담고 있더군요. 안면몰수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저씨! 손 좀 잡아 주세요!”

낯선 아저씨가 성큼 내민 손에 이끌려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 설 수 있었지요.

용아장성
▲ 용아장성 용아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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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길은 자신의 인생길

그 바위에서 보는 풍경이 용아장성이었던가요. 병풍을 두른  암벽이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었던 철 계단 중에서 가장 가파르고 긴 철 계단이 봉정암 50m 암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오전 9시 40분, 그 암벽에 발을 내딛는 순간, 뒤를 쫒아 왔던 다람쥐와 함께 봉정암 진신사리탑으로 향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길을 걸었던 것은 봉정암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길을 걸었던 같습니다. 그 험난하다던 깔딱고개도 ‘깔딱-’ 하고 숨넘어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인적 드문 산길에서는 다람쥐가 친구였으니까요.


태그:#봉정암, #내설악, #설악산, #공룡능선, #깔딱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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