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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교육 단체들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들어 있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펼침막엔 "없는 것도 만드는 일본 교과서, 있는 것도 없애는 한국교과서"라고 쓰여 있다.
▲ 항의 기자회견 국악교육 단체들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들어 있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펼침막엔 "없는 것도 만드는 일본 교과서, 있는 것도 없애는 한국교과서"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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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집권하기도 전에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교육 하겠다고 하여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산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온당한 일도, 합리적인 일도 아니라는 항의를 받다. 오히려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마당에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국악교육자들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2009년부터 적용될 초등학교 1, 2학년 '즐거운 생활' 실험본 교과서의 내용이 예전에 견주어 현저히 개악되었다는 것이다.

(사)한국국악학회(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 한국국악교육학회(회장 조운조 이화여대 교수), (사)한국음악사학회(송방송 전 한예종 교수), (사)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회장 전송배 동원대학 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회장 서한범 단국대 교수),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회장 변미혜 교원대 교수) 등 단체들은 29일 오전 11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들어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 모여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현행 7차 교육과정에 의한 '즐거운 생활' 교과서에 1학년 음악 27시간 중 국악이 13시간(48.1%)이었던 것이 실험본(2007 개정교육과정)에는 19시간 중 7시간 (36.8%)으로 줄었으며, 2학년은 음악 32시간 중 12시간(37.5%)이 22시간 중 2시간 (9.1%)으로 급격히 줄어 서양음악에 견주어 국악 시간은 1/4밖에 되지 않아 국악교육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반발했다.

항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교수(왼쪽)와 (사)한국국악학회 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
▲ 서한범과 황준연 항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교수(왼쪽)와 (사)한국국악학회 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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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에서 국악계 원로인 한양대 권오성 명예교수는 "이미 논란이 된 일본식 음계로 된 동요까지 재수록하고 있어서, 새 교과서의 악곡 구성을 보면 마치 70여 년 전 우리 문화 말살정책이 시행되던 일제 강점기 음악교과서의 구성을 보는 듯하다. 교육 관료들이 정말 생각이 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교육과학기술부를 꾸짖었다.

또 공동주최단체의 하나인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교수는 "그동안 정권 초마다 국악교육을 강화해와 국악의 비중이 40%까지 올라왔지만 이번엔 오히려 20% 미만으로 줄여 70~80년대로 다시 돌아가 시대를 역행했다. 국악영역이 대폭 축소된 데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과서 편찬 담당자는 '현장교사들이 국악이 가르치기 힘들고 재미가 없다고 답했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며 "하지만 교사의 교육권이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에 우선할 수 없으며, 보통교육의 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편견 없는 보편적인 가치와 원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제 음악교육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5차 이전의 교육과정으로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의 교사가 국악을 가르치기 어려워하는 것은 교사 책임이라기보다는 국가 정책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에 대한 국악 관련 의무 연수의 확대와 교육대학 교육과정 정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교과서를 제작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번 처사는 그야말로 60여 년 전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을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항의 기자회견에서 격려발언을 하는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왼쪽)와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 권오성과 이영희 항의 기자회견에서 격려발언을 하는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왼쪽)와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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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자리에 함께한 (사)한국국악협회 이영희 이사장은 "우리 겨레의 얼을 짓밟고 외래문화를 우대한 이번 실험본 교과서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제강점기 때 왜곡되고 다 죽어간 국악을 이만큼 살려놨더니 다시 우리 문화 말살 정책이 시작된 듯하여 정말 화가 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기자회견의 끝에 참석자들은 (사)한국국악학회 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가 읽은 건의서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교육기본법은 물론 국가에서 고시한 교육과정 전체 목표와 맞지 않는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진 배경과 근거를 명확히 밝혀라, '즐거운 생활' 교과서와 관련 진실을 호도하며 막대한 인력과 예산 낭비를 한 총책임자를 문책하라, 교과서 제작과 심의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라" 등을 건의했고,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건의서를 전달했다.

이들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실험본 새 교과서는 국악기 소개를 대폭 축소하고 그동안 아이들이 즐겁게 사용하던 생활 속의 악기 윷가락대신 전래동요 연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오르프 악기를 쓰도록 자세하게 소개하여 앞으로 이 오르프 악기의 구입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고 이들은 걱정했다.

현행 7차 교과서와 실험본 새 교과서의 비교
▲ 교과서 비교 현행 7차 교과서와 실험본 새 교과서의 비교
ⓒ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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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7차 교과서와 실험본 새 교과서의 악기 지도 내용 비교
▲ 악기 지도 내용 현행 7차 교과서와 실험본 새 교과서의 악기 지도 내용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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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본 새 교과서에 자세하게 소개한 오르프 악기들, 위 3가지를 빼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다.
▲ 오르프 악기들 실험본 새 교과서에 자세하게 소개한 오르프 악기들, 위 3가지를 빼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다.
ⓒ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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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등학교 교사 한 사람은 실험본 교과서의 또 다른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새 교과서에는 모래로 집짓기 놀이를 하면 부르도록 되어 있는 놀이요가 빠지고 대신 '모래성 허물기 놀이'만 노래 없이 실려 있다. 생태계 파괴와 생명 경시현상이 심각한 지금 창조가 아닌 파괴를 가르치는 교과서는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민족정체성을 강화해야할 시점에 오히려 국악 교육의 포기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를 물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서양음악가 윤이상 선생마저도 민족적인 성악이 아니면 서양인들과 경쟁을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는데 민족문화를 포기하고 국악을 짓밟는 행위가 과연 나라를 살리는 교육인지 묻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은 9월 22일 오후 2시에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광복 63주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주년, 우리 음악 교육을 진단한다'라는 제목으로 대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또 이들은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건의서의 처리 과정을 보아가며 대토론회는 물론 투쟁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항의 건의서를 교육부 민원 담당자(맨 왼쪽)에게 제출하고 있는 (사)한국국악학회 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오른쪽 끝). 가운데는 한국국악교육학회 회장 조운조 이화여대 교수(흰옷)와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회장 변미혜 교원대 교수
▲ 건의서 제출 항의 건의서를 교육부 민원 담당자(맨 왼쪽)에게 제출하고 있는 (사)한국국악학회 회장 황준연 서울대 교수(오른쪽 끝). 가운데는 한국국악교육학회 회장 조운조 이화여대 교수(흰옷)와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회장 변미혜 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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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악, #국악교육, #정체성, #민족문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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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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