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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았다. 휴대용 에어콘을 싸게 주는 이유를 알았다. 방이 무지하게 덥다. 천장에

팬(천장에 붙은 선풍기)도 돌아가고 에어콘도 있지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잤다.

 

오늘은 사파리 하는 날, 오후에 출발이라 오전에 여유가 있었다. 작은 푸쉬카르 동네라 중심을 벗어나서 외곽으로 돌아다니자고 했다. 라시를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섰다. 건물들을 벗어나자 푸른 들판이 펼쳐지고 산들이 나타났다.

 

조금 걷는데 한 여자아이와 장이 재미나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또 돈을 달라는 아이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름이 '부자'인 소녀는 독학으로 배운 영어를 상당히 잘 구사했다. 부자가 한국에서는 'the rich'라고 설명을 해줬더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학교를 가고 싶지만 돈이 없기에 어린이용 영어교재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9살인 부자의 총명함이 예뻤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했다. 자기가 맏이고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다고 한다. 장은 부자를 데리고 가게로 가서 밀가루와 설탕, 우유를 사줬다. 밀가루와 설탕을 들고 우리는 부자의 집으로 놀러갔다.
 
아니 이게 웬 걸, 그냥 벌판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다. 부자 어머니는 손님이 왔다고 흙바닥 위에 돌로 만든 작은 부엌에서 짜이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밀가루와 설탕이 고맙다고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낙타 사파리 갔다가 내일 2시에 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장은 헤어지면서 1000루피를 부자 어머니에게 주면서 힘들겠지만 부자를 학교에 보내 교육받을 수 있게 하라고 했다. 1000루피는 장이 가지고 온 인도 돈의 1/10이었다. 난 장에게 맛있는 거를 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낙타몰이꾼이 낙타를 앉혔다. 낙타몰이꾼이 타는 요령을 설명해주어 따라서 탔다. 그리고 낙타가 일어나는데 '우와' 뒷다리부터 일어나기에 순간 몸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위로 들려져 아찔한 기분이 든다. 장은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다.

 

낙타몰이꾼이 낙타를 끌면서 푸쉬카르를 멀리 벗어나 서쪽으로 간다. 사막을 기대했지만 풀이 여기저기 돋아나서 초원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푸쉬카르와 함께 낙타 사파리로 유명한 자이살메르도 마찬가지로 안으로 한참 들어가야 흔히 알고 있는 사막 분위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낙타를 타고 뜨거운 햇볕을 쬐며 가는 느낌은 무척 좋았다.

 

 

등장한 모래 언덕에서 잠깐 쉬었다. 다들 모래에 앉아 쉬는데 음악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악기를 연주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막 연주가의 음악은 놀라웠다. 불어오는 잔잔한 모래바람과 어우르는 선율은 정말, 감동이었다.

 

낙타 사파리를 하며 많이 들었을 낙타몰이꾼도 근처에 사는 아이들도 넋을 놓고 듣고 있었다. 연주하는 음악가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연주가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뒤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랑 장은 몰입 그 자체였다. 음악의 힘을 인도에 와서 새삼 느꼈다.

 

 

장은 악기를 빌려서 연주를 해본다. 그래도 기타를 쳐본 장이지만 새로운 악기는 좀처럼 예쁜 소리가 안 나온다. 뒤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낙타는 그래도 좋은지 여전히 순박한 표정이다. 낙타의 얼굴을 보니 '샨티(평화)'가 떠올랐다.

 

연주가에게 팁을 주고 다시 낙타를 타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낙타몰이꾼이 뒤에 올라탄다. 그러면서 푸쉬카르는 신성한 곳이라 음주가 안 되지만 사막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며 맥주를 먹자고 계속 조른다. 가격이 얼마냐 했더니 한 병에 200루피란다.

 

아이고 비싸, 그래도 사막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가볍게 맥주 한 잔은 제법 운치가 있게 느껴져 알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두 소년이 동행을 했다. 두 소년은 800루피를 받고 맥주를 사러 떠났다. 이 사막에 어디에서 맥주를 구하냐고 물었더니 낙타몰이꾼 아버지 가게가 근처에 있단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시멘트 2층짜리 건물이었다. 이런 외딴 곳에 이것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색이 바란 캐나다 국기가 눈에 띄었다.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고 낙타는 철조망 밖에다 앉혀 쉬게 하였다.  여기로 오랜 시간 사람들이 와서 식물들도 뿔났는지 가시가 무척 많았다. 심지어 신발을 뚫는 가시도 많아 많이 찔렸고 옷에도 많이 붙었다.

 

두 소년이 킹피셔맥주 4병을 가져왔다. 물을 떠와서 담아놓고 낙타몰이꾼들과 두 소년은 식사 준비를 하였다. 밀가루를 풀어서 반죽을 하고 둥글게 떼어내어 빵처럼 만들었다. 말똥에다 빵들을 올려놓고 말똥을 태워 구웠다. 그리고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달(인도식 국)을 끓였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냥 주변을 구경하고 쉬라고 했다. 음식이 다 완성되었다. 말똥에다 구운 빵, 밥과 달을 곁들여 사막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슬슬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2층 시멘트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거기다 낙타 혹에 짊어지고 온 이불을 깔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고 빨지 않은 이불이겠지만 사막의 낭만에 젖어 있었기에 어떤 것이든 '노 프라블럼'이었다. 서로 맥주를 나눠 마시며 떠들었다.

 

 

한 소년이 사막의 음악가가 연주하였던 악기를 갖고 있었다. 그 악기로 연주를 시작하자 한 소년은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문화의 소비자만 될 수 있나, 생산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참여자는 되야지, 같이 어울려 몸을 흔들고 노래가 끝나면 답가로 이상은의 '언제가는'을 불렀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노래 솜씨가 부족한지 낙타몰이꾼과 소년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제 멋에 취해 불렀다. 사막에서 퍼지는 노래말이 귀에 맴돌고 마음에 와 닿았다. 왠지 마음이 훈훈해지고 목소리에는 물기가 배어나왔다.

 

밤이 깊고 다들 맥주 기운이 올라왔는지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빽빽한 별빛 하늘을 기대했지만 아쉽게 아주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총총한 별빛을 바라보며 내 안에 있던 미련과 후회를 마음의 비행기에 실어 저 하늘로 날려 보냈다. '저 하늘에 별이 되어서 부끄럽지 않게 늘 비춰주렴.' 잔잔하게 불어오는 사막바람에 마음을 싣고 꿈나라로 날아간다.

 


태그:#낙타사파리, #사막, #인도여행, #사막여행, #푸쉬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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