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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초조해하는 눈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26일) 대통령이 그간의 종교편향 사례들에 대한 유감을 표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무섭게 "이는 사실무근이며 와전된 것"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이 나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공직자들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종교 문제와 관련해서 국민의 화합을 해치는 언동이나 업무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은 원칙은 내가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것이며 앞으로도 철저히 지켜나갈 것"이라 밝혔다.

덧붙여 이 대변인은 "오늘 이 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한다든가 사과를 한다든가 하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할 사항도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를 보면 청와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교편향 행위가 없을 것이라는 입에 발린 말만 반복하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원칙이 정작 '서울 봉헌' 발언을 한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 원칙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려면 최근 일련의 종교편향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은 물론 과거의 문제 발언에 대한 사과나 반성 또한 전제되어야 한다.

성시화운동본부 총재의 망언들

27일로 예정된 집회는 불교계가 중심이 된 것이지만, 종교편향과 종교차별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단지 불교와 정부, 불교와 기독교만의 싸움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종교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의 문제이며, 세속국가임을 명시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존립을 둘러싼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는 불교계가 내건 요구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진, 종교차별금지법의 제정 등을 통해 단순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세속국가임을 명시한 헌법의 토대를 뒤흔드는 특정 종교인들의 행태를 국가와 시민사회가 바로잡지 못하면 이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성시화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무섭게 진행되고 있는 '성시화운동'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도시를 이른바 '거룩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성시화운동본부가 바로 그 주도집단이다.

총재인 김준곤 목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유신 찬양발언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이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 4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패를 받기도 한 그의 어록을 한 번 살펴보자.

"박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
"우리나라의 군사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킨 것 (제2회 국가조찬기도회)"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은 것. (제6회 국가조찬기도회)"

성시화운동신문 홈페이지 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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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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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화운동에 앞장서는 이들은 칼뱅의 '제네바 성시'를 꿈꾸며 춘천을 제2의 제네바로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펼쳐졌던 춘천 성시화운동을 모범으로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운동을 맹렬히 펼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주요 개신교인 공직자들과 기관장들이 모인 홀리클럽 또한 이 운동과 발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예산을 성시화운동에 쓰려고 했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 같은 사람이 바로 홀리클럽 멤버다.

'제네바 성시'라니. 도대체 제네바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세계금융의 중심지이자 각종 국제기구 본부가 있는 제네바가 16세기 한 때 공포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교과서에 '종교개혁가'로만 소개되는 칼뱅이 제네바를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제네바는 당시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 성경이었고 시의회·행정·사법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구현하는 데 쓰였다. 바로 '신정독재'가 펼쳐졌던 것이다.

제네바 시민들은 회개했는데, 한국에선 뭐 하나

칼뱅이 지배한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인구 1만6천여명의 소도시 제네바에서는 58명이 사형(교수형 13명, 참수형 10명, 화형 35명)을 당했고, 76명은 추방당했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어 감옥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교회사에 기록된 공식 통계만 그러하니 실제는 이보다 더 참혹했을 것이다.

그런 16세기 칼뱅의 망령이 21세기 한국에 부활한 것이니 예사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시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준곤 목사는 '성시화 운동의 철학과 비전'이라는 글에서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성시화 운동은 칼뱅의 제네바 성시운동을 모델로 한다."

성시화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은 칼뱅이 다스리던 1541년부터 1546년까지의 제네바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며 이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끔찍했던 신정독재의 도시 제네바가 이들에게 이상적인 모델로 숭배받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의 교조주의에 맞서 관용의 정신을 말했던 칼뱅이었지만, 그는 제네바를 지배하면서 불관용의 화신으로 거듭났다. 칼뱅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가톨릭을 이용해 삼위일체론의 오류를 지적한 스페인 신학자 세르베투스를 제거하려 하기도 했다. 그것이 실패한 후 나중에 그를 체포한 칼뱅은 모든 형벌 중 가장 고통스러운, 즉 산 채로 불태우는 형벌을 내렸다.

칼뱅이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업적을 남겼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개신교 최초의 '종교적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훗날 잘못을 깨달았다. 세르베투스가 화형된 자리에는 지금 "칼뱅의 결정은 종교개혁과 복음주의의 원칙인 '양심의 자유'에 어긋났다"는 자기비판을 담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제네바 성시의 부활을 꿈꾸는 당신들은 이렇게 끔찍했던 역사, 반성과 참회의 역사를 알고나 있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칼뱅을 추종하려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개신교 신자의 70% 가까이가 칼뱅주의를 따르는 장로교를 믿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기반으로 제네바 성시를 꿈꾸는 성시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성시화운동 주창자들이여, 당신들이 하는 일이 세속국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알고는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종교차별, #성시화운동, #칼뱅, #장로교, #홀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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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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