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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수직으로 뻗은 공룡능선을 오르고 있다.
▲ 천성산 공룡능선 거의 수직으로 뻗은 공룡능선을 오르고 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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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찾은 산은 천성산(859m) 공룡능선. 왠지 몸이 찌뿌듯하고 내키지 않는 맘이 더 컸지만 어쨌든 가 보기로 했다. 산행기점은 내원사 주차장이다. 내원사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주차료 2000원, 입장료2000원) 차를 주차시킨다. 내원사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는 길을 따라 걸었다.

공룡능선 입구표시가 보인다. 몇 달 전, 천성산 올라갈 때 가던 길과 반대방향인 공룡능선 가는 길로 접어든다. 공룡능선은 접어들자마자 가파른 길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아예 바위산이 직각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어 위압감을 준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곧 드러나는 공룡능선 오르막길은 그야말로 힘들고 아찔하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질 것 같은 그런 바위를 달랑 밧줄 하나에 의지에 올라가야 하고 심한 곳은 밧줄조차 없다.

공룡능선 입구..
▲ 천성산 공룡능선 공룡능선 입구..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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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이 있다 해도 그 경사는 거의 수직이라, 위험 그 자체다. 괜히 온 것일까. 높은 바위를 겨우 올라 다시 내리막길, 그리고 다시 앞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바윗길을 또 넘는다. 아슬아슬하다.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공룡바위를 피할 길이 없다. 양쪽은 내려다보면 아찔한 벼랑길이다. 무슨 이런 길이 다 있담. 높은 암봉을 겨우 지나 겨우 흙길이 시작되는가 싶으면 그 길도 만만찮다. 양 옆을 살짝 보니 절벽이다.

컨디션이 엉망인 데다 한 걸음 한걸음 내 딛는데 천근만근이다. 중간쯤 갔을까. 겨우 올라갔건만 '한 발자국도 내딛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앉아 있었다. 왜 산에 오르는 걸까. 이렇게 기를 쓰면서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다시 일어나 올라간다. 우리 뒤로 젊은이들이 따라왔다. 한 팀인 모양이다. 같은 직장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 같다. 겨우 올라오던 그들을 먼저 보내고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높은 바위에 올라 내려다 본 우리 뒤에 오던 사람들
▲ 천성산 공룡능선 높은 바위에 올라 내려다 본 우리 뒤에 오던 사람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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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높은 바위가 눈앞에 떡 버티고 있다. 저 바위를 잘 못 오르다간 떨어질 것 같다. 처음부터 겁을 먹은 것일까. 남편은 벼랑 끝에 달린 수직의 바위를 로프로 오르는 대신 다를 길을 찾아보겠단다. 그대로 서 있으라고 나에게 이른 뒤, 왼쪽 숲 쪽으로 걸어가더니 더 나은 길을 발견했다고 나를 부른다. 나는 왼쪽 숲길로 걸어간다. 남편이 먼저 통과한 옆구리 길로 접어들고 겨우 걸어서 바위 앞으로 가는데 내 머리 뒤에서 커다란 나방이라도 덤벼드는 것처럼 귓전에서 무언가 윙윙거린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여보~!"
"왜 그래요?
"뭐가 머리 뒤에 있나 봐요!"
"어~가만 가만있어요. 벌이, 말벌이에요!"
"아~악~"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내 손으로 머리쪽을 휘저었다. 공포감이 엄습한다. "가만있어요!" 나보다 먼저 이 길을 통과한 남편은 내게 다가와 손에 든 스틱으로 내 머리 위에 붙는 말벌을 쫓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말벌을 쫓느라 내 머리도 때렸는데 머리가 띵하게 아프다. 두려움이 엄습해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남편은 스틱으로 안 되자 다시 자기 머리에 썼던 밀짚모자를 벗어서 휘휘 쫓아 보지만, 벌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지독하고 집요하게 달려든다.

 천성산 공룡능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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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라면 그 자리를 피해 공격을 하든지 도망을 하든지 할 텐데,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바위 위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벌과 싸우는 남편이 바위 뒤로 넘어질까 무서워서 그의 옷깃을 잡아끌고, 남편은 벌로부터 아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포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위 위에서 내려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바위 아래에 발을 조심스레 내딛고 섰다. 정신없이 벌을 소탕하던 남편은 벌들을 거의 다 죽였나보다. 남은 벌 한 마리가 달려드는 것을 막대기로 때렸다. 한꺼번에 십여 마리의 말벌이 달려들어 피할 길도 없는 바위 위에서 얼마나 식겁을 했는지 사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같았다. 벌 때문에 놀래서 당황하다가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남편이 손에 잡고 싸웠던 스틱은 벌이 서식하고 있는 그 자리에 있어서 차마 다시 가지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파른 공룡능선을 오르며
▲ 천성산 공룡능선 가파른 공룡능선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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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린 남편은 스틱을 가져오려 했지만, 나는 말렸다. 다시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둘 다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남편은 스틱으로 막다가 안 되니까 모자를 벗어서 벌을 쫓는 바람에 이마에 말벌 독침을 두 방이나 쏘였고, 또 손목도 쏘여 금세 퉁퉁 부어 올랐다. 나는 오른쪽 어깨와 같은 쪽 옆구리에 물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우리보다 먼저 바위를 올라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그렇게 소리 지르며 벌과 싸우고 있는데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통증은 갈수록 더해 오고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바위 위에서는 계속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그들을 소리쳐 부른다. 두 사람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다. 벌에 쏘였는데 혹시 물파스 같은 것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쉽게도 없다고 한다. 아참, 멘소래담 가져 온 것이 있다.

이거라도 바르면 덜할지 몰라. 위험한 바위를 피하려 하다가 벌에 쏘인 우리는 다시 그 벼랑 끝에 있는 아슬아슬한 바위를 두개의 로프에 의지해 올라갔다. 차라리 처음부터 여길 올라갔어야 했다. 벼랑 끝은 낭떠러지라 위험하고 수직으로 내뻗은 바위가 발 디딜 틈이 없어 그렇지 그 어려움을 당하니 쉽게 올라가진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되돌아가야 한다.

공룡능선에서 내려다 본 노전암을 비롯한 여러 암자들
▲ 천성산 공룡능선 공룡능선에서 내려다 본 노전암을 비롯한 여러 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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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벌 알레르기 같은 것은 없냐고, 빨리 내려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남편한테 다시 돌아가자고 조른다. 하지만 길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올라온 공룡능선은 완전 바위 비탈이어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위험하다. 그렇다면 계속 가야한다는 건데, 어디까지 가야하나. 여기서 짚북재까지는 가야 한단다. 거기서 최단거리의 길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심해지는 통증을 참으며 길을 올라갔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갑작스러운 벌의 습격에 너무나 놀라고 또 너무 아픈 나머지 반쯤 울며 올라갔다. 짚북재까지는 언제 도착하나, 갈 길은 너무 멀고 고통스럽다. 계속 높은 봉우리들을 넘고 또 깊이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를 반복했다. 다시는 산행하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이 든다.

내려오는 길
▲ 천성산 공룡능선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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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폭포
▲ 천성산 공룡능선 계곡에서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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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픈데 왜 이렇게 길은 계속 이어지고 갈림길도 하나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통증은 계속됐지만, 붓기는 가라앉았다. 남편은 하필이면 이마와 손목에 쏘여 손목이 벌겋게 퉁퉁 부어오르고 이마도 부어올라 있다. 이마에 쏘였으니 머리는 또 얼마나 아플까. 나를 구하려다 벌에 쏘인 것이다. 한참을 가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맞닥뜨린다. 반갑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벌한테 쏘였는데 물파스가 있는지 물어본다. 걱정해 주는 그들, 냉큼 뿌리는 물파스를 내민다. 충분히 뿌리라는 말까지 해준다. 남편의 이마에 뿌리자 벌겋게 달아올랐던 붓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신기하다. 그리고 손목에, 나의 어깨와 옆구리에도 뿌린다. 그들은 "일부러 벌침도 맞는데요"하면서 위로한다. 남편은 짚북재에서 하산하는 최단거리가 어디인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또 한마디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천성산 정상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한 시간 정도는 가야 할 겁니다."

내원사 입구가 지척인 계곡물에 벌에 쏘인 부위를 담그고
▲ 천성산 공룡능선 내원사 입구가 지척인 계곡물에 벌에 쏘인 부위를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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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벌에게 습격당해 아픈 와중에 천성산 정상까지 가겠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그만 기가 질린다. 그리고 얄밉기까지 하다. 본인은 본인이라 치고, 옆에 있는 내가 아파하는데 말이다. '다신 같이 산을 타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우린 그들에게 조심해서 올라가시라고 인사하고 다시 길을 내려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길에서 짚북재를 만난다. 최단거리로 내려가야 한다. 성불암 계곡을 따라 걸어내려 간다. 계곡 물 환하건만 마음은 무겁다.

그나마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빨리 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행히 통증은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계속 신경 쓰이게 아프긴 마찬가지다. 머리까지 아파온다. 오후 늦은 시간인데다 날도 흐려, 더 우울하다. 숲은 어두침침하고 계곡 물은 우릴 졸졸 따라온다. 남편은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말한다. 성불암 입구를 지난다. 얼마쯤 갔을까. 이제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계곡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물파스를 건네 줬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공룡능선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이쪽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내원사 매표소에 거의 다다랐을 쯤 넓은 계곡 바위에 잠시 누웠다. 참 힘겨웠다. 남편은 이마와 손목을 흐르는 물에 담근다. 통증이 많이 식는단다. 이때까지의 산행 가운데 가장 힘든 산행이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끔찍했던 산행의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룡능선을 오르기 전
▲ 천성산 공룡능선 공룡능선을 오르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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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에서 말벌에게 습격을 당한 뒤 남편은 "이제 공룡능선은 졸업"이라며 "그 어떤 공룡능선도 이젠 졸업"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는 산을 타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둘이서 끙끙거리며 겨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저녁 8시가 훨씬 넘은 시각. 그래도 우리는 혹시 몰라 병원으로 향했다. 약국에 가서 문의를 했지만 병원에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단다. 주사 맞기를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밤새 아파서 끙끙대는 것 보다 주사 맞는 게 낫을 것 같았다. 접수를 하고 응급실에 들어가 있자 젊은 남자 의사가 나타났다. 우리의 이야기를 대충 듣고 하는 말,

"언제 쏘이셨습니까?"
"낮 2시입니다."

남편은 우리가 벌한테 쏘인 시각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벌한테 쏘이고 나서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쇼크 때문에 위험한 건데, 괜찮은 것 같네요. 통증이 없도록 주사와 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간호사가 제법 아프다고 말하는 주사를 세대씩이나 맞아야 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고, 또 주사를 맞자마자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는 주사 맞고 나서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저려와 다리를 절면서 나와야 했다.

말벌과의 사투, 말벌을 죽이고 맞은 독침, 그리고 주사까지. 이래저래 고단하고 힘겨운 하루였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조금 여유를 가진 남편 하는 말, "여보, 이젠 공룡능선 다신 타지 맙시다. 지리산 화대 종주나 해야지요!"한다. 공룡능선에서 말벌의 습격에 거의 죽을 뻔 했건만, 나도 여유가 생겼을까. 아님, 공룡능선과 지리산은 별개의 것으로 여긴 것일까. 내 대답도 기가 찬다. "그러죠 뭐~"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일시: 2008.8.21(목)
진행: 내원사 매표소(11:40)-공룡능선 입구(12:10)-짚북재(4:00)-성불암입구(5:35)-내원사 매표소(6:10)
특징: 공룡능선 입구~짚북재
계속 오르막, 내리막 또 오르막의 연속이다. 어린 아이, 노약자, 산행은 불가.
참고: 산행할 땐 만약을 대비해서 뿌리는 물파스, 맨소래담, 혹은 벌 쏘임에 대비한 약품 준비 등이 필수라고 느낌.



태그:#공룡능선,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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