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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을 수 있게 썰어 놓은 고래 고기
 먹을 수 있게 썰어 놓은 고래 고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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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그거 맛없잖아? 다른 고기나 생선을 먹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건 내가 제안한 말이다. 오래 전에 먹어 본 고래고기의 기억 때문이었다. 고래고기는 결코 맛있는 고기가 아니었다. 맛도 이상했고 약간은 역겨운 냄새까지 나서 뒤 끝까지 개운치 못했다.

"무슨 소리야? 고래고기 그거 얼마나 맛있는 고긴데, 오늘 다시 한 번 먹어봐?"

그러나 다른 일행들은 고래고기가 아주 맛있다고 우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고래고기를 다시 먹어 볼 수밖에. 그렇다고 고래고기에 대한 특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포항 죽도시장에 고래고기 전문 요리집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흥해를 출발한 일행들은 무작정 죽도시장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포항 시내로 접어들자 마침 퇴근시간이어서인지 시내 교통도 상당히 정체가 심했다. 죽도시장 근처에 이르자 바로 도로 옆으로 작은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바다가 바로 옆이었다. 그런데 바닷물 수위가 높아 어선의 갑판 높이가 도로면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항구가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 도로 안쪽에 죽도 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부두와 시장 사이에 있는 도로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근처의 주차장을 찾아보았지만 주차 공간이 없었다. 시장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저녁을 먹을 수는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포항 죽도시장 풍경
 포항 죽도시장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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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횟집과 생선가게 거리 풍경
 횟집과 생선가게 거리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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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차를 시내로 몰았다. 우선 숙소부터 잡아놓기로 한 것이다. 적당한 모텔을 물색하여 숙소를 정해 놓고 다시 택시를 타고 죽도 시장으로 나왔다. 모텔 주인에게서 얻은 고래고기 정보도 우리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택시에서 내려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모습은 어느 시장이나 비슷한 풍경이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포항 죽도시장 풍경

시간이 늦어 넓은 공간에서 경매와 생선 소매를 하던 곳은 철시 직전이었다. 남은 생선들을 팔아치우느라 떨이를 외치는 상인들을 뒤로하고 음식점과 횟집들이 즐비한 곳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고기가 모두 고래고기였다.

상인 아주머니는 기웃거리는 일행들에게 잘 해 드릴 터이니 고기를 사라고 권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가게는 그냥 고기만 파는 가게여서 요리를 해주거나 양념이나 펴놓고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쌓여 있는 고래 고기 중에는 소갈비를 연상 시키는 커다란 뼈도 같이 섞여 있어서 고래가 생선이 아니라 바닷물에 사는 거구의 포유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죽도시장이 포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이라는 소문이던데 정말 그런 것 같지 않아?"
"에이! 설마.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시장만큼이야 클라고? 그리고 어물시장이라면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동 수산시장보다 더 큰 시장이 있겠어?"

포항 쪽 사정에 조금 밝은 일행이 들은 입소문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일행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면서 둘러본 시장 규모는 정말 대단히 크고 넓어 보였다.

 전복 한 접시에 5만원
 전복 한 접시에 5만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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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횟집에서 사용하는 양념장
 횟집에서 사용하는 양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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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시장과 횟집이 함께 있는 시장거리는 바로 옆에 건어물 시장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생선시장거리는 아주 특이한 모습이다. 길가에 양쪽으로 쭉 늘어선 좌판에선 칼잡이(?) 아주머니들이 생선을 잡아 회를 뜨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거의 비슷한 모습의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다. 앞치마도 가슴에서부터 거의 발등 가까이 내려가는 기다란 비닐제품을 걸치고 있었다. 손에도 고무장갑을 꼈으니 고무제품으로 중무장을 한 셈이었다.

"들어 오이소. 잘해 드릴게예!"

손에 번득이는 회칼을 든 아주머니들은 회만 뜨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을 호객하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회를 뜨는 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생선의 머리 부분을 뚝 잘라내고 몸통 부분을 두 쪽으로 자른 다음 껍질은 기계에 넣어 벗겼다. 그런 다음 횟감을 얇게 잘라내는 솜씨가 얼마나 익숙한지 마치 자동화된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썰어 놓고 파는 횟감, 한 바구니에 2만원
 썰어 놓고 파는 횟감, 한 바구니에 2만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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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열해 놓은 건어물
 진열해 놓은 건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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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몇 군데를 들러 고래고기에 대한 수소문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음식점이 선정됐다. 문 밖에선 회를 뜨고 집안에선 손님을 받는 예의 이 시장골목 특유의 그런 음식점이었다.

고래고기 맛이 왜 이래? 맛있다. 못 먹겠다. 어떤 맛이 진짜?

"고래고기, 그기 맛이 다 똑 같은 거 아입니더. 세 가지라 예. 만원짜리는 그기 냄새도 조금 나고 맛도 없어 예. 3만원짜리라야 맛이 되게 좋심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고래고기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값이 비싼 1인분에 3만 원짜리로 결정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이만하면 고급 고래고기라는 것이었다.

자리를 잡고 잠깐 앉아서 기다리자 곧 음식이 나왔다. 음식상은 주류와 비주류로 네 명씩 나뉘었다. 모텔에서 택시를 타고 왔으니 돌아갈 때도 택시를 타거나 걸어갈 요량이었다. 평소 운전대를 잡기 위해 술을 절제하던 일행들도 이날 밤은 모처럼 술에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주류들의 상에는 소주를, 비주류의 상에는 콜라와 사이다를 주문했다.

밑반찬이 나온 잠시 후 기다리던 고래고기가 나왔다. 양 쪽 상에 한 접시씩 나온 고래고기는 일단 깔끔한 모습이었다. 고기는 양념소금을 찍어먹는 방법과 소스를 찍어 먹는 방법, 두 가지였다. 고기가 나오자 먼저 맛 본 쪽은 역시 주류들이었다.

 고래 고기와 뼈
 고래 고기와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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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맛있다. 역시 고래 고기 맛이 최고야."
"고기 맛 좋은 데, 소주 안주로 그만이구먼."

소주를 곁들여 먹으면서 고기 맛이 매우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그들은 정말 고기 맛이 좋은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으...! 무슨 고기 맛이 이래? 난 못 먹겠는데..."

비주류 쪽 상에서 첫 번째로 고기를 한 점 맛본 일행이 얼굴을 찡그린다.

"왜? 저쪽에선 맛있다는데."

옆 자리의 다른 일행도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어! 정말이네. 무슨 고기 맛이 이래? 나도 못 먹겠는 걸."

모두 울상들이다. 나도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데 정말 맛이 영 아니었다. 약간 비릿하고 또 약간 역겨운, 옛날 기억 속의 그 맛이었다. 그래도 한 점 맛본 것으로 모두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 다른 색깔의 고기를 집어 다시 씹어 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잘 씹히지가 않는다. 고기가 매우 질겼다. 맛도 없고 질기거나 비릿한 맛,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비주류 쪽 상에서는 더 이상 고래 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옆의 주류쪽 상은 달랐다.

고기 접시가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여전히 맛있다며 잘도 먹고 있었다. 비주류 쪽 일행들이 접시를 주류쪽의 옆 상으로 밀어 놓는다.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회와 저녁식사
 물회와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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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이 맛있는 고기를 먹지 않고."
"그쪽 사람들이나 많이 먹어. 이쪽 사람들은 아무도 먹지 않으니까."
"거 참, 모를 일이네. 맛있는 고기를 못 먹겠다니."
"맛있는 사람들이나 많이 드셔. 역시 고래고기는 먹을 만한 고기가 아니야."

고래고기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두 쪽으로 나뉘었다. 일행 여덟 명 중에서 네 명은 "아주 맛있다", 네 명은 "도저히 못 먹겠다", 극에서 극이었다. 비슷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같은 종류 같은 질의 음식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가 없었다. "맛있다"와 "먹을 만한데" "그 정도면 맛이 괜찮은 편이다" 또는 "별로 맛이 없는데"와 "썩 좋은 맛은 아니지만 그런 데로 먹을 만하다" 정도라면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맛있다" "최고야"와 "도저히 못 먹겠다"는 그 맛을 느끼는 차이가 접근 불가능한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맛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을 때 저녁밥과 함께 물회가 나왔다. 물회는 전날 저녁 묵호에서도 먹었던 음식이었다.

 전문 횟집들이 즐비한 거리
 전문 횟집들이 즐비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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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물회의 맛이 묵호에서 먹었던 맛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물회는 본래 포항이 본고장이다. 그런데 묵호의 그것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은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때? 이 물회 맛. 괜찮은 겨?"
"아니 어젯밤에 먹은 것보다 한 수 아래인 걸."

그런데 물회 맛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고래고기 맛은 그렇게 달랐을까? 그렇다고 고기의 질이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비주류쪽 상에서 퇴출돼 주류쪽 상으로 옮겨간 고래고기도 주류들은 역시 맛있다고 잘 먹었기 때문이다.

고래고기와 포항 물회로 저녁을 먹은 일행들은 죽도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모텔까지 걸어 돌아왔다. 이날 밤 잠자리에선 소주를 곁들여 고래고기와 물회를 실컷 먹은 일행들이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방안을 들썩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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