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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기름)은 어디로 갔을까? 참기름을 발라 숯불에 구운 김처럼 얇고 바삭한 맛이라니. 그건 내가 알고 있던 오리의 껍질이 아니었다. 반대로 살코기는 연하기 짝이 없다. 촉촉함 속에서 느껴지는 그 보드라움이란. 그것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오리의 육질이 아니었다.

 

껍질이 양(火)이라면 살코기는 음(水)이었다. 음양의 조화 속에서 꽃피는 담백하고 달콤했던 맛이란. 바로 베이징카오야(오리구이-烤鴨)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북경 오리구이의 대명사 취앤쥐더

 

천하진미 카오야의 진가를 확인했던 그곳은 바로 베이징 텐안먼 인근에 위치한 취앤쥐더(全聚德) 허핑먼(和平門)점이다. 원래는 허핑먼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치앤먼(前門)점이 본점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거리정화라는 명목으로 그만 헐리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허핑먼점이 본점 역할을 다하고 있다.

 

청나라(1864년)때 처음으로 문을 연 취앤쥐더는 그 구구한 세월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다녀갔다. 그중에는 마오쩌둥이나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있어, 취앤쥐더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지난 2월 말 지도 한 장 들고서 어렵사리 본점을 찾아갔으나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치앤먼(前門)점. 올림픽이란 괴물이 텐안먼 주변의 낡은 건물들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공동체적 삶의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야만 하는 도시 빈민들에게 있어, 올림픽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무너지고 있는 건물들 사이로는 황량한 먼지바람이 일었다(지난 7월 말 치앤먼다이제는 옛 베이징 상업거리를 복원해 다시 문을 열었다. 취앤쥐더 치앤먼점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취앤쥐더 허핑먼점은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건물외관은 백화점과도 같은 크기였으며 복도 끝은 아득하게 길었다. 그런데 좋았던 기분이 순간 달아나고 말았다. 안내를 받아 홀로 들어서는 순간 담배 냄새가 풍겨났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하면, 한 테이블에서 서너명이 동시에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세계적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는 식당에서 금연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니….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카오야의 맛과는 별개로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 나라 사람들을 비판할 처지는 못된다. 옆 사람 개의치 않고 담배 피우는 몰상식, 무개념적인 인간들 우리네 식당에도 널리고 널렸으니까. 식문화 발전을 위해서라도 식당 금연은 필수이고 하루라도 빨리 시행되길 바란다.

 

혼자서 카오야 한 마리는 부담일 것 같아 반 마리만 주문했다. 한마리 가격은 180위안 정도였으나 지금은 가격이 더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잠시 뒤 카오야 한마리를 가져와 내가 보는 앞에서 칼질을 시작한다. 막무가내 칼질이 아니라 여기에도 나름대로 써는 공식이 있다.

 

불그스름하게 구운 오리의 배를 세로로 길게 칼질을 낸다. 다음에 배 위쪽에서부터 차례로 썰어 나간다. 하나같이 껍질과 살코기가 붙어 있게 써는 게 핵심이다. 보고 있노라면 150여년에 걸쳐서 다듬어져 온 노하우가 느껴지는 듯하다.

 

카오야를 먹기 위해서는 전병, 파채, 티앤미앤찌앙(甜面醬, 밀가루 쌈장으로 달콤한 맛)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일하는 도우미가 먹는 방식을 알려줄 요량으로 시범을 보여준다.

 

전병 위에다 쌈장에 찍은 카오야와 파채를 올리고 포장하듯 싸서 먹으면 된다. 그 맛은 담백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카오야의 진미를 확인하는 데는 쌈보다 그냥 먹는 게 더 낫다.

 

카오야 한 점을 사시미 먹듯 쌈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란. 고소한 오리구이의 풍미는 오리 그 이상의 맛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옌징 맥주 한잔 곁들이면 미식의 황홀경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뿐인가?  취앤쥐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카오야, #오리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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