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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향교가 600년 동안이나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의암송이 있는 장수군청에서 장수향교까지는 걸어서 3분이면 갈 수 있다. 좁은 길을 돌아가니 장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옆이 바로 향교이다. 향교가 옛날 지방 학교였으니 옛날 학교와 현대의 학교가 바로 옆에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향교 앞에는 장수향교라고 쓴 선돌이 있고 그 뒤로 담이 향교를 감싸고 있다. 담 안으로는 마당이 있고 마당 너머로 향교 건물이 보인다.

 

마당으로 들어가니 왼쪽으로 최근에 세운 장수향교 600주년 기념비가 눈에 띈다. 장수향교가 1407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이 비석은 작년에 세워진 것이다. 그 옆으로 장수향교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도 보이고, 현감을 지낸 사람의 선정비도 보인다. 이들을 자세히 읽어볼 시간은 없어 주마간산으로 보고 비각 안에 있는 정충복비(전북 문화재자료 제38호)를 보러간다.

 

 

충복 정경손은 의암 주논개와 타루비의 주인공인 순의리 백씨와 함께 장수의 삼절(三節)로 불린다. 삼절이란 절개 있는 세 사람을 말한다. 정경손은 장수향교 지기로 정유재란(1597년) 때 맨 몸으로 장수향교를 지킨 '충성스런 사람(忠僕)'이었다. 이 비석은 1846년(헌종 12) 당시 장수현감이었던 정주석이 정경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경손이 장수향교를 지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왜군이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침공하고 북상 중 장수 향교를 불태우려하자 향교지기 정경손은 "이곳은 성전이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침범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면서 목숨을 걸고 항거 하였다고 한다. 이에 감복한 왜군이 오히려 "이곳은 성전이니 침범하지 말라"라는 신표를 써주었고 그 때문에 장수 향교는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 정경손의 얼을 기리는 제례를 올리고 있다.

 

비각 안으로 비석을 들여다보니 '忠僕丁敬孫竪名碑'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충성스런 신하 정경손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비석들은 비각 안에 들어 있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없는 게 유감이다. 우리는 정충복비를 보고 나서 세 칸짜리 부강문(扶綱門)을 지나 향교 안으로 들어간다. 부강문은 유교의 가장 큰 덕목이 삼강오륜을 지탱하고 부양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장수 향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앞에 명륜당이 보이고 뒤로 대성전이 보인다. 이 명륜당과 대성전이 장수향교의 중심 건물로 그 역사가 무려 600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장수향교는 우리 나라 향교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조선 태종 7년(1407) 장수읍 선창리 당곡에 처음 세워졌다가, 그곳의 땅이 습하다는 이유로 숙종 12년(1686)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건물은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앞에 있고 문묘(文廟)인 대성전(大成殿)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특히 명륜당과 대성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조선 초기 향교건축을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겉보기에도 그렇게 고색창연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자주 보던 절이나 궁전 건축의 웅장하고 화려한 맛과는 달리 뭔가 수수하고 은은한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더 친근감이 든다. 장수향교는 그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1월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장수향교에는 이들 건물 외에 사마재, 동재, 서재 등이 있다. 여기서 사마재라는 특이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최근에 복원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 지은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사마재라면 사마시에 합격한 이 지역의 생원 진사들이 모여 글을 읽던 건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또 이들이 향교에서 선생으로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거처하던 공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동재와 서재는 명륜당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거처하는 주거공간이다.

 

명륜당과 대성전

 

 

우리는 먼저 명륜당으로 간다. 지난번 올 때만 해도 문이 닫혀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문이 활짝 열려 안까지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앞뒤에는 마루를 내어 방과 구별했다. 그리고 여름에 문을 들어 올리면 마치 누각처럼 앞뒤가 완전히 트이도록 만들어졌다.

 

명륜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들보나 서까래보다 그 아래 좌우로 이어진 들보가 더 눈에 띈다. 굵기도 하거니와 상하로 두 개를 받쳐 조금은 무거워 보인다. 이들 두 개 중 아래가 더 굵고 위는 상대적으로 덜 굵다. 그리고 이들 들보에 단청을 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아래에는 구름을 탄 용이 그려져 있고 위에는 학이 그려져 있다.

 

 

 

또 방 안에는 향교의 관리규칙 현판이 하나, 성전이 퇴락해 중수했다는 일종의 중수기 현판이 하나, 재산으로 노비가 있다는 내용의 현판이 하나 등 모두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관리규칙 현판은 을유(乙酉)년 2월 현감인 홍재탁(洪在鐸)이 만든 것으로 되어 있으며 수결까지 있다. 그 내용에 보면 도유사는 향교의 우두머리(首任)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예절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의는 중요한 직책으로 두 사람이 맡도록 되어 있다.

 

명륜당 안을 살펴보고 뒤로 나오니 역시 마루가 있다. 그런데 마루 위 벽 쪽에 특이하게도 벽화가 있다. 법당의 벽에 석가모니 일생을 담은 그림이나 심우도 그리고 조사 스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봤지만 명륜당 벽에 그림이라니? 호기심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 본다. 우선 첫 눈에 정교함이나 예술성은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문 위 벽에 그려진 내용은 일종의 산수화이다. 두 폭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에는 두 개의 산 사이에 총석정처럼 흘립한 바위기둥이 8개 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간다. 산에는 소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꽃이 피고 신록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보아 계절은 봄이다. 봄맞이 하면서 배를 타는 '상춘주행(賞春舟行)' 정도의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하나의 그림은 훨씬 더 단순하다. 단순화해서 그린 산 위에 정자가 하나 있고 그 아래 물에서 사람들이 뱃놀이를 한다. 역시 선비들의 풍류를 그린 것 같다.

 

 

명륜당을 보고 나서 우리는 또 하나의 문을 통해 대성전으로 들어간다. 대성전은 문이 닫혀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이곳 대성전에는 공자, 맹자, 주희 등 중국의 유학자와 안향 등 우리나라 유학자 27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다른 향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이 분들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봄가을 두 번 석전대제를 지낸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낮은 석축 기단 위에 아주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주초석은 화강암을 다듬어 원형 2단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다포집 계통의 포작형식이며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 2개씩을 올려놓았다. 대성전의 옆면은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귀기둥 받침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장수에 금강의 발원지가 있더이다

 

우리는 이곳 장수에서 조선 초기 향교 건축을 제대로 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향교 건물을 보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대성전과 명륜당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차가 군청 마당에 있어 우리는 다시 그곳까지 걸어가야 한다. 차를 타고 다음에 가야할 곳은 두산리에 있는 논개사당 의암사다. 차는 19번 도로를 잠깐 탄다. 이 길은 장수에서 남원으로 이어지고 남장수 분기점에서 88올림픽 고속도로와 만난다.

 

해설사인 김기곤 선생이 앞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산이 신무산이고 이 길이 신무산 왼쪽으로 수분치(水分峙)를 넘어간다고 말한다. 여기서 수분이란 물길이 갈라진다는 뜻이다. 바로 수분치를 경계로 북쪽의 물은 금강으로 흘러가고 남쪽의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백두대간 백운산(1278m)에서 서쪽으로 1000m대의 지맥이 이어지는데 이것이 금남호남정맥이다. 이 정맥의 대표적인 산이 장안산(1236m), 신무산, 팔공산(1147m)이며 이 산줄기가 물길을 남북으로 나눈다. 그리고 신무산 아래에는 금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뜬봉샘이 있다는 것이다. 뜬봉이라는 이름은 봉황이 날았다(떴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뜬봉샘까지 갈 수는 없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이곳이 금강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태그:#장수향교, #명륜당, #대성전, #정충복비, #뜬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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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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