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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전 KBS 이사가 19일 KBS 사장 공모에 응모하지 않겠다며 밝힌 '개인 성명'과 다수의 친정부 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KBS 이사회의 행보는 이 정권의 KBS 장악 시나리오의 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무엇보다 김인규 전 KBS 이사의 '개인 성명'은 정연주 KBS 사장 해임 강행 시나리오의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읽어볼만 하다.

 

그는 'KBS 사장 응모를 포기하며'라는 개인 성명에서 KBS에 대한 그의 평소 애정과 관심, 그리고 KBS 사장직에 대한 의욕과 미련 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주변의 권고와 KBS 사장직에 대한 자신의 미련에도 불구하고 KBS 정상화를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KBS 사장직 공모에 응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대승적 차원이라는 것이 우습다. 그는 사장 후보 응모에 포기하는 첫 번째 이유로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 출범한 새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새 정부에 대한 충정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을 스스로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혼란한 KBS 사태의 장기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는 그의 다음 말은 그 진정성이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 가담했던 정황에 대해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그 심경을 토로했다. "선거 캠프에 몸담는 것 자체가 방송인으로서 약점이 될 것을 우려해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개인 문제에 앞서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언감생심 KBS 사장직에 대한 욕심은 버리는 게 나았을 것이다. 결국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대의'에 따른 그로서는 KBS 사장직에 대한 미련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요란한 KBS 사장 응모 포기... " 나 때문에 등록 안할까봐"

 

그렇다면 조용히 그 뜻을 접었으면 될 일이었다. 공채 1기로서 나름대로 KBS에 대한 충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또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KBS 사장 후보 공모에 응모했던 전력에서 드러나듯이 KBS 사장직에 대한 그의 미련을 감안하더라도 KBS 사장 응모를 포기한다는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 요란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20일 <서울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강아연 기자, 사장 응모 포기한 김인규 전 이사 인터뷰-"KBS 사분 오열돼 스스로 접어")는 그가 왜 굳이 공개적인 입장 표명까지 했을까 하는 궁금증 하나를 덜어 준다. 차기 사장으로 유력시 됐던 그가 KBS 사장 응모 포기를 밝힌 데 대해 그는 "응모를 할 건지 물어 보는 전화가 많이 왔다"면서 "내가 나가면 자신은 어차피 떨어 질 테니 접수를 안 할 거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보니 나 때문에 등록 안하는 사람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응모 포기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인규 전 이사 스스로 자신이 사실상 차기 KBS 사장으로 '낙점'돼 있다시피 했다는 점을 에둘러 시사한 것으로 읽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KBS 차기 사장으로 유력시됐던 김인규 전 이사가 사장 후보 공모에 응모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이 정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시나리오는 그 마무리 과정에서 상당히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변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사장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그 집행정지를 신청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이다. 만약 법원이 대통령의 해임권 행사가 법리적인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정연주 사장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KBS 차기 사장 선임 절차는 당연히 중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KBS 이사회는 지금이라도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일시적으로라도 중단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다. 왜냐하면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에 대한 법리적 논란이 뜨거운 데다가 정사장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 등에 대한 심리가 본격화된 만큼 그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사장 선임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 예상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법적 안정성을 도모할 수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이사회가 나중에 백지화될지도 모를 KBS 사장 공모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사장 후보 공모에 응모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권위를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며칠 있으면 나올 법원의 판단에 개의치 않고 굳이 후임 사장 인선 절차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압력성 시위'다.

 

 

사법부 권위를 무시하는 KBS 이사회

 

그같은 예후는 도처에서 확인된다. 사장 공모 절차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청와대가 누구를 낙점했느니 하는 하마평이 무성하다. 이미 3배수로 압축됐다는 보도도 있다. 25일 후임 사장 추천을 할 것이란 소식도 있다. 언론의 무책임한 앞선 보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김인규 전 사장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제 권력 내부에서는 일부 조정이 있어도 결국은 수정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면서 "KBS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권력의 의중에 따라 KBS 사장을 낙점하는 구태일 것이다.


태그:#KBS 정연주, #김인규, #3권 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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