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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1일 발표한 1차 '공기업 선진화' 추진계획에는 전력·가스·상수도·건강 보험은 제외되었어요. 공기업 민영화에 강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 행보가 최근 비판 여론에 밀린 것으로 보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미국의 인터넷 포털업체 야후닷컴과 한 인터뷰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올바른 길이 있다면 다소 힘들더라도 일관되게 정책을 확고히 밀고 나갈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해 공기업 민영화에 흔들림 없는 의지를 밝혔지요.

 

국영기업이나 공기업이 비효율적이어서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우려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경제학 교수예요. 그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국방부선정 불온도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부키)에서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쁘다"는 통념을 깨뜨리지요.

 

공기업을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드는 이유는 강력해요. 먼저 '주인-대리인 문제', 즉 이론으로는 공기업 주인인 국민 개개인과 경영자들 사이에 정보 격차가 발생하여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들죠.

 

그리고 공기업 경영자들을 추가로 감독하여 수익이 늘어나도 증대분은 전체 국민에게 분배되는 데 반해 비용은 감독에 참여한 국민들에게만 부과되어 누구나 감독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무임승차'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공기업은 정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손실을 보거나 파산의 위기를 맞으면 정부에서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예산한도가 '늘어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우려하죠.

 

얼핏 들어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정연한 주장이에요. 하지만 기업의 국유화에 반대하는 위 세 가지 주장들은 마찬가지로 대규모 민간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장하준 교수는 반박해요. "이들 민간 기업에 고용된 경영자들 역시 최대한 공을 들일 동기가 없고(주인-대리인 문제), 주주들 개개인 역시 고용된 경영자들을 감독할 만한 동기가 없다.(무임승차 문제) 정치적으로 중요한 민간 기업들 역시 보조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정부의 구제 금융 조치를 기대한다며 '늘어나는 예산 제약의 문제' 역시 국영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과거 사례를 다양하게 들지요.

 

하나만 소개를 하면, 미국 자동차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초 위기를 맞았으나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레이건 정부에 의해 구제되지요.

 

여기에 신자유주의 분위기에 묻혀서 알려지지 않은 국영기업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설명해요. 싱가포르 항공, 대만 기업들,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대규모 국영기업 부문과 함께 경제 성공을 이룬 자료를 보여주죠. 유명한 폭스바겐의 최대 주주는 독일의 니더작센 주 정부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네요. 이어 국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한 근거를 내세우며 주장하지요.

 

그러면서 민영화가 공기업의 문제점을 단박에 해결해주지 않으며 오히려 민영화에는 함정이 있다고 꼬집어요. '진짜 팔아야 할 만한 기업'을 어떻게 팔 것인가, '적절한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규모'로 하는가를 따져야 한다고 권고하죠. 1998 외환위기에 '떨이'식으로 알짜배기 기업들을 외국에 넘겨준 경험이 있는 한국에게 밑의 글은 뼈아프게 느껴져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기업을 ‘적절한 구매자’에게 파는 것이다. 민영화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공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능력을 가진 주체에게 매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구매자에게 해당 산업에서 현재까지 달성한 실적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경우, 그 기업은 경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자금 조달에 뛰어난 사람에게 팔릴지도 모른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국영 기업이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경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책에서

 

그는 결론적으로 말해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는 게 '단방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해요. 따라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했던 "쥐를 잡을 수만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에 깃들어 있는 실용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조언하네요.

 

이 책의 제목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따왔어요. 성경과 달리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영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신자유주의가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며 제목을 이렇게 붙였죠.

 

과거에 자신들도 경제성장할 때 썼던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정책으로 부자 나라가 되었으면서 현재 개발도상국에게는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지요. 신자유주의정책이 경제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영향력에 따라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정책을 충실하게 따라했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고개를 돌려보세요.

 

한국도 예외가 아니지요. 어설프고 자만했던 자본개방과 이어진 외환위기, 그리고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한국의 양극화는 심해졌고 이에 따라 사회 갈등은 깊어지고 불만도 높아졌어요.  신자유주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장하준 교수는 "세계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에서, 역사를 이론에 맞추어 왜곡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을 지적해요.

 

가난한 한국에서 태어나 '잘사는 한국'이 되었지만 그는 과거를 잊지 않지요. 그렇기에 현재의 위치를 누리지 않고 개발도상국도 '잘 살길' 바라며 그들을 정체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기조에 제동을 거네요. 연구한 결과를 이렇게 책으로 내어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진실을 알리려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명석하면서도 생생하고, 호소력까지 갖추었다. 세계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절로 새롭게 만들어주는 책이다"라고 칭찬한 이 책은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지요. 국방부에서 누가 이 책을 읽었고 선정을 했을까요? 책을 덮으며 참 궁금해요.

 

한 가지 중요한 걸 덧붙이면 민영화는 좋은 거처럼 느껴지게 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공기업 사기업화란 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있다는 거, 알고 계시면 좋겠네요.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2007)


태그:#나쁜사마리아인들, #불온도서, #국방부, #장하준,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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