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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해 9월 27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지난해 9월 27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맨 왼쪽)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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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미국은 예정대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공식 해제할까? 검증의정서 채택을 둘러싸고 북미간의 이견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8월 11일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북, 검증의정서 수용해야 테러지원국 해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공식 해제하기 위해서는 북핵 검증의정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26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에 대한 '동시 행동' 차원에서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의회에 통보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의회의 동의를 묻는 45일을 북한의 협력 여부를 시험할 기간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북한의 협력"이란 북한이 중국에 제출한 핵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의정서의 수용 여부를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검증의정서의 수용 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만약 북한과 미국이 8월 11일까지 검증의정서에 합의하지 않으면, 미국도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공식 발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다시 6자회담 프로세스에 먹구름이 끼게 될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번복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이 이러한 강경 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 역시 핵 프로그램에 대한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영변에 상주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및 미국 감시단을 추방하는 등 '맞대응'을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8월 11일까지 검증의정서 합의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북미간의 합의 때까지 테러지원국 해제를 유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에게 강경 대응의 빌미를 주지도 않고, 미국 내부의 강경 여론도 무마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의 대응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부시 행정부가 예정대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공식화하지 않으면 북한은 미국이 '행동 대 행동'의 약속을 어겼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3 합의에 따르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북한측의 동시 행동은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이다. 일단 문서상으로는 검증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검증이 뭐길래?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신고 내용, 특히 플루토늄 신고량을 믿을 수 없다며, 공식적인 테러지원국 해제의 선결 조건으로 검증의정서 수용을 내세워왔다. 특히 강도 높은 검증을 위해서는 사실상 북한이 검증단에게 '백지수표'를 줘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미국이 북한에 전달한 검증의정서 초안에는 핵 시설에 대한 접근권, 핵관련 종사자에 대한 면접권, 핵관련 문서 열람권, IAEA 사찰단을 포함한 검증단 구성뿐만 아니라, 미신고 시설에 대한 불시사찰 등 강도 높은 사찰권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주권 침해를 들면서 반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검증문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1992년 이전에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에 대한 검증에 있다. 2003년 이후 추출한 플루토늄은 5MWe 원자로 및 재처리 시설을 사찰하면 비교적 쉽게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1차 핵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1992년 이전 플루토늄 검증 문제는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시험삼아 90g 정도 추출했다고 IAEA에 신고했고, IAEA와 미국은 10kg 안팎에 달한다고 맞서면서 2개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주장했다. 미국과 IAEA는 미신고 시설이 핵폐기물 저장소라고 본 반면에, 북한은 일반적인 군사시설이라고 맞섰다.

결국 이 문제로 1994년 6월에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고, 그 해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경수로가 상당 부분 완료된 이후에, 그러나 핵심 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특별사찰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를 굴욕외교로 간주했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수로 사업은 위기에 봉착했고, 2002년 10월 2차 핵위기가 터지면서 공사마저 중단되었다.

이는 1992년 이전 플루토늄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이 '맨 입'으로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그리고 북한은 특별사찰에 대한 상응조치로 '경수로 사업 재개'를 요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수로 사업에 대한 보장 없이 특별사찰을 수용하는 것은 제네바 합의 때보다도 못한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증 합의와 3단계 협상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경수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했을 때" 비로소 경수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8월 11일, 3일 전과 4일 후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8월 11일 이후의 한반도 기상도는 '흐림'이 될 공산이 크다. 검증의정서에 대한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가 쉽게 좁혀질 가능성도 낮고, 이러한 조건에서 부시 행정부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공식화할 가능성도 낮다.

우려되는 것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유보될 경우 북한의 태도이다. 미국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검증의정서 합의를 시도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미국의 약속 불이행을 이유로 불능화 조치 중단 등 강경책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8월 11일 3일 전과 4일 후가 중요하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과 환담을 하면서 정치적 분위기 조성에 나선다면, 북한이 검증의정서 합의라는 선물을 줄 수도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을 맡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이 이러한 자리를 주선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북한 수뇌부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이 워낙 강해 이러한 이벤트의 성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8월 11일 4일 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연설이 예정되어 있다. 만약 이 대통령이 이 연설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 의지를 밝힌다면,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6자회담에서 한국의 창의적 역할이 복원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에 앞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전후해 이 대통령이 김영남 위원장과 만나 정치적 신뢰회복에 나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테러지원국, #북핵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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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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