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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한양의 모습은 어땠을까? 세종이 태어난 준수방은 어디였을까? 이것들은 많은 이가 궁금해 하는 것이지만, 조선 초기의 문헌이 없는 이상 그것을 확인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실 그동안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도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난 18일 늦은 3시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서울특별시가 주관한 <조선초 한양의 공간과 정치>라는 제목의 ‘세종시대의 재조명 학술행사’가 있었다.

 

원래 이 학술행사의 시작은 세종대왕 생가터 성역화의 일환이다. 2년여 전부터 한글운동을 하던 이들이 “세종대왕생가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이대로)”를 꾸려 세종대왕 생가터를 찾고 그를 성역화하려고 노력해온 결실의 작은 하나가 이것인 까닭이다. 또 이 학술행사는 서울시의회 박주웅 전 의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세종 생가터가 있는 지역 남재경 시의원의 많은 도움 속에 이루어졌다.

 

 

행사는 맨 먼저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가 “조선 전기 한양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우리는 조선 전기 한양에 대해 역사학ㆍ정치학ㆍ건축학을 통합하여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최종목표는 세종 개인 인물에 대한 것은 물론 조선 전기 한양의 인물과 사건 지도, 서울 지형도를 유추해내고, 최대한 세종 생가를 찾아보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세종대왕 생가 기념사업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1년여를 이어가는 긴 학술연구의 대강을 밝힌 것이다.

 

이어서 고려말 조선초 한양 공간을 연구해온 경인교육대 장지연 강사가 “조선초기 한양의 도시계획”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태종이 임금이 되기 전 살던 잠저들 곧 준수방 잠저, 장의동본궁, 영견방본궁 등은 모두 하나의 잠저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렇게 추측한 까닭으로 장지연 강사는 “태종이 영견방본궁(永堅坊本宮)을 수리하면서 대략 51m×45m에 달하는 연못을 팠는데 이 때문에 사헌부·사간원에서는 태종이 경복궁을 버리고 새로운 궁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상소를 올릴 정도로 잠저의 규모가 엄청났다. 또 실제 본궁의 영역이 준수방 잠저, 장의동본궁, 영견방본궁에 걸쳐 있을 정도로 거대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것은 세종국가경영연구소 박현모 연구실장의 “세종 공간활용 정치”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였다. 박 실장은 세종은 재위 32년 동안 무려 49번이나 거처를 옮긴 것, 신하들의 기강 세우기와 임금의 체력 단련을 위해 자주 강무(講武)를 한 점, 길게는 72일이나 되는 온천에 머물며 정치를 한 것 등을 말하며 세종의 공간 활용의 정치를 성명했다.

 

또 그는 “세종은 백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을 진심으로 섬기는 자세를 보였으며, 호소 받은 민폐를 바로 처리해주었기 때문에 조정 신료들은 물론이고 백성으로부터도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종은 들판을 지나갈 때면 일산(日傘)과 부채를 쓰지 않고 벼가 잘되지 않은 곳에선 반드시 말을 멈추어 농부에게 까닭을 묻고 마음이 아파 점심을 들지 않고 돌아오곤 했다. 또 공법이라는 세제개혁을 시행하기에 앞서 직접 경기도 장단현 들판을 답사하기도 했다”라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들려 주며, 세종의 백성 사랑을 증언했다.

 

 

이후 두 발표자와 함께 종합토론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 시간엔 청중들이 “세종은 32년이란 긴 시간 재위했기에 큰 치적을 쌓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현대 대통령의 임기는 얼마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등 주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들이 많이 해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준비기간에도 좋은 발표를 한 발표자들에게 청중들은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학술행사가 끝나고서 세종대왕생가터복원추진위원회 이백수 사무총장은 “그동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지도자인 세종대왕 생가를 서울 시민 대다수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생가를 찾아 기리는 일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들이 소극적으로 대응을 해 답답했었다. 오늘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향인 듯해 마음이 편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시작이다. 세종을 기리는 일이야말로 앞으로 부단히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세종임금이 태어난 곳을 찾아서 그곳에 기념관을 세우고 그를 통해 온 국민이 세종의 백성 사랑을 새기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세계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 해도 모두가 힘을 합쳐 헤쳐나가야 한다고 청중들은 입을 모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종, #한양, #조선초기, #이익주, #벅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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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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