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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거의 없는 착한 베트남인.
 다툼이 거의 없는 착한 베트남인.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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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접했던 베트남. 풋내나는 대학 새내기에게 야릇한 이념의 이국적 향기를 선사했던 나라. 한 달여 동안 이 곳 베트남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서서히 이 나라에 대해 느낌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와 같이 이념을 사수하기 위해 남과 북이 전쟁을 치른 아픈 상처를 간직한 인도차이나반도의 척추. 이같이 우리와 많은 것이 닮아 있어 가끔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한낮 작열하는 태양이 주는 몽롱함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이국의 '다름'이 이방인을 압도하는 나라이다.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나라, 베트남의 소회를 모았다.

준비는 '쭌비', 국가는 '국까'... 그런데 발음이 어렵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만 현지 언어를 알지 못하면 쉽지 않은 문제다. 때문에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는 어려움이 있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없는 비애가 있다. 그런데 베트남어를 가만히 보면 우리말과 닮은 구석이 많다. 과거 중국어를 표기 수단으로 사용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의 잔재가 많기 때문이다.

준비의 베트남어 발음은 '쭌비' 쯤 된다. 국가는 '국까'로 발음된다. 음의 높낮이를 따지는 성조가 자그마치 6개나 있어서 발음이 무척 어렵다. 베트남인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우리말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언어가 같은 한자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배우기 어렵다는 점이 닮아 있다.

최근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인 사업가들은 베트남 경제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많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한국 경제를 더 걱정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끄고 남 걱정하라는 식이다.

물론 상반기 식료품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25% 상승하고 대출 금리 역시 20%대 턱밑까지 치솟았고 주식시장은 반 토막 나는 등 경제가 순탄치는 않지만 외국인들의 투자 매력은 줄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을 보면 최근에는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해 연일 외국 정상들이 다녀가면서 투자협정을 맺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에 있어서는 각종 지표가 힘겹다는 점에서 한국과 같지만, 투자자 눈에 비친 매력도는 사뭇 다른 게 현실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입에 침을 괴게 만드는 열대 과일의 천국.
 보는 이로 하여금 입에 침을 괴게 만드는 열대 과일의 천국.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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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공화국의 시민, 성매매 알선까지 나섰다

배금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에도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부자가 되고자하는 욕망이 젊은 층에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통역이나 번역, 베트남어 교습 등 분야는 인기 있는 직종이다.

베트남어 교습의 경우 일주일에 2~3회, 1일 2시간  가량 출장강습을 할 경우 한 달에 100달러, 통역은 한국말이 능란할 경우 하루에 100달러를 받기도 한다.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호치민대학 같은 정규 대학 한국어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도 있고 한인교회에 나가 무료로 배우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영어 열풍에 휩싸인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력이 커진데다가, 언어 구조 면에서 비슷해 배우기 쉽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중국어 열풍을 자극하고 있다.

베트남의 공식 국가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세상에 배금주의가 빠른 속도로 침투하다보니 가치관이 다소 기형적으로 발전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돈을 버는 과정보다는 결론에 집착하고 있는 것.

주간에는 호텔에서 일하고 야간에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 영문과에 다니는 승(Seung, 25)이라는 여학생에게 돈을 많이 벌면 뭘 하겠느냐고 물었다. 승은 "현재 급여는 너무 적어서 만족할 수 없다, 만약 돈을 많이 번다면 백화점 같은 곳에 가서 물건을 마음껏 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3년간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배운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통역 일을 하는 네오(Neo, 35)는 돈을 벌기 위해서 부동산 매매는 물론 심지어 성매매 알선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배금주의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베트남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더우니 나른나른, 베트남 타임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기도 한 알쏭달쏭함, 그 이면에는 무더운 남방의 지리적 요인도 한 몫 한다.

연중 30℃를 웃도는 이곳 호치민은 더위로 인한 나른함으로 명쾌함이 부족한 곳이다. 시 외곽 땅빈군 한 주택가에서는, 두 달의 공기로 7월 3일 끝내겠다던 하수도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기가 밀려도 낮에는 절대 공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공사를 밤에 시작하고 야심한 시간에도 바닥 다지기와 포클레인 작업을 계속해 소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시끄럽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은 단 한 명도 없다. 왜 공사가 늘어져서 영업에 지장을 주느냐는 항의도 볼 수 없다. 우리와 다른 풍경이다.

남방의 녹녹한 더위는 약속도 흐지부지하게 만든다. 현지 교민들은 베트남인들이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략 5~10분 가량은 '베트남 타임'이고 30~40분 늦는 것도 예사다. 우기인 요즘은 갑작스런 비로 인해 늦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우비를 차려입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라고.

공사 기간을 훨씬 넘긴 때, 늦은 밤 공사에도 뭐라고 나서는 주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공사 기간을 훨씬 넘긴 때, 늦은 밤 공사에도 뭐라고 나서는 주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베트남의 같음과 다름, 그 깊음

열대우림과 몬순기후가 공존하는 베트남에선 과일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으면서 값이 싸다.

바다에 사는 성게 모양의 '쫌쫌'은 1㎏에 5000동, 우리 돈으로 300원가량이다. 고약한 냄새로 인해 '지옥 같은 향기, 천국의 맛'으로 상징되는 두리안은 크기에 따라 몇십만동을 오간다.

용의 눈 같아서 용안으로 불리는 과일, 용이 여의주를 문 것 같아 보인다는 용과, 밀림의 버터 아보카도, 과일의 여왕 망고스틴 등이 즐비하다. 사과·배·감·귤이 주종인 우리와 종류나 값 등이 절대적으로 다르다.

한 달 동안 베트남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있다면 '싸움'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수많은 오토바이, 끊임없는 경적 소리, 그러나 누구 한 명 입을 열어 소리치거나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다. 대신 오토바이 위에서는 무표정하지만 식당이나 집안에서는 잘 웃는다. 기본적으로 천성이 착한 민족이다.

웃는 모습이 우리네와 참 많이 닮았다. 베트남전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적대감도 있을 법 한데 외려 많은 배려를 한다. 그래서 한국의 남자와 월남의 여자, 한남월녀의 결혼이 끊이질 않는 모양이다. 그에 다른 부작용도 많지만.

짧은 기간 동안 베트남은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폭염과 낯설음이 이방인을 굼뜨게 만들었다. 두 나라의 같음과 다름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의 같음과 다름에는 뭔가가 있다. 깊이가 있다. 한 달짜리 새내기 이방인이 가늠할 수 없는.

착한 민족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한남월녀의 결혼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사진은 베트남인 결혼 피로연.
 착한 민족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한남월녀의 결혼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사진은 베트남인 결혼 피로연.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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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 #배금주의, #경제 위기, #한자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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