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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8일 분당샘물교회에서 진행된 고 배형규 목사 장례식. '천국환송예배'로 진행된 이날 장례식에는 1500여명의 교인들이 모여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사진은 샘물교회 청년회가 설교대에서 배 목사의 애창 복음노래인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지난해 9월 8일 분당샘물교회에서 진행된 고 배형규 목사 장례식. '천국환송예배'로 진행된 이날 장례식에는 1500여명의 교인들이 모여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사진은 샘물교회 청년회가 설교대에서 배 목사의 애창 복음노래인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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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의 집무실 한 쪽 서가에는 흑백 사진 하나가 붙어있다. 액자에도 들어있지 않은 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인물은 1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고 배형규 목사.

박 목사는 테이프로 붙여놓은 이 사진을 떼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액자에 넣지도 못한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그저 간직한 상태로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지난해 7월 20일 목사와 신도 20명(남 7, 여 13)이 아프가니스칸 현지에서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사건의 충격은 박 목사에게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민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도 여전하다. 교회 차원에서 정부와 국민을 위해 조금이라도 뜻 있는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샘물교회는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길이 우리의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샘물교회는 이 같은 고민 끝에 교회의 기본적인 봉사와 구호 예산 외에 자체적으로 5억 원에서 10억원 정도의 기금을 마련해 정부나 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액자에도 들어 있지 않은 흑백 사진 한장

박 목사에게 아프간 사태가 현재진행형인 또다른 이유는 배 목사와 함께 희생당한 고 심성민씨의 부친 심진표씨가 교회에 대해 여전히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교회를 향한 분노와 한이 서려 있다.

"저도 몇 차례 그 분을 만났고 교회에서도 대표를 선정해서 그 분이 있는 고성에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모친은 신앙을 갖고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친은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해서라도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도 없는 동역자 배형규 목사와 29살 젊은이 심성민씨의 죽음은 박 목사와 샘물교회에 지워진 아주 무거운 십자가다. 그리고 고 심씨 부친의 분노 역시 교회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교회는 최선을 다해 유족들의 상실감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심성민씨가 장애인 사역에 헌신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장애인 복지시설인 '심성민 그룹홈'을 8월 초에 개설합니다. 물론 고인의 부모님도 초청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9월 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 석방된 19인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살해된 동료 2명의 영정사진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아프간 피랍자 19인 귀국 지난해 9월 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다 석방된 19인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살해된 동료 2명의 영정사진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전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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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자들, 놀라운 의지력으로 충격 이겨내

19명의 피랍자 중 단 한 사람이라도 40일간 억류됐던 끔찍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봐 박 목사는 걱정이 많았다.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 전우택 박사(연세대 의대 교수) 역시 피랍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염려했다.

전 박사에 따르면 장기간 죽음의 위기 가운데 억류된 사람의 10~20%가 평생 정신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그보다 많은 비율의 피해자들이 수년 동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피랍자들은 귀환하자마자 맨 처음으로 병원 치료부터 받았다.

그러나 박 목사와 전 박사의 염려는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19명 모두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난 것이다. 귀환 후 5개월 안 돼서 피랍자 중에서 부부 1쌍이 탄생했고, 각자 교회와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피랍자들과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의외로 담담해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태연한 척 가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피랍자들이 놀라운 정신력으로 40일 간의 악몽을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랍자들이 겪은 죽음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피랍 초기에는 21명 전원을 큰 구덩이 앞에 한 줄로 세워놓은 뒤 복면을 한 텔레반들이 실탄이 든 총으로 이들을 겨누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고 배형규 목사는 팀원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탈레반이 멀찍이 보초를 서는 틈을 타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두려워하지 말 것과 사태가 장기화될 테니 포기하지 말고 체력을 잘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또 배 목사는 '나는 죽겠지만 여러분은 살 것이다'라고 예언처럼 말했다. 그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하게 했고,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했다. 그들은 서로 기도하고 위로하며 40일을 지냈다. 피랍자들은 이런 신앙을 바탕으로 배교를 강요하고 매질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한국교회 공격적 선교 관행은 뼈아픈 자성의 대상

박은조 목사
 박은조 목사
ⓒ 이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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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당시 들끓었던 국민 여론은 샘물교회는 물론 한국 교회 전체가 선교 방법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박 목사는 이 점에 있어서 뼈저린 자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샘물교회는 올해 어떤 단기 선교팀도 해외에 파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적어도 교회가 자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뜻에서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앞으로 공격적인 선교 자세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합니다."

박 목사가 말하는 '공격적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교리적으로만 선포하는 것. 즉 입으로만 떠드는 선교 방식이다. 이런 선교 관행은 기독교를 매우 편협하고 무례한 종교로 만들어버린다. 박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며,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고 말한다.  

"교회 주변에 스님이 운영하는 복지관이 있는데, 이 곳에서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연히 지역 주민을 위한 복지활동이기에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성탄절에 난을 보내왔습니다. 저희도 초파일에 답례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공격적 선교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불교에서 운영하는 시설을 후원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목사에게는 동네 주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곳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초파일 때 답례한 것 역시 예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웃의 좋은 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1주년을 맞아 샘물교회는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 동안 희생자를 기억하는 특별 예배를 마련한다. 박 목사는 "샘물교회가 이 사회와 민족을 어떻게 잘 섬기는 건강한 교회로 거듭날 것인지를 고민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아프간사태, #샘물교회 , #박은조 목사, #아프간사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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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글 쓰는 일로 먹고 산 적이 있고, 돈 벌어보려고 자영업자로 산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하고 그걸 나누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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