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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8살의 두 아이의 엄마다. 5월에는 여러번 촛불집회에 참석을 했지만 거리도 너무 멀고 날도 더워서 어린 아이들 탓에 촛불집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어도 참석한다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 대신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생방송을 보아왔고 공중파 방송에서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도 빠지지 않고 챙겼다. 혹시나 시사 프로그램에 의사라도 전달하고 싶어 전화통을 붙잡고 수도 없이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추가협상을 하고 온 지 며칠되지도 않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도 하지 않은 채 후다닥 고시강행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울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나 하나쯤 하는 생각에 약간은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정부가 밀어붙였다는 생각을 하니 내 나태함 때문인 것 같아 더더욱 내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6월 26일 33개월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나는 오후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촛불집회에 참석하려고 하니 당신이 나중에 퇴근 시간에 딸 좀 데려 오세요."

"당신 맘 모르는건 아닌데, 지금 한낮에 얼마나 더운데 애를 데리고 나가면 어떡해?"

 

"그래도 고시강행을 이대로 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최대한 조심하고 아이 챙길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차피 아이 때문에 오랜 시간 있지도 못하니 일찍 갔다가 일찍 오도록 할게요!"

 

"정 그러면 주말에 다같이 가자."

"주말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고 오늘은 꼭 가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으니 더이상 막지 말았으면 해요."

 

화가 난 남편은 이내 맘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은 영 불편했지만 어린 자녀를 둔 엄마로서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16개월된 둘째를 위해 베낭에 기저귀, 젖병, 보온물병, 물티슈, 손수건, 긴겉옷 등을 챙기니 가방이 묵직했다. 집이 일산인지라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길을 나섰다.

 

오후 2시가 넘어 집을 나섰는데 햇살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다시 한번

양산을 씌워 주었고 유모차로 지하철 계단을 내려 간다는 건 너무나 위험해 보여서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가는길에 식당에 들려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아이 먹을 것을 다시 한번 챙겼다. 시간은 어느덧 4시30분이 지나서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왔는데도 햇살은 여전히 여간 뜨거운 게 아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고 나는 전시 해놓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한쪽 끝 분수가 올라 오는곳에서 더위를 좀 피했다. 

 

시간이 아직 일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천막이 쳐진 곳으로 가서 오늘도 집회를 하는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7시에 한다고 하였다. 햇살이 너무나 뜨거워서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에 들어가 젖병에 물을 넣고 분유를 타서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나온게 신난지 계속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여서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리느라 식은땀을 좀 흘렀다.

 

바깥에서 한무리 일행들이 지나 가는 걸 보고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을 가리켰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안 타려고 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시 나왔다. 그들은 보건의료노조 단체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날 민주노총 총파업 출정식도 같이 겸하고 있어서 점점 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집회를 보며 잔디밭에 신문을 깔고 앉아 있자니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혼자 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같은 직장 사람들끼리 같이 참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아이는 주위 사람들한테 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일일이 찾아가서 보더니 그 사람들로부터 먹거리를 손에 쥐고서 왔다.

 

어느덧 사람들은 거리로 촛불을 밝히려 나갔고 나 또한 부채모양의 '미친소 NO' 가 적힌

종이를 하나 들고, 아이에게도 하나 건네주고는 손에 촛불을 들었다.

 

아이는 촛불을 든 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기도 달라며 칭얼거렸다. 과연 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촛불을 쥐어 주고 위에서 주의 깊게 지켜 보았는데 곧잘 들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는지 너무 앞에서 가지 말라고 했다. 어제 물대포를 발사해서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며 멀찌감치 뒤따라 가라고 여러분이 말해주셔서' 네, 조심할게요!'하고 답을 했다.

 

한무리 사람들은 조선일보 건물 앞에서 촛불을 밝혔고 또 한무리 사람들은 동아일보 앞에서 촛불을 밝혔다. 동아일보 건물 앞에 다양한 스티커를 붙였다. 건물은 안이 훤히 보이도록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안에 있는 직원이 바깥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사진을 들고 다니며 찍자 일부 사람들이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바깥 벽면에 '독자와 함께하는'으로 시작하는 문구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가더니 펜으로 '독재와 함께하는'으로 고쳐 놓자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이 큰 박수를 쳤다.

 

한참을 그렇게 있자 시간은 벌써 9시를 넘어갔다. 더 있고 싶었지만 아이를 위해서 가야만 했다. 아예 갈아타지 않게 3호선이 있는 안국역을 향해서 걸었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흔들리는 유모차 안에서도 고개를 떨구고 잠들어 있었다.

 

한참을 걷자니 등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가는 내내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하는 생각과 함께 서글픔에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딸에게 미안했고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정부는 왜 국민들의 그 목소리를 외면하는지 화가 났다.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에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며 한쪽 구석에 유모차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 시키고 있자니 지하철 에어컨이 너무나 강해서인지 아이가 기침을 해서 웃옷을 벗어서 아이에게 덮어 주었다. 가는 내내 서있는 게 많이 힘들었다. 한참 만에 백석역에 도착해 내리니 시간은 11시를 향하였고 아이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남편은 딸이 엄마를 기다리며 울다 지쳐 잠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손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었다. 피곤함이 몰려와서 나는 늦은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잠에 빠졌다.

 

이제 정부는 국민들에게 진정성 없는 사과는 아예 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보고 있으면 정말 더 화가 난다. 난 사실 욕 못하는 사람인데 요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온다. 정말이지 욕이라도 해야지 안 하면 화병이 나서 죽을 것 같다.

 

만약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럴것 같다.

 

'국민 여러분, 먼저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 제가 한미FTA를 빨리 비준을 받아 시행을 하고픈 맘에 쇠고기를 내어 주었는데 이게 국민들에게 이렇게 큰 반대를 불러

올지 미처 몰랐고 제가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못 헤아린 점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미국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여 이번에는 제대로 된 협상을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절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가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 여러분 앞에서 약속을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최대한 반영하도록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할테니 여러분도 다양한 의견을 게재하여 주십시오. 더불어 이러한 것이 시행되기 이전에 문제 제기를 해준 언론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다시는 이러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법과 원칙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추진하도록 할 것입니다. 

 

역사와 국민 앞에 한점 부끄럼 없고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말로만 섬기는 게 아닌, 제대로 섬기는 정부가 되도록 다시 한번 노력 하겠습니다!'

 

대충 이런 취지일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은 여러번에 걸쳐 사과를 했지만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와닿지 않는다. 왜냐면? 그후의 정부의 대처방안이나 자세가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일관되게 재협상을 하라고 했지 이번에도 졸속으로 서둘러 추가협상을 하여 자율규제 방식을 하라고 한 적이 없다. 시간을 갖고 제대로 해야지 왜 같은 실수를 두번이나 하나? 처음은 제대로 몰라서 그랬다고 치더라도 두번째마저 실수를 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보다. 

 

대통령 한사람의 체면이 좀 깎여서라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해야 하는 게 대통령 자리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잘못된 협상을 다시 고친다고 해서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나?  한번 잘못된 단추를 다시 꿰는게 이렇게 힘든데 두번째는 최대한 흠결이 없도록 해야지 도대체 이게 뭔가? 그렇게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이모양 이꼴이 아닌가?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고 싶다. 정부 스스로 이런식으로 하니 미국조차 이명박 대통령을 가볍게 보지 않나!

 

여당도 마찬가지다. 다수 의석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의 뜻을 모아 국회로 갔으면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정부가 잘못하면 바로 잡아야 한다. 정부가 이번 고시를 강해하려 할 때 어떻게든 막아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들어야지 이게 뭔가? 

 

여당이라고 해서 정부와 대통령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고 뽑아준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화가 나는 것은 <PD수첩>을 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정부, 여당, 조중동, 검찰까지 다 흠집내기와 꼬투리 잡기를 한다.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때 그러한 것을 지적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기는커녕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거와 뭐가 다른가? 이런 마녀 사냥식으로 큰그림을 못보고 흠집내려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다.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는 이런 속셈에 놀아날 만큼 국민들은 우매하지 않다. 아줌마 눈에도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말하여 무엇하나? 국민들은 참으로 인내심과 참을성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 인내심과 참을성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PD수첩>이 광우병에 대해 잘못 전달을 해서 국민들이 그로 인해 잘못

알게 되어서 일파만파 파장이 커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국민들은 어떠한 한 매체에 휘둘릴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나름대로 다양한 자료와 정보로 비교하고 분석하고 내린 판단을 바탕으로 자기 의지대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국민들은 의사판단할 능력도 없고 자기의지와 줏대도 없다는 건가?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국민들로부터가 아닌 국민 전체가 성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 국민들의 질타의 소리가 귀에 약간 거슬리더라도 달게 들어야 한다. 몸에 좋은 게 원래 쓰지 않나?  애정이 있으니 이런 표현도 하는 것이지 아무런 표현도 국민들이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부에 대한 포기라고 본다.

 

다시 한번 제대로 하라고 기회를 주는 국민들한테 진심으로 감사를 하고 제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힘들더라도 재협상을 관철시키라. 이렇게 밀어붙이기로 강행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득보다는 손해라는 것을 이명박 정부가 알았으면 한다. 이건 한-미동맹 관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 자녀들의 먹거리 문제로 늘 불안에 떨게 하지 말아 달라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아줌마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린다.


태그:#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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