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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촛불집회 관련 발언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졌으며, 사설로 다룬 곳도 있다. 위 화면은 "정치성 집회에는 선을 긋겠다는 서울대 총학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는 <세계일보> 사설 중 앞부분이다.
 19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촛불집회 관련 발언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졌으며, 사설로 다룬 곳도 있다. 위 화면은 "정치성 집회에는 선을 긋겠다는 서울대 총학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는 <세계일보> 사설 중 앞부분이다.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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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19일)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총학, '쇠고기 외 정치 쟁점 집회는 불참'" "정치적 목적 촛불집회 참여 안 한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 즉슨,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학우들로부터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에 대한 활동만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그보다 확대된 의제를 다루는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은 무책임한 주류 언론에 의하여 순식간에 '촛불 민심'의 분열상으로, 촛불집회의 '정치화'에 대한 반대 움직임으로 둔갑하였다.

일이 커지자, 총학생회장은 학내 웹사이트를 통하여 이번 일에 대하여 해명하였다. 문제의 발언의 취지는 학내 의견 수렴을 전제로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것이었지, 현 정세에 대하여 앞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언론에 의하여 왜곡되고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촛불 민심 분열' 증거로 간주된 서울대 총학생회장 발언

총학생회장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번 일은 촛불이 꺼지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일부 언론에 의하여 빚어진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곡 보도를 한 언론사에 항의하고 정정 보도를 요구하며 해명 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촛불을 어떻게든 비벼 꺼보려는 언론에 의하여 실컷 이용된 뒤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전하고 싶은 것만을 전하는 일부 언론들의 행태에 놀아났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총학생회장의 선한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는 간명하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활동은 총학생회 구성원들의 승인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에 대한 개입과 같이 중대한 사안은 회원 전체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총투표를 했다.'

중대하다고 생각되는 사안에 대하여 매번 학우들의 의지를 직접 확인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쁜 의도가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민주적 의사 소통을 하겠다는데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서울대 총학생회의 일원으로서, 총학생회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 앞에 한 가지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총학생회장은 예전에 이미 위의 원칙, 즉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총투표를 통하여 학우들의 의지를 확인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동맹휴업에 나선 서울대 학생들이 5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 정문을 지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동맹휴업에 나선 서울대 학생들이 5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 정문을 지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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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퇴진-청와대 진격' 구호... 총투표 결과보다 더 나아갔던 총학생회

총학생회장이 지난 총투표를 통해 학우들에게 물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된 장관 고시의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도 되겠습니까?'

총학생회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시민들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서울대 학우가 군홧발에 폭행당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총투표를 꿋꿋이 진행하였고, 마침내 2만 학우들로부터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었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은 그만 '학우들의 의지'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버리고 말았다. 학업을 중단하고 광화문 앞으로 쏟아져나간 수천 학우들과 수만 시민들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경찰의 폭력 행위에 대한 정권의 사과와 경찰청장 퇴진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는 분명 경찰청 앞에서 "어청수는 사과하라" "어청수는 물러가라"와 같은 구호들을 '선창'하였고, 부총학생회장은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선동'하였다. 총학생회 회원들이 그러한 활동에 동의하여 표를 던진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날 총학생회장은 성명을 통하여 이러한 활동들이 "학우들의 열망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렇게 총투표 결과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갔던 총학생회장이, 이명박 정권에는 '답이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고 난 지금에 와서는 다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학이 시작되어 많은 학우들이 일부는 고향으로, 일부는 거리로 떠나버렸는데, 아무래도 총학생회장은 다시 한 번 총투표를 통하여 학우들의 의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애초에 학내에서 의제를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한정해 버렸던 것은 총학생회장이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정권의 단순한 실수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양산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하루라도 빨리 비준시키려던 정권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한미FTA 비준, 공공 부문 사유화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하루가 다르게 깨달아가고 있을 때, 총학생회장과 총운영위원회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동맹 휴업'으로 의제를 국한시켜 버리지 않았는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동맹휴업에 나선 서울대 학생들이 5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동맹휴업에 나선 서울대 학생들이 5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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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우들의 열망과 사회적 요구"에 다시 부응해야

물론 나는 총학생회장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주권자와 수탁자 사이의, '주인'과 '머슴' 사이의 의사소통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은 총투표 이외에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촛불집회가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확실해졌다. 광화문은 현 정부 정책 전반을 성토하는 장으로 변한 지 오래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정부가 20일까지도 재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에는 정권 퇴진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진작부터 선언해 놓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의제 확대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 아닌가.

총학생회장에게 학우들의 의견을 새로이 수렴할 생각이 정말로 있었다면, 왜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는가? 가만히 앉아서 귀만 열어두고 있는 것을 두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의 발전에 어떻게든 '변질'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언론에게 '아직 의견 수렴이 되지 않아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해 버리다니,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처럼 무책임한 행동이 어디에 있는가.

촛불은 처음부터 우리 삶의 안녕을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었다. 촛불은 처음부터 '불순'했다. 시민들도 처음부터 불순했다. 우리 학생들도 뒤늦게나마 불순해졌다.

이제 학생들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총학생회가 불순해져야 할 차례다. 학우들이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어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광범위한 의견 수렴도, 민주적인 의사소통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가 아니라, 맹목적으로 남의 뒤만 따르는 '추수주의'라 한다.

현명한 총학생회장은 이미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정답을 내보인 적이 있다. 경찰청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학우들의 열망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라.

전창열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박진혁 부총학생회장은 4일 오전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우들의 뜻을 받들어 정부에 한미 쇠고기 재협상과 장관 고시 철회를 요구한다"며 "5일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창열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박진혁 부총학생회장은 4일 오전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우들의 뜻을 받들어 정부에 한미 쇠고기 재협상과 장관 고시 철회를 요구한다"며 "5일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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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경필 기자는 서울대 재학생입니다.



태그:#서울대 총학생회, #촛불집회, #미국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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