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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진화하고 있다. 연일 서울광장을 밝혔던 광우병 반대 촛불이 공영방송인 KBS의 담장을 지키는 촛불로 번졌다. 오늘(17일)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촛불로 바뀐다. 4대강에 얹혀사는 뭇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치켜드는 것이다.

 

촛불 시민들이 대운하 반대를 들고 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권력의 오만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한 채 정략적으로 추진한 한미 쇠고기 협상과 KBS 정연주 사장 퇴진 압박 등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방송장악 의혹과 비슷한 맥락이다.

 

'바보 국민'을 항복시킬 수 있다는 오기

 

특히 80%의 국민 여론을 뒤집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바꿔가면서 추진하고 있는 불도저 대운하 사업에서는 섬뜩한 권력의 오기마저 느껴진다. 그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옳다'는 오만이다. 입으로는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언젠가는 '바보 국민'을 항복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것처럼 비친다.

 

촛불이 대운하로 번진 것은 정권의 꼼수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운하 관련 발언은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거와 한 치도 변한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로인사들과 함께한 조찬회에서 "국민이 대운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국민이 싫어할 경우에 결단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정부여당은 당정 협의회에서 '운하 추진정책'을 후순위 과제로 조정했다. 이날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물가가 오르고 국제 수지 적자가 크게 나는 경제상황에서 대운하 등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얼마전 만 해도 국토해양부 관계자들이 '정면돌파'를 운운하면서 한반도대운하 추진을 공식화했던 것에 비할 때 한참 후퇴한 발언이다. 촛불에 놀란 정부가 대운하 꼬리 감추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이다.

 

국민을 향해 대역공을 준비하는 우매한 정권

 

하지만 정권이 운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간업체들은 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에 한반도대운하 제안서를 만드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조만간 이 제안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부에 제출될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비난여론으로 해체했던 운하TF팀을 다시 재가동하고 있다.

 

또 대운하에 '혈세 한 푼 들이지 않겠다'는 정부는 30억원을 들여 국책연구기관에 대운하 용역을 줬다. 한국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가 "과학자의 영혼을 팔지 않겠다"면서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비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던 이 용역 결과 역시 이달 안에 나올 것이다.

 

이것이 현재 국민들의 눈에 훤히 내비치는 한반도대운하의 전개 과정이다. 조만간 국민여론을 뒤집기 위한 역공에 나설 것이 불보듯한 상황이다. 촛불은 이같은 '정권의 꼼수'를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에 데인 이 대통령은 최근 '소통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항상 운하와 관련한 "국민여론을 듣겠다"고 말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들을 것인지 몇 달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이다. 집권 초기 속사포처럼 '전봇대 2개'를 뺀 것과는 너무나 다른 태도다.

 

이 대통령은 또 "국민이 싫어할 경우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지금까지 수십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반대여론에 눈감고 있다는 방증이다. 역설적으로 촛불은 '불통 대통령'을 향해 촛불 광장의 열기를 느낄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대운하는 '죽음의 정치' '불통의 정치'

 

대운하는 '죽음의 정치'이다. 대운하는 식수재앙이고 환경재앙일 것이라는 우려는 종교계, 학계, 법조계, 심지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운하를 통한 경제살리기를 주장했던 이명박 정부 스스로도 '운하의 경제성'을 사실상 폐기처분한 상태다. 물류운하, 관광운하 등 말을 바꿔가며 경제 부양론을 주장하다가 이제는 '하천정비'로 말을 바꾸지 않았던가.

 

하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과 국민의 생명수를 위협하고, 막대한 국민 혈세를 들여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대운하 사업의 결말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극소수 투기업자와 개발업자의 목소리만 경청하고 있는 정권의 대운하 드라이브.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실용주의 경제가 아니라 국민들을 벼랑으로 몰고갈 '카지노 경제'가 창궐할 것이라고 촛불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 소'와 '미친 물'. 촛불문화제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다. 오늘 서울광장에 켜지는 촛불은 이런 '죽음의 정치'와 '불통의 정치'에 대해 경고음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시대가 소중히 여겨야 할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촛불은 켜질 것이다. 


태그:#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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