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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좌동 명지대학교 본관 10층에 위치하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사무실 현판
▲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사무실 앞 현판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본관 10층에 위치하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사무실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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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굴욕 외교'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번 논란은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농림부 입장과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농림부 입장이 다르기 때문인 것도 기인하고 있다. 얼마 전 강기갑 의원이 공개한 2005년 농림부가 작성한 '쇠고기 수입 대처 방안'에 보면 30개월 이상 된 소가 얼마나 위험한지 기록되어 있어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2005년 농림부가 작성한 문건이 누군가에 의해 무단폐기됐거나 불법유출되어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국민들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일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공공기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부의 기록관리 수준이 발전해 그 문건은 다행스럽게 농림부에 남아 있다. 이렇듯 업무의 결과로 생산한 '기록'은 정부의 정책을 설명해 주는 증거이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권리'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이런 중요한 '기록'을 지키는 데 10년 동안 한 길을 고집한 곳이 있다. 바로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하 연구원)이다. 만약 연구원의 활동이 우리 사회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 농림부의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원은 지난 10년 전 1998년 6월 13일 해방 이후 기록의 생산·보존·활용이 부정과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무분별한 폐기 행위에 묻혀 정부·국민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창립된 민간 연구소다.

연구원의 창립 이후 1999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창립 심포지엄 행사 중 연구원의 창립 이후 1999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 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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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 나라 기록관리 현실은 실로 참담했다. 김영삼 정부까지 제대로 된 기록과 관련된 법조차 없었다. 공무원 중 자기가 보존하고 있는 공공기록을 무단폐기하거나 버려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기록의 무단폐기 및 유출은 극에 달았다. 아마도 당시에 쇠고기 파동이 났으면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국민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문화는 일제 식민지 때 조선총독부가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를 마구잡이로 소각하면서 시작됐다. 이런 관행은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을 겪으면서 '기록을 남겨서 득 본 사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더욱 심해져만 갔다.

1999년이 되어서야 겨우 기록의 생산·이관·보존·폐기를 규정하는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이런 법이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연구원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기록문화전시회, 기록관리실태 고발, 언론기획 등 꾸준히 기록관리 중요성을 알리는 기록문화 운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연구원 구성원의 자문으로 시작된 <세계일보> '기록이 없는 나라' 탐사보도 시리즈는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이 보도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관리실태 전반을 점검하고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기록관리 전반을 손질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구원은 한국기록관리교육원 설립 및 운영 ▲ 공공기록관리방법론 개발 ▲ 민간기관 기록관리 자문 등의 일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기록관리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공공기관에 기록관리전문가인 '기록연구사'가 100명이 넘게 배치됐다. 또한 공공기관에서는 기록을 생산·등록·이관 하는 각종 시스템이 도입되어 과거와 같은 무단폐기나 유출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공공기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출범 당시 100여 명 조직에서 현재는 400여 명이 넘어서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록관리가 얼마나 비약적으로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연구원은 이런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 10년은 '기록관리' 운동에 집중해 왔다면 향후 10년은 정보공개운동에 매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지난 1998년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 제정 이후 10년 동안 정보공개청구가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정보공개에 대한 전문적인 단체가 없어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가)정보공개연구소 설립에 주도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연구원은 (가)정보공개연구소 설립을 통해, 기록정보 대중화 운동 ▲ 공공기관 정보공개실태 모니터 ▲ 민간분야(기업 및 민간단체) 기록공개운동 ▲ 언론탐사보도 지원 ▲ 정보공개청구 및 정보공개소송 대행 ▲ 정보공개 교육 및 출판 등의 사업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0년이 국민의 알권리에 기반이 되는 '기록관리'를 위해서 일해 왔다면 향후 10년은 국민의 알권리에 직접적인 수단인 정보공개제도를 위해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원 부원장 이승휘 명지대 교수는 "21세기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보듯 갈등만 깊어진다"며 "그 파트너십의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정보공개"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를 위해 6월 12일 저녁 6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10주년 기념식과 정보공개연구소 설립을 위한 후원의 밤(문의 전화 02-300-1845)'을 개최한다. 연구원 이승휘 부원장은 "정보공개연구소 설립을 위한 후원의 밤이 국민의 알권리 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근처 산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을 지키는 연구원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근처 산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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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입니다



태그:#기록, #정보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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