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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5월 31일에서 6월 1일 아침까지 이어졌던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입니다. 오후 5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작해서 경복궁역 통의동 효자로, 다시 서울 시청앞 광장에 이르기까지 12시간도 훌쩍넘는 대 집회였지요. 밤이 새고 아침이 밝도록 거리를 지키다가 돌아와보니, 명영수 서울경찰청 경비과장님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명영수 경비과장님은 저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아서 이렇게 한 말씀 드립니다.

 

살수, 물대포 : 살수(撒水)는 살수(殺水)입니다

 

명영수 경비과장님의 생각과는 달리, 경찰의 살수조치에 대해 이미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제가 당일에 기록한 수첩을 확인해보니, 경찰은 밤 11시 50분경부터 새벽 5시 50분경까지, 장장 6시간에 걸쳐 시위대에게 물을 뿌리고 쏘았더군요.

 

이날 경찰은 통의동 효자로에 대치한 시위대에게는 5분 정도씩 2,3분 간격으로 물을 뿌려댔습니다. 경복궁 큰길에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시민들이 가져다준 수건과 담요, 김밥과 초콜릿 등으로 한기를 쫓긴 했지만, 저희가 물에 맞고 젖어있었던 시간이 무려 '6시간'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새벽 4시 이후 서대문 쪽에서 몰려온 전경을 막기 위해 경복궁역 큰길에서 대치한 시위대의 경우, 물대포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경찰은 전경을 앞세워 몸싸움을 하면서도 전경 뒤에 살수차 2대를 배치해 계속 물을 쏘아댔으니까요. 심지어 시위대 앞에 배치된 전경들마저 물에 쫄딱 젖어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할 정도였습니다.

 

이날 경찰의 살수 행위는 명영수 경비과장님이 생각한 것처럼 다수에게 넓게 물을 뿌리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직격 살수'로 인해 실명위기에 처한 사고나, 길을 막은 전경차 위에 올라간 차벽시위자에게 '표적 살수'를 퍼부어 버스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큼직큼직한 사태가 이미 알려졌는데도 서울경찰청 명영수 경비과장님은 '살수는 가장 안전한 해산조치'라고 말씀하시니, 현장에서 저 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보고 들은 것은 다 뭐였는지 모르겠군요.

 

아마 명영수 경비과장님은 못보셨나 봅니다. 실명 위기에 놓인 분도 있고 낙상한 분들도 있지만, 경찰이 광범위하게 뿌린 물이 대다수 시민들에게 얼마나 위험했는지 말입니다. 당신은 '살수에는 압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통의동 효자로에서는 소화전에 직접 호수를 연결해 몇 십명의 전경이 그 호수를 붙잡고 시위대에게 '직격으로' 물을 쏘아댔습니다. 과연 그 물의 압력이 맞아도 괜찮은 정도였겠습니까?

 

5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새벽공기는 싸늘합니다. 장시간의 살수 조치에 저체온증이 와서 쓰러진 사람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 분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청년의 손은 마치 얼었다 녹은 야채 같았습니다. '인간의 손이 저렇게 투명하고 창백해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게다가 경복궁역 길바닥은 경찰의 살수조치로 인해 뭉개진 종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젖어서 미끄러운 도로와 물먹은 종이뭉치들은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는 것을 방해했지요. 덕분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시민들은 전경 4~6명이 뭉쳐 집단 구타를 한 후, 강제 연행을 했습니다. 이런데도 과연 살수로 인해 다쳤다는 것이 거짓말입니까? 저체온증으로 쓰러지고, 쇼크가 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추위에 덜덜 떨었던 사람들은 그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당했단 말입니까?

 

집단구타, 미란다원칙 고지 없는 연행

 

 

기왕 내침 김에 몇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이날 경찰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나 목에서 피를 흘리고, 전신을 구타당한 시민들은 시위에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 같아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날의 부상은 도저히 집회 시위에서 다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전경들이 처음부터 얼굴을 가격해, 안경이 부러지거나 망가졌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진중권 중앙대 교수도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인터뷰 했지요).

 

집회를 하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할 수도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경찰이라면, 해산시에 적법 절차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시민의 안전에 신경써야 하는게 아닐까요? 5월 31일 저녁, 서대문에서 경복궁역으로 행진하던 시위대를, 경찰은 차량 통제도 하지 않은 채 뒤에서 몰아댔습니다. 시민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전경을 피하려고 위험하게 자동차 사이를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새벽 4시경 시위대와 전경이 충돌했을 때, 경찰은 아무런 '경고 방송이나 살수 예고도 하지 않은 채' 물을 쏘고 전경들과 시위대를 충돌케 했습니다. 연행된 대다수 사람들은 다수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두들겨 맞다가 연행되었습니다.

 

연행 현장에서 ▲공무원인 경찰이 소속을 밝히고 ▲연행 이유를 설명하고 ▲변호사 선임권을 고지하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고지해야 하는 '미란다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 날 경찰은 고지없는 연행·집단구타 연행에 항의하는 활동가를 위협하고, 전경의 인도 점령에 항의하는 활동가에게 "(항의하면) 이러면 당신도 연행할 거다"라고 오히려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경찰의 불법행위에 항의하면 잡아간다니, 이런 놀라운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날 시위대는 물에 젖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평화적으로 거리를 지켰습니다. 물을 쏘는 경찰을 향해 "수도세가 아깝다", "세탁비",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5월31일 새벽 YTN 뉴스를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국정쇄신을 고민중이시라더군요. 경찰이 시민들에게 퍼부었던 그 폭력을 아마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세탁비' 이상의 것을  받아낼 겁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충청에 원고보냈습니다


태그:#물대포, #살수, #경찰폭력, #미란다고지,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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