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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서울의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계시는 공정택 교육감님, 교육의 이름으로 당신을 탄핵합니다. 교육에 대한 당신의 소신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육자라면 꿈에서도 차마 입에 담아선 안 될 부끄러운 말을 조금도 부끄럼 없이 내뱉는 당신을 더 이상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7일 전국 시·도교육감회의에서 불순세력으로 지목한 전교조 교사입니다. 선량한 어린 학생들을 선동해서 촛불집회로 내몰았다는 그 전교조 교사입니다. 암울했던 80년대, 당신이 교육개혁심의회 상임 전문위원이 되어 학교를 군사정권에 희생양으로 내줄 때, 저는 전두환 정권의 교육지배에 맞서 싸우다 '범법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일선학교 교장으로 승진가도를 달리던 80~90년대, 저는 노태우 정권과 싸우다 쫓겨나 '거리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교육청 장학관과 잘 나가는 학교 교장을 오가며 승승장구하던 90년대,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격동의 세월을 우리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당신은 양지만 골라 탄탄대로를 걸어 지금에 이르렀고, 저는 질척거리는 음지만 골라 엎어지고 자빠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두 길이 향하는 방향은 정 반대였습니다. 교육감님이 걸어오신 길이 아이들 곁을 떠나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오르막길이었다면, 제가 걸어온 길은 한사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려는 '내리막길'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새삼 교육감님이 걸어오신 길을 탓하거나, 제가 걸어온 길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교육감님의 길이 누군가 말했듯이 '불행한 시절'의 '불가피한 선택' 일수도 있겠고, 과거를 녹슨 훈장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것 또한 추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크기에 비한다면, 어쩌면 그 모든 차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여기서 교육감님의 탄핵을 말하는 이유는, 교육감님의 마음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헤엄치는 법을 잊어버린 물고기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듯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소식을 접하고 스스로 촛불을 밝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을 떠올리는 교육감님의 상상력에서, 저는 군사정권 시절의 악몽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사주가 없이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일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교육감님의 확신에서, 저는 권력의 오만과 독선을 봅니다. 학생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이 없다고 우기는 교육감님의 강변에서, 저는 인간에 대한 원초적 불신과 폭력을 느낍니다.

 

그 속에서 우리 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 양성'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교육감님이 평소 강조하시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 또한 겉치레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적 권리인 '의사표현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한 마음으로는 '자율'은 또 다른 타율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활지도부 교사를 동원해서라도 집회 참가를 막겠다는 발상은 우리 민주주의를 20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얘기입니다. '쇠고기 괴담'을 없애기 위해 학생들에게 정부 홍보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괴담만을 양산할 뿐입니다.

 

교육감님의 그런 인간적 결함은 어쩌면 오랜 군사정권이 남긴 뿌리 깊은 유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금기로 간주되던 시절, 시키면 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술로 여겨지던 시절, 그 숱한 역경을 헤쳐오신 교육감님의 유전자에는 어느덧 자유나 권리에 대한 거부반응이 낙인처럼 아로새겨진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교육감님은 더더욱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 앞에 겸손해지셔야 합니다. 불행했던 시절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습득해야만 했던 유전자를 미래를 살아갈 어린 국민들에게까지 물려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공정택 교육감님, 그 동안 불행한 시대를 험하게 살아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시대의 유산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합니다.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새로운 세대를 재단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물러갈 때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추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 이상 자라나는 새 세대 앞에 걸림돌이 되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용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의 이름으로 당신을 탄핵하기 전에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송원재 기자는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대변인을 지냈으며, 현재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공정택, #촛불집회,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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