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면 1] 모두가 만취한 과 MT에서 선배가 나의 몸을 더듬었다. "술김에"라고 변명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에게 예의 없다고 꾸짖는 선배.

[#장면 2] 얼마 전 헤어진 다른 학교 남자 친구가 계속 전화로 협박을 한다. 이제는 집 앞으로 찾아와 성폭행의 위협까지 가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도움을 구해야 할까.

두 질문에 대한 정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대학 내에 설치된 양성평등상담실(혹은 성폭력상담실)을 찾으면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한쪽이라도 교내 구성원이라면 이곳을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성평등상담실은 피해자에 대한 고충 상담과 심리적 지원으로 시작해, 피해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사건 처리를 진행한다. 비공식적 처리를 원한다면 사실 확인 후 당사자간 합의조정에 나서고, 공식적 처리를 원한다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와 심의를 진행하고 징계를 결정하는 데 앞장선다.

대학 내 성희롱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양성평등상담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행 상담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홍보하고 있다.

대학 내 양성평등상담실의 피해접수와 처리 과정.
 대학 내 양성평등상담실의 피해접수와 처리 과정.
ⓒ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관련사진보기


대학 내 양성평등상담실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울대와 부산대 등에서 처음으로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부서를 둔 것이 시초. 2000년 교육부가 성희롱 예방과 처리에 대한 학칙 규정 개정과 고충전담창구 설치를 의무화함에 따라 연세대, 고려대(2000년), 한양대, 이화여대(2001년), 서강대(2002년) 등이 차례로 학내에 '성폭력성희롱상담소' 혹은 '양성평등상담소'를 열기 시작했다.

2007년 교육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200여개 4년제 대학 중 161개 대학, 200여개 2~3년제 전문대학 중 111개 대학이 관련 부서를 운영 중이다.

양성평등상담실이 하는 일은 성희롱사건 처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고충 개인상담, 집단상담을 비롯해 학내 성희롱 예방 및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문화활동도 벌인다.

서강대 양성평등상담실의 경우 매년 5월 '양성평등문화제'를 개최해 대안생리대 만들기, 여성주의 영화 상영, 양성평등 만화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 고려대 양성평등센터는 양성평등 이미지를 담은 사진 공모전, 양성평등센터 광고 공모전을 열었다. 또한 13일과 14일에는 스토킹에 대해 알아보는 특강과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간담회를 진행한다.

학내 양성평등 교육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 제안도 양성평등상담실의 주요 역할이다. 그 결과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 '성에 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성평등한 관점에서 강의가 진행되었는가'를 묻는 성인지 평가문항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학내 여자화장실에 비상벨 및 비상전화를 설치한 연세대, 동국대, 서강대, 이대 등도 양성평등상담실의 시설 제안으로 이를 추진한 바 있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에서 공익광고 공모전을 하고 있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에서 공익광고 공모전을 하고 있다
ⓒ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관련사진보기


임솔씨는 지난 여름방학에 이화여대 양성평등센터에서 열린 '데이트시 의사소통방법' 워크숍에 참가한 후 "다른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보며 연애의 본질이 무엇인지, 남녀관계에서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소감을 얘기했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노정민 전임상담원은 "어려움이 있거나 정보가 필요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멀리 하지 말고, 한번 양성평등센터를 들러보라"고 제안했다.

"대학 내 성폭력, 처벌보단 교육에 중점 둬"
[인터뷰] 김영희 전국대학 성폭력상담 실무자협의회 회장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김영희 교수.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김영희 교수.
ⓒ 박유미

관련사진보기


성폭력 상담과 관련한 실무자의 얘기를 듣고자 김영희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상담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현재 전국대학 성폭력상담 실무자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서강대 외에도 정부, 기업, 학교 등 각계에서 성희롱 예방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학생의 수에 비해 신고 건수는 현저히 낮아요."

김 교수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문을 뗐다. 성폭력은 친고죄일 확률이 높고, 특히 대학 내에서 교수-학생, 선배-후배처럼 권력관계인 경우에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러나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성폭력을 인지하는 민감성은 높아졌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이 남녀를 통틀어 상승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 달리 데이트 성폭력이나 스토킹이 일어날 경우에도 바로 상담을 요청한다고.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 성폭력 상담사례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요하거나 외모를 비하하는 언어적 차별이다. 그 다음으로는 탈의실, 화장실을 몰래 촬영하거나 특정 신체부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시각적 성희롱이다. 동의하지 않은 신체접촉이나 추행 등 신체적 성희롱은 실제 발생 건수에 비해 신고 비율이 확연히 적은 편이다.

"대학 성폭력은 다루기 어려운 문제예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리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저희는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처벌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둡니다.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나 정학 같은 징계를 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교정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는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없는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양과목 수준에서 성인지적 관점의 수업을 늘리고, 모든 학생들에게 관계 속의 갈등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교양수업에서 여성학 수업을 한 과목 이상 이수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교육이 양성평등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여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양성평등상담실 , #김영희, #성희롱 , #상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