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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는 6일 본관 현관에 고 박경리 선생의 분향소를 마련했다.
 진주여고는 6일 본관 현관에 고 박경리 선생의 분향소를 마련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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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졸업대장이다. 진주여고는 6.25 때 학적부가 소실되었는데, 그 뒤 졸업생 명단만 적은 '졸업대장'을 만들어놓았다.
 박경리 선생의 졸업대장이다. 진주여고는 6.25 때 학적부가 소실되었는데, 그 뒤 졸업생 명단만 적은 '졸업대장'을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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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 박경리 선생은 여고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던 박경리 선생은 지금의 진주여고(당시 진주공립고등여학교, 당시 4년제)를 나왔다. 애석하게도 박 선생의 여고시절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학적부는 없다. 6·25 때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기록은 '졸업대장'이 유일하다. 졸업대장에는 1928~1948년도 사이 졸업생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이 졸업대장은 6·25 뒤 차경삼(車敬三) 교장(1951~1957년 재직) 재직시 제작된 것이다. 당시 김명영(金命永) 교사가 작성하고 교감과 교장이 감수·확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박경리 선생은 진주여고 17회 졸업생이다. 단기 4274년(서기 1941년) 4월에 입학해 4년간 다니고 4278년(서기 1945년) 3월 25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박경리 선생 타계 뒤 일부 언론에서는 1944년 내지 1946년에 졸업한 것으로 보도했는데, 모두 오보다. 진주여고는 1925년 일신여고로 출발했다가 1938년 봉산여고로 바뀌었으며, 진주여고라는 이름은 1951년에 붙여졌다.

조헌국 진주여고 교장은 "박경리 선생의 본명은 '박금이'였다. 학적부가 6·25 때 소실되어 그 뒤 졸업대장을 만들었다. 졸업대장을 만들면서 이름 등에 대해 가족들로부터 확인 과정을 거쳤다. 다른 졸업생은 '확인' 도장이 찍혀 있는데 박경리 선생의 란에는 '확인' 도장이 없다"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은 진주여고 시절 "여자가 공부를 하면 뭣하나, 학교 그만 두고 시집이나 가지"라며 학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그만두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라면서 대들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조헌국 진주여고 교장과 김계선 진주여고동창회장이 박경리 선생의 분향소에 조문하고 있다.
 조헌국 진주여고 교장과 김계선 진주여고동창회장이 박경리 선생의 분향소에 조문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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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 2004년에 '자랑스런 일신인상' 수여하기도

박경리 선생은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에도 진주와 인연을 놓지 않았다. 진주여고와 진주여고동창회는 2004년 4월 25일 개교 70주년 '일신축제' 때 이성자 화백과 함께 박경리 선생에게 '제1회 자랑스런 일신인상'을 수여했다.

2004년 기념식 때 박경리 선생은 진주에 오지 않았으며, 당시 진주여고동창회장이었던 정행길 전 회장이 동창회 간부들과 강원도 원주로 찾아가 상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현재 진주여고 박물관에는 당시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조헌국 교장은 "박경리 선생이 진주여고를 다닐 때는 백남훈(1928~1946년) 교장이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일본인도 있었을 텐데 한국인이 교장으로 있었던 게 특이하다"면서 "백남훈 교장은 진주여고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런 교장 밑에서 대문학가의 꿈이 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계선(58) 진주여고동창회 회장은 "올해 원주에서 토지문학제가 열릴 때 박경리 선생의 동기생 몇 분을 모시고 참석하려고 했는데, 돌아가시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주여고와 진주여고동창회는 2004년 박경리 선생한테 '자랑스런 일신인상'을 수여했으며, 사진은 진주여고 본관 복도에 걸린 안내문이다.
 진주여고와 진주여고동창회는 2004년 박경리 선생한테 '자랑스런 일신인상'을 수여했으며, 사진은 진주여고 본관 복도에 걸린 안내문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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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는 8일 오후 진주여고에 들러 추모식 거행

진주여고는 진주여고박물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놓았다.
 진주여고는 진주여고박물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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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 본관 현관에는 6일 분향소가 마련되어 후배와 문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분향소에는 정영석 진주시장과 김철수 진주예총 회장, 조헌국 진주여고 교장, 김재경·최구식 의원, 최성철 진주신문 사장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리영달 진주문화사랑모임 회장은 "큰 별은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고, 강희근 경상대 교수(시인)는 "진주여고를 나오신 분이 겨레의 대서사시를 큰 정신으로 쓰셨습니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박노정 시인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아이 목구멍에 젖 넘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 또 들려주십시요"라고, 김경 시인은 "쉬엄쉬엄 쉬어 가소서. 가시는 길 토지길·황톳길의 서희와 길상이도 만나 길동무로 행복하소서"라고 썼다.

조헌국 교장은 "학교 도서관에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모아 기념문고를 만들었다. 박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후배들 중에서도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해는 오는 8일 오후 6시경 진주여고에 들른다. 진주여고와 진주여고동창회, 진주지역 문인들은 이날 간단한 추모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조헌국 교장은 "고인의 유해는 8일 오전 발인해서 같은 날 오전 강원도 원주에 들러 노제를 지낸 뒤 진주여고에 들르기로 유가족들과 합의했다"며 "문학 소녀의 꿈을 키웠을 모교의 마지막 길을 뜻있게 모시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행길 전 진주여고동창회장 등이 2004년 강원도 원주를 찾아가 박경리 선생한테 '자랑스런 일신인상'을 건넨 뒤 기념촬영을 했다.
 정행길 전 진주여고동창회장 등이 2004년 강원도 원주를 찾아가 박경리 선생한테 '자랑스런 일신인상'을 건넨 뒤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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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하동에도 분향소 설치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내 중심가인 중앙동 문화마당에는 6일 야외분향소가 마련되었다. 또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안채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하동군청 공무원들은 6일부터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았다. 박경리 선생은 9일 통영 산양읍 미륵산 기슭에 안장된다. 고인이 묻힐 장소는 남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6일부터 터 조성작업이 시작되었다.

진주여고 본관 현관에 설치된 고 박경리 선생 분향소 모습.
 진주여고 본관 현관에 설치된 고 박경리 선생 분향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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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경리, #진주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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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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