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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일까?  '소록도'라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통곡이었다. 아니, 통곡이 아니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반도의 자락에 자리 잡은 땅. 단 한 번도 나를 누구라고 마음껏 소리쳐 보지 못하고 속으로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아픔과 그리움이 서려있는 땅. 그곳이 바로 비정의 땅 소록도다.

한센병 환자들의 희망의 상징인 소록도 공원에 위치한 조각상.
▲ 나병은 낫는다 한센병 환자들의 희망의 상징인 소록도 공원에 위치한 조각상.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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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는 남해안의 어느 섬과 비교해도 그 아름다움은 뒤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보면 작은 애기 사슴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소록도라 불린다.

소록도 기념관에 자리잡은 "보리피리"의 시인의 초상화와 소록도와 관련된 서적들.
▲ 한하운 소록도 기념관에 자리잡은 "보리피리"의 시인의 초상화와 소록도와 관련된 서적들.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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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나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에 나오는 섬이 소록도가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이곳 사람들의 질기고도 질긴 애환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자격이 없을 듯하다.

면적이야 여의도 면적의 1.5배(4.42㎢) 밖에 안 되고 거리로도 녹동항에서 배로 5분도 안 걸리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이곳의 뛰어난 경관과 따뜻한 기후는 이국적인 정서를 느끼게 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이뿐 아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고운 모래사장은 60m의 폭으로 1.2km 뻗어있고 평균수심은 1.5m-2.5m일 뿐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섬인 소록도가 한국의 현대사만큼이나 질곡의 아픔을 숨기고 있다면. 그것도 타인들에 의해 당할 수밖에 없었다면. 가슴 속에 멍은 한(恨)으로 맺혀 평생을 원망해도 들어줄만 하건만…. 이들의 한(恨)은 무엇이 달랐기에 평생을 속으로 앉고 죽음으로 닫아버린 우리의 이웃이 사는 땅, 소록도.

그런데 그곳이 요즈음 또 한 번의 아픔을 겪고 있다. 육중한 기중기 소리가 소록도의 작은 섬을 괴성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현대인의 욕심과 과학이 어울려 또 하나의 아픔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 안달이다.

녹동과 소록도, 소록도와 거금도 연결하는 공사가 소록도의 애기 사슴 가슴을 가로지르고 있다.
▲ 연륙교 공사현장 녹동과 소록도, 소록도와 거금도 연결하는 공사가 소록도의 애기 사슴 가슴을 가로지르고 있다.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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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자연이기를 거부해 버리면 우리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자연을 극복과 편의의 대상쯤으로 여기고 그대로 내버려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굉음이 들리고 먼지가 온 산야를 뒤덮는다.

공사가 진행중인 아름다운 섬 소록도는 말없이 거친 숨만 몰아 쉬고.
▲ 공사현장 공사가 진행중인 아름다운 섬 소록도는 말없이 거친 숨만 몰아 쉬고.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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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요즈음 소록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애기 사슴의 가슴을 자르는 처절한 광경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연륙교라고 한다. 녹동에서 소록도를 거쳐 거금도를 연결하는 연륙교 공사라 한다. 도심에서나 있을 법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철골들은 또 다른 괴물을 형성한다.

녹동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설치된 야간 조명시설
▲ 연륙교 녹동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설치된 야간 조명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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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개발을 꿈꾸며 또 다른 파괴엔 애써 모른 척한다. 누구의 발상일까? 산이 반 토막 나는 광경을 두고도 그들은 이익 찾기에 분주하다. 공사현장이라고 접근을 막는 한 인부는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이다.

대형 크레인은 고요한 애기 사슴 섬을 굉음이 도가니로 몰고 가고.
▲ 공사중 대형 크레인은 고요한 애기 사슴 섬을 굉음이 도가니로 몰고 가고.
ⓒ 윤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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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아님, 소록도가 더 이상의 아픔을 견디기 힘들어 마지막 반항을 시도한 걸까? 작년에는 사고도 있었다. 연륙교 상판이 붕괴되어 12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사고는 사고라고 말할 뿐, 소록도의 입장에는 귀를 닫아 버렸다.

그 누가 소록도의 한(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이고이 간직해 줄꼬. 소록도는 아무 말 없이 인간들의 처분을 기다리며 또 다시 숨죽여 울고 있는 지도 모른다.


태그:#소록도, #한센병, #연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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