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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植民地) 시대라고 하였다. 조선의 민족이 조선이나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만주,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일본인에게 상처를 받고, 죽음을 당하고, 또한 죽음 이상의 치욕을 받아도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고 법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천부(天賦)의 인간의 권리마저도 내세우지 못했던 36년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 상처를 주었던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상처의 고름으로 시련과 아픔을 간직해온 우리네도 잊고자 했던 그 식민의 시대를 숨겨진 치부를 드러내듯 조선의 땅을, 민족을, 그리고 한(恨)을 그려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선에 녹아 있는 조선인의 한을 <아리랑>이라 이름하고 그 중심에 일본인에 희생된 3~400만의 조선인과 그네들의 꿈틀거림을 찾아내고 있다. 바로 소설가 조정래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고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라고 하면서….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은 우리 민족이다. 채찍과 돈, 온갖 권모술수 앞에서 비록 누일망정 뽑히지 않았던 민초들이다. 넓은 평야와 완만한 산자락만큼의 여유로 이웃의 존경을 받던 학자 송수익의 손에는 붓 대신 총이 있었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산세만큼이나 깊은 불심을 키워야할 스님 공허에게는 중생을 구제하기도 전에 일본인을 죽여야 하는 증오가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삼출, 손판석 등의 무지랭이들과 이웃인 방대근 가족 등 수많은 민초들이 군산에서 시작하여 중국과 만주, 그리고 하와이까지 민요 아리랑과 함께 흘러 다니고 있었다. 더불어 동학혁명과 갑오경장, 한일합방과 삼일운동, 우리 근대사의 중추가 되는 독립운동이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농경지 착취를 비롯한 조선인 해외강제 이주, 징용, 하루에 50여 명의 군인들을 몸으로 받아 내었던 정신대의 비극,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생체실험 등의 만행들이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 조정래는 <아리랑>을 탈고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유태인은 3년 동안 죽어갔고, 우리 동포들은 36년에 걸쳐서 죽어갔다. 유태인들보다 10배가 넘는 공포와 고통에도 우리는 여태 우리 민족이 얼마나 죽어갔는가도 모르고 있으며, 다른 민족인 유태인의 비극에는 분노하면서 어찌하여 우리 자신의 비극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지겨워하고 잊기 위하여 노력하는가를 차분하게, 그러나 칼날보다 예리하게 역사를 무심코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러면서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민족은 영원하기 때문에 역사를 바르게 아는 데에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없다고….

 

그렇지만 본인이 대단히 유감스러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그런 민족혼보다 무책임과 거짓말과 속임수만이 용해되어 있고, 그것은 오늘날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그냥 가진 채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동포들의 살을 뜯어내고 있으며, 남녀노소와 반상의 차이, 풍요와 빈곤을 가릴 것 없이 일본에 맞서 싸웠던 전라도 사람들을 지역감정이라는 포장으로 소외시킬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수단으로 한 독립정신의 한 근간도 공산주의로 몰아 매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36년간의 자신들의 만행을  '공소시효'로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용서하지도 잊지도 말아야할 역사

 

늦은 70년대 소설가 김동리는 사석에서 본인에게 이야기했었다. 우리나라 소설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첫째가 문장이 너무 짧은 것이고, 둘째는 묘사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물론 나는 그분의 말씀이 문학평론가들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마다 세계인들에게 회자되는 수상작품의 어느 하나도 우리 조정래의 <아리랑> 12권 중 어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기록문학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박물관처럼 전라도 말의 보고(寶庫)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에 의한 묘사, 그리고 전체적인 짜임과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삶의 본질을 이 이상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느냐고 한다면 과연 본인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약소국 조선의 36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인가?

 

끝으로 작가 조정래는 유태인들은 독일의 잘못을,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고 한데 반하여 해방 50년을 맞은 우리는 일본의 만행을 '결코 용서하지도 잊지도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언제까지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용서를 빌지  않는 일본 정부이기에 작가의 분노가 묻어나고 있는 것이리라. 용서를 빌지도 않는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용서를 빌어 달라. 용서를 빌어야 우리가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사정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와 더불어 본인도 학교선생이기 전에 대하소설 <아리랑>을 떨리는 심장을 눌러가면서 읽은 한낱 평범한 독자로서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후손들에게 '식민지사(植民地史)'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반드시 정부가 주도하여, 영어나 일본어 몇 백배 이상의 비중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용서하지도 잊지도 말아야할 역사를 바르게 아는 데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없다는 작가 조정래의 말이 아리랑의 가락으로 귓속을 맴도는 한(恨)이 되어 와 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보면서 착잡함에 서랍 속 원고의 먼지를 턴다.


아리랑 세트 - 전12권 (반양장)

조정래 지음, 해냄(2002)


태그:#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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