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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기되던 조기 전당대회 개최 요구를 반대하고 나선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측은 "예측가능한 정치를 위해서"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4·9총선에서 '친박(근혜)' 세력이 당 안팎에서 60명 가까이 생환한 반면, 이재오·이방호·정종복·박형준 의원 등 핵심 측근이 줄줄이 낙마한 만큼 이 대통령으로서는 새로운 당내 '메신저'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강 대표, 임기 채우는 게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의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강 대표의 당 대표직 임기가 오는 7월까지로 돼 있는 만큼 이를 채우는 게 좋겠다"며 예정대로 7월에 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당초 조기 전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강 대표도 "알겠다"며 이 대통령의 뜻을 수용키로 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강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7월 11일을 전후로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선진 정당이 되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정치 일정이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당 대표가 임기를 지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 대표는 지난해 대선 경선을 무사히 관리했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총선에서도 자신은 불출마까지 해가며 과반을 얻어내는 신기록을 달성했다"며 "혁혁한 업적을 쌓은 분을 물러나라고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당규에 규정된 '당권·대권 분리' 차원에서 보자면 이 대통령이 굳이 여당의 전당대회 개최 시기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날(10일) 총선 결과에 대해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지지한 국민여론이 과반 의석을 만들었다"며 국민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강 대표를 만나서는 "언론에서는 170석이라고들 했는데, 대선 이후 (총선이) 바로 연결돼 있어서 과반이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며 거듭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획득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각종 법안 및 정책 추진에 가속도를 내라고 독려했다. 당장 5월 임시국회를 열고 금산분리 완화, 산업은행 민영화,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지주회사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의 법안을 처리하는 데 당·청이 총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총선 승리를 계기로 공천 문제로 분열됐던 당내 갈등을 추스르는 한편,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면서 본격적인 '이명박식 드라이브'를 걸고 싶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기 전당대회 개최 문제가 당내 새로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경우 여권은 또 다시 당권경쟁 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조기 전대 개최에 대해 명확히 '불가' 입장을 피력한 이유 중 하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아직 당내 문제가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조기 전대 개최 문제로 총선 직후 바로 당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총선이 왜 '박근혜 선거' '친박의 승리'냐?"

 

하지만 전당대회를 7월까지 미룬다고 해서 당내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면 밑에 가라앉아있던 친박 세력의 복당 문제가 시한폭탄으로 되살아 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위력이 총선을 통해 재확인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당권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7월 전대에서 어차피 넘고 가야할 산이다.

 

때문에 당내 '이명박계' 소장파들 사이에서는 조기 전대 개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재오 의원 등 '친이' 세력의 구심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왜 굳이 직접 나서서 여당의 조기 전대 개최에 브레이크를 걸었을까?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조기 전대를 하지 말라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도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와 라이벌이 아닌데, 언론에서 왜 자꾸 그렇게 보는지 모르겠다"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힘 겨루기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밖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박근혜 선거'라느니, '친박의 승리'라고 하는데, 이게 왜 박근혜의 승리냐"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당대회가 급하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총선 결과 중 유독 수도권에서의 압승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강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111개의 수도권 의석 중 80석 이상을 가져온 것에 대해 "수도권에서는 지역 정서가 없어진 것 아닌가. 진일보한 선진적인 정치 문화의 증거"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역대 선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탄핵 역풍을 연상케 하는 압승이 나왔다는 것은 대선 결과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수도권 선거에서는 '박근혜표'보다 '이명박표'가 먹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밤 총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도 영남쪽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친박 후보들에게 역전당하는 상황이 잇달아 연출됐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수도권 압승을 두고 "한나라당이 이제 전국 정당이 된 것이 아니냐"고 반겼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에 대해서도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인 반면 '순수 무소속'인 김광림·김세연 등 4명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넘겨줄 의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조기 전대 반대는 박 전 대표에 맞서기 위해 7월까지 이명박계에서 내세울 인물을 찾기 위한 일종의 시간벌기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에서 '협력' 보다는 '견제'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 공은 다시 박 전 대표에게 넘어갔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전 대표, #조기 전당대회, #강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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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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