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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암벽과 손목 부러진 등산객 경사가 심한 족두리봉의 암벽을 오르는 것은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암벽을 오르는 등산객과 넘어져 손목이 부러진 여성등산객을 다른 등산객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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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걸 어쩌지,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게 됐으니…."

등에서 서늘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높고 넓은 암벽을 기어오르다가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난 것이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릿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위쪽은 까마득한 암벽이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바위절벽이 아스라했다.

아차! 하면 끝장이었다.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위에 최대한 엎드린 자세로 잠깐 쉬기로 했다. 다리에 힘을 모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잠깐 쉬자 현기증도 사라지고 후들거리던 다리도 진정이 되었다. 조심조심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북한산 족두리봉
 북한산 족두리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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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4월8일) 북한산 족두리봉을 오르는 중에 발생한 일이다. 불광동 쪽 터널입구에서 시작한 산행은 곧바로 족두리봉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바위봉우리를 멀리서 바라보면 신부가 머리에 쓰던 족두리와 모양이 흡사하다

봉우리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윗부분은 흙길이 전혀 없는 완전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였다. 일행들과 함께 오르다가 맨 앞장을 선 친구가 암벽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일행들은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맨 뒤를 따르던 나도 암벽을 오르는 길을 택했다. 경사는 45도 쯤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치마를 펼친 것처럼 넓은 바위가 꼭대기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를 타고 몇 명의 남녀가 앞장서 올라가고 있었다.

바위 바닥은 그리 미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돌기나 틈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을 바위에 밀착시켜 몸을 지탱하며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사각이 45도 정도여서 아차 미끄러지거나 한발이라도 헛디디면 밑으로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렇게 30여m를 올라갔다. 앞장서 올라간 사람들은 20여m 윗부분의 약간 턱이 진 위로 올라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발 딛기가 매우 힘든 곳에서 어렵게 힘을 쓰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 것이다.

족두리봉 근처의 바위와 풍경
 족두리봉 근처의 바위와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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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어질어질 하며 눈앞이 흐려졌다. 순간적으로 위기감이 엄습했다. 본능적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아래쪽은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몇 년간의 등산길에서 처음당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깐 쉬며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발바닥을 가장 안정감 있는 바위면에 바짝 붙였다.

그런 자세로 2~3분 정도나 쉬었을까. 마음이 안정되면서 현기증도 사라졌다. 후들거리던 다리도 바로 잡혔다. 다시 조심조심 오르기 시작했다. 10여m를 더 올라가자 바위가 갈라진 틈에 안전하게 쉴만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잠깐 쉬며 지형을 살펴보았다. 머리 위쪽은 조금 전에 올라온 것과 비슷한 암벽길이었다. 그러나 왼편에 소나무와 잡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바위와 흙길이 섞인 다른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그쪽 길로 오르기로 작정 했다. 일단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역시 내 예상이 적중했다. 길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암벽길 보다는 한결 수월한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을 따라 정상 가까이 오를 수 있었다.

이 암벽을 오르다 죽을 뻔 했지요
 이 암벽을 오르다 죽을 뻔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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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기를 넘기고 올라온 암벽길을 내려다보니 정말 아슬아슬하다. 조금 전 바위 위에서 아차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새삼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진다. 잠깐 앉아서 쉬는 동안 건너편 바위를 타고 오르는 등산객의 모습이 보인다.

경사각도나 구조가 내가 올라온 암벽과 거의 흡사했다. 그 사람도 앞장서 올라간 다른 일행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엎드린 자세로 기어 올라가던 그가 잠간 멈칫하며 동작을 멈춘다. 그리고 잠간 쉬었다가 다시 오른다.

그가 어렵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행동이 꼭 내가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족두리봉 정상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좋다.

불광동 연신내로 이어지는 서쪽지역의 시가지며 동북쪽의 백운대와 만경대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그런데 향로봉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4~5m 쯤 되는 수직 바위절벽을 맨손으로 내려간다. 매우 위험해 보였지만 거침없이 내려가는 모습이 암벽등반 전문가처럼 보였다.

우리일행은 위험한 길을 피하여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암벽길에서 혼쭐이 난 내가 앞장서 위험한 길을 피한 것이다. 향로봉 정상에도 오르지 않고 역시 우회하여 비봉으로 향했다. 이날은 어떤 바위봉우리도 더 이상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위봉우리에 완전히 주눅이 든 상태였다.

암벽 아래의 진달래
 암벽 아래의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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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봉으로 가는 길에서 부상단한 여성등산객을 만났다. 50대 중반의 이 여성등산객은 능선길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왼쪽 손목을 붙잡고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를 다쳤느냐고 묻자 능선길에서 넘어지면서 왼쪽손목이 부러졌다는 것이었다.

부상당한 여성등산객 주변에 몇 사람의 다른 등산객들이 몰려 있었다. 단체산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부상당한 여성등산객의 일행이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 두 사람이 나섰다. 한 사람은 나뭇가지를 꺾어 부목을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배낭에서 압박붕대를 꺼냈다.

그리고 곧 부러진 손목에 부목을 대고 압박붕대로 칭칭 감아 응급조치를 한다. 능숙하게 응급조치를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 덕분에 부상당한 여성등산객은 큰 무리 없이 하산하여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전에 나도 암벽 오르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는걸."
"어, 그런 일이 있었어? 큰일 날 뻔 했군 그래."

그러나 일행들은 내가 당한 위기의 순간이 선뜻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항상 그들을 돌보며 이끌고 다니는 산행리더였기 때문이리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위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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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했던 위기의 순간과 부상당한 여성등산객을 보며 새삼스럽게 산행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산행에서는 나 자신보다도 일행들의 안전에 더 많은 배려와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대동문과 진달래 능선을 거쳐 우이동으로 하산하기로 했던 처음의 계획을 수정했다. 모처럼 땀을 뻘뻘 흘리게 하는 따뜻한 날씨와 족두리봉 암벽 등반에 지쳤기 때문이다. 비봉을 돌아 사모바위까지만 갔다가 승가사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간식을 들며 쉬고 있는 바위 절벽 사이에 피어난 진달래가 참으로 고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족두리봉, #암벽, #현기증,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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