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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튼튼한 재질로 공고문을 만들어 일 년 내내 붙여놓고 있는 한국공장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겐 소용없는 일이다.
▲ 구인 벽보 아예 튼튼한 재질로 공고문을 만들어 일 년 내내 붙여놓고 있는 한국공장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겐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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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사는 것이 몸에 배어버린 조선족 젊은이들

요즘 중국의 많은 공장들은 인력난으로 애를 먹는데, 조선족은 실업자가 속출하는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이 한국기업에서 일하던 조선족이다. 한국기업이 몰려오면서 이곳에서 조선족의 취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업무에 관련된 능력보다 한국어를 구사하기만 하면 별 어려움 없이 중간관리자로 취업이 되었으며, 많은 조선족들이 능력에 비해 월등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한국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조선족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관리자급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데 눈높이를 낮추는 구직자는 많지 않다. 따라서 한국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을 겪고 있지만 실업자는 늘어만 간다. 우리 공장 역시 자재관리 직원을 모집하는데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중이다.

물론 구인공고를 내면 전화가 빗발친다. 그러나 2-5년의 경력을 내세우며 경력자 대우를 요구하는 사람 중에 실제 업무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업무와 직결된 전문성을 배우기보다는 한국인의 통역이나 심부름을 주로 하며 안주한 탓이다. 기왕 일하기로 했으니 처음부터 배우라며 일을 시켜보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일을 배워보려는 노력도 없이 그만두는 이들 대부분이 편하게 사는 것이 몸에 배어버린 경우이다. 자신의 능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한 일자리만 찾는다. 그 이면에는 무조건적 자식 사랑이 숨어 있다. 놀아도 용돈을 주는 가족이 있기에 조금만 힘들다고 생각되면 거침없이 회사를 그만둔다.

힘든 일을 기피하다 보니 그들을 받아 줄 일자리가 많지 않다. 특히 한국기업이 문을 닫으면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던 조선족들의 일자리는 좁아졌지만 눈높이를 낮추려는 구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 힘든 일 대신 노는 것을 택한 젊은이들 힘든 일을 기피하다 보니 그들을 받아 줄 일자리가 많지 않다. 특히 한국기업이 문을 닫으면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던 조선족들의 일자리는 좁아졌지만 눈높이를 낮추려는 구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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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것 안쓰럽지만 이겨내도록 모른 체 해야"

오늘도 우리 공장 경비할아버지의 외손자 때문에 내 심기가 불편해져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그가 우리공장 식객이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취업차 왔다는 말을 들을 때만해도 한창 성수기에 기술과 경력도 있으니 곧 취직해 떠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실업자 상태다. 

그도 한때는 우리공장 직원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다며 우리 회사 직원인 삼촌과 할아버지만 믿고 공장으로 찾아와선 뚜렷한 목적도 없이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런 그를 못마땅해 하던 동생이 현장에서 일을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노는 것도 싫증이 났는지 선뜻 동의하고 처음 얼마간은 열심히 배우는 듯 했다.

다행히 눈썰미도 있고 머리도 비상해서 생각보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또 재단 일에 흥미를 보이기도 해 잘 가르치면 훌륭한 기술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여 동생이 내심 애정을 쏟으며 기술을 가르쳤다. 그러나 일이 조금 익숙해지자 삼촌과 할아버지만 믿고 걸핏하면 결근을 했다. 어른들은 따끔하게 야단치기보다 그저 쉬쉬하며 변명하기 바빴다.

당연히 우리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게 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창 성수기로 야근에 철야까지 정신없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 숙소를 제 집인 양 빈둥거리며 지냈다. 보다 못한 제 삼촌이 일자리를 마련해 내보냈지만 오래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할 수 없이 우리 공장에서 다시 일을 시켰으나 여전히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다가 끝내 야단치는 삼촌에게 반항하듯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사이판으로 취직해 떠났다는 소식이더니 그 먼 외국에서도 걸핏하면 전화를 해 하소연하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제 눈에서 멀어졌으니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제발 모른 체하라는 충고를 했다. 다행히 2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귀국했고, 어느새 고향의 동생과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의젓한 청년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작년 말쯤 사이판 2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베트남 한국공장의 관리자로 갔다.

"그것 봐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 거예요. 여기서는 그렇게 자리 못 잡고 방황하던 애가 생면부지의 나라에서 잘 견디고 기술도 익혀서 이제 스스로 서게 됐잖아요? 어린 것이 고생하는 게 안쓰럽긴 하지만 그걸 이겨내도록 모른 체하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에요."

검증되지 않은 경력만 믿고 눈높이 낮추려 하지 않아

덕담을 하며 축하해 준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만 적응을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우리의 식객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되돌아온 이유가 베트남어를 못해 관리자로 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많은 돈 들여서 갔는데 그럼 사이판에서처럼 기능공으로 자리를 바꿔보지 그랬어?"라는 내 물음에 그저 어물어물하고 만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한국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간 지 얼마 안 돼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고생하면서도 귀국하지 못했다. 한국을 가기 위해 빚을 얻었기에 그냥 귀국하면 그 빚을 갚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완쾌되어 괜찮다고 하지만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수술까지 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으니 그 건강을 확신하기 힘들다.

고국이라고는 하나 엄연한 타국에서 오직 자식을 위해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아린데, 그는 이런 어머니의 수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 기댄 채 편하고 쉬운 일자리만 고집한다. 한때 관리자로 일한 검증되지 않은 경력만 믿고 눈높이를 낮추려 하지 않는다.

실업상태가 계속되는 조선족 젊은이 대부분은 이렇듯 능력에 비해 턱없이 좋은 일자리만 찾으며 가족에게 기대는 사람들이다. 편한 일이 몸에 익숙해져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스스로 서겠다는 의지는 금방 무너져버리고 다시 가족의 보호막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부모 역시 당장의 안쓰러움을 떨치지 못해 이런저런 구실로 찾아드는 자식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점점 더 나약한 젊은이만 양산되는 실정이다.

중국 산동지역 한국어 포털 사이트인 ‘하오산동’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구인 구직 공고가 올라온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 모두 실패하고 다시 올리는 경우도 많아 요구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구인, 구직 공고 중국 산동지역 한국어 포털 사이트인 ‘하오산동’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구인 구직 공고가 올라온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 모두 실패하고 다시 올리는 경우도 많아 요구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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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호시절만 믿고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만 기다려

한때는 자본을 손에 쥐고 몰려오는 한국인들로 인해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쉽게 관리자급으로 취업해 통역이나 심부름을 하는 개인비서 역할을 하면서 한족보다 높은 급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업무에 관한 전문지식을 배우기보다 쉽고 편한 일에 길들여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변화하는 중국의 기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상당수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런 젊은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게다가 이제는 한족들도 한국어를 전공한 사람이 많아 한국기업조차 조선족보다 한족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의 성취도나 문제해결 면에서 조선족보다 한족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임금 시절에야 한국인들이 개인비서를 두고도 이익창출이 가능했지만 고임금 시대로 전환된 이상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론 취업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듯 환경은 변하는데 예전의 호시절만 믿고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니 실업상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힘든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와 이를 묵인하는 부모들이 많다보니 결국 생산 현장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는데도 실업자는 넘쳐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식이 편히 사는 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마는 남의 등에 기대서 편한 삶을 살 수 없는 것 또한 세상 이치다. 우리나라도 고속경제성장에 매진하면서 부모들의 반대급부적인 무조건적인 자녀사랑이 난무하고, 캥거루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조선족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제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진정한 자녀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볼 때다.


태그:#조선족, #캥거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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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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