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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
▲ 강부자의 오구 공연포스터
ⓒ 고양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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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원각사(지금의 서울 정동극장)에서 이인직의 <은세계>가 공연된 지 100주년이 되었다. 올해로 대한민국 연극은 100돌을 맞는 것이다. 연극계의 오랜 침체 속에서 맞는 약간은 우울한 100돌이지만 이를 기념하는 사업은 활발하다.

한국연극협회는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 사업단’(단장 박계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꾸려 <남사당의 하늘>(윤대성 작·손진책 연출)과 김우진의 <산돼지>, 박승희의 <고향>, 유치진의 <원술랑>을 무대에 올려 100돌을 기념한다.

그리고 서울문화재단과 더불어 대학로 연극투어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함께 ‘한국 신극 100년 기념공연 시리즈’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고양문화재단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으로 오랜 기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부자의 <오구>(이윤택 작·연출)를 10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했다.

26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

죽음을 단지 눈물로만 표현하지 않고, 죽음을 다루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게 하는 이윤택의 연출력은 260만이라는 놀라운 관객을 모으며 <오구>를 국민연극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별한 줄거리나 그 흔한 반전도 없이, ‘죽음’이나 ‘굿’이라는 약간은 거부감이 들 만한 소재를 가지고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오구>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열연중인 강부자
▲ 공연모습 열연중인 강부자
ⓒ 연희단 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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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의 나른한 오후. 노모는 설핏 낮잠에 들고, 꿈 속에서 죽은 남편과 염라대왕을 만난 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노모는 죽기 전에 자신의 극락왕생을 위해 아들에게 산오구굿을 청하고 아들은 마지못해 굿판을 수락한다. (1~3경)

박수 석출은 요란한 굿판을 벌이고 마을 사람 모두가 신명나는 굿판을 즐기는 가운데 노모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4경)

갑작스런 노모의 죽음으로 가족은 슬픔에 잠기지만, 이내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한다. 염과 고복의식을 치르고 문상객들을 맞이하는 가족들. 상가는 엄숙함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일상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화투를 치고 술을 마시며 소란스런 가운데 맏며느리와 둘째 아들 간에 재산상속문제로 다툼이 벌어진다.(5~6경)

노모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들이 등장하고 자식들의 재산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번지자 저승사자는 죽은 노모를 되살린다. 살아난 노모는 자식들을 엄하게 꾸짖고, 손녀딸과 꼬마 저승사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가 깊어가는 가운데 노모는 산 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뚜벅뚜벅 먼 길을 떠난다. (7~8경)

총 8막으로 구성된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줄타기 한다. 그 줄타기의 중심에는 강부자가 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동안 그녀는 넓은 무대와 객석을 쥐락펴락하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97년 처음 노모 역을 맡은 강부자씨의 표현력은 세월이 갈수록 뼈와 살이 붙는다.

자신이 밝히듯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더욱 직접적이면서도 담백하게 와 닿는 탓이리라. 관객들은 공연 내내 강부자씨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오구>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강부자라는 배우의 힘이다.

되살아난 노모.
▲ 공연모습 되살아난 노모.
ⓒ 연희단 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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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는 ‘산오구굿(산 사람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의 준말이다. 이처럼 <오구>에서 굿의 중요함을 빼놓을 수 없다.

박수 석출 역을 맡은 하용부(중요 무형문화재 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씨와 김소희(무녀, 과수댁 분), 김미숙(무녀, 각설이 분) 등이 펼치는 신명나는 굿판은 공연 내내 관객을 연극의 관객인지, 굿판의 구경꾼인지 헛갈리게 하며 공연의 흥을 더한다.

관객은 굿판을 통해 연극에 개입하며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한다. 객석과 무대를 오가는 이러한 열린 구조는 <오구>의 또 다른 매력이다.

더불어 영화 <밀양>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조영진(맏아들 분)씨와 며느리 역할을 맡은 정동숙씨의 코믹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밋거리다.

<오구> 20년. 그 새로운 시작

<오구>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과 어울려 신명나는 대동풀이를 연출하고 있다.
▲ 배웅하는 배우들. <오구>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들과 어울려 신명나는 대동풀이를 연출하고 있다.
ⓒ 손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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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에 태어난 이들이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이윤택 연출가가 지인의 부친상에 가서 밤새 화투를 치다 떠올렸다는 <오구>가 처음 무대에 오른 게 89년이다(초연 당시 제목은 ‘잘 가세요’). <오구>에게도 스무 해의 무게가 쌓인 것이다.

<오구>에서 죽음이란 단지 비극적이고 엄숙한 것만이 아니라 때론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게 그려진다. 상가는 삶과 죽음, 웃음과 눈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며, 죽음이란 죽은 자에겐 내세(來世)를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이고, 산 자에겐 죽은 자를 기리며 남은 생을 준비하는 축제가 되기도 한다.

죽음을 해학으로 승화시켜 웃고 즐기는 가운데 삶과 죽음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스무 해 동안 쌓아온 <오구>의 힘이며 미덕이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강부자 씨.
▲ 배웅하는 강부자.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강부자 씨.
ⓒ 손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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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단지 끝이 아니라는 얘길 하듯, 배우들은 공연이 끝나고도 무대 밖까지 나와 이현의 ‘잘 있어요’를 부르며 신명나는 대동풀이를 연출한다. 끝까지 관객과 소통하며 배웅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스무 살 <오구>의 새로운 시작을 엿본다. 다가올 스무 해의 <오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과 소통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 한 편의 연극을 나는 한국의 서민극이라 이름 붙였었다. 나름의 민중극. (중략) 오구는 나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자유롭게 실험된 실험극이었고, 이 실험은 4살 먹은 어린애부터 팔순 할머니 세대까지 나름의 생각과 느낌으로 관람할 수 있는 대중극으로 형성되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 내가 연극쟁이가 되어서 이런 연극 한편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운명의 신에게 감지덕지하고 있다. 이게 다 조상 잘 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연극 한편 만들 수 있게 된 행운. (이윤택 연출의 작품 소갯글 ‘오구가 씌어지고 연출되기까지’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연극 <오구>는 4월 4~6일, 11~13일 까지 고양 어울림 극장에서 공연되며, 티켓가격은 효자효부석(VIP) 30,000원 으뜸자리(R) 25,000원 좋은자리(S) 15,000원이다. 공연문의 1577-7766.



태그:#오구, #이윤택, #강부자, #하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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