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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이데올로기라고 하면 어쩐지 딱딱하고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가 있다. 무어라 한 마디라도 하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신문을 읽어도 경제면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넘기기 일쑤다.
 
마침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공공연하게 시장주의를 천명하고, "경제를 꼭 살리겠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때 왜 세상 한켠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쓴소리를 듣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단연 좋은 선택이다.
 
이 책은 쉽다.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하는 형식으로 씌어져 있는데, 아주 다양한 예시를 들어가며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부터 시작해 환경문제를 거쳐 민주주의 문제까지 폭넓게 이야기한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안에 담긴 지식은 풍부하고 지적은 날카롭다. 녹색평론사에서 출판했는데 과연 종이도 재생지를 썼다. 저자, 출판사, 책이 모두 일관성을 갖추고 온전하게 만들어졌다.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우리에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비현실주의'라 치부하는 세태를 우려한다. 당장 고등학교 교과서만 펼쳐도 환경 문제가 나오지만 실제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이란 광기 속에서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쨌든 경제는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을 '현실주의'라 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이다' 하고 일축해 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타이타닉 현실주의'라는 조롱 섞인 호칭을 붙였다. 위험을 알면서도 빙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타이타닉과 같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성장 7%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몫이 7% 늘어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부(富)가 사회 계급에 골고루 분배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광기는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성장주의가 고층 건물들의 반짝이는 불빛과 컴컴한 빈민가를 함께 가져왔다는 것이다. 
 
성장주의자들의 논리는 언제나 '사회 전체 파이가 커지면 사회적 약자들의 몫도 함께 커진다'였고 이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강자의 파이는 약자의 몫을 착취해서 커지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추구할수록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자본주의가 악의를 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서구인들은 머나먼 땅 사람들을 강제노동으로 착취하며 엄청난 풍요를 누렸다. 그 천박한 자본주의는 식민주의, 제국주의라는 이름을 거쳐 경제발전론으로 변신했고, 마침내 세계화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우리는 세계화를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일까? 정말 경제성장은 꼭 해야 할까? 사람들은 어디서나 '세계화 시대', '경제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아이들 교과서부터 신문 방송까지 다들 그렇게 말한다.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어 사회 전체에 통하는 상식처럼 보인다.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획일적, 일방적 선전에 사람들은 비판의식을 상실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은 과연 진실일까?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짓말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수많은 '상식' 중에서 '거짓말'을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브레이크 고장난 열차처럼 치달리는 우리 사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세대는 일자리를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버지 세대는 일자리를 걱정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세대는 비정규직을 걱정한다. 신규고용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양극화가 OECD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은 더욱 절실하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고민하게 한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2011)


태그:#경제성장, #이명박, #자본주의, #세계화, #성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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