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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펼쳐진 시원한 바다 좀 봐?, 바다 가운데 작은 섬도 보이네, 그리고 이쪽의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모습이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멋진 풍경이잖아?"

 

"아, 정말 그러네, 절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던 봉우리에 오르니 이런 경치가 펼쳐지는구먼."

 

관음봉에 오른 일행들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리 높은 봉우리도 아닌데 바라보이는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곰소만으로 깊숙이 파고든 바다의 풍광과 함께 비좁은 골짜기를 푸른빛으로 휘감아 도는 호수의 물줄기가 정말 장관이었다.

 

지난 21일 서울을 출발하여 변산을 향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기 때문에 내소사 쪽으로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진입로가 있었다. 그렇지만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부안읍내를 거쳐 외변산을 끼고 바닷가를 달리는 길을 택했다.

 

황진이를 능가했던 풍류시인 이매창

 

"그리 급하게 서두를 필요 없잖아?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면서 한 바퀴 돌아가는 거야."

 

참 반가운 말이다. 여행은 급히 서두르면 재미가 없다. 여행의 묘미는 여유로움에 있기 때문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매창 시비에 적힌 시조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풍류기생 황진이를 능가했다는 이매창의 시비가 있는 곳인데 한 번 들어 가볼까?"

 

부안읍내를 통과할 때 일정에 전혀 없었던 곳을 들러 가자고 제안해 보았지만 모두들 그냥 가자고 한다. 당일 변산 등산이 계획되어 있어서 시간이 아무래도 촉박했기 때문이다.

 

이곳 부안출신의 여류시인이었던 이매창은 조선 선조 때인 1573년 부안의 현리였던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자라면서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고 시문과 거문고를 익혀 기생이 되었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인데 당시 이 지역 부안의 명기로 유명했다. 그녀는 시문이 출중하여 지금도 한시 70여 수와 시조 1수가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신분이 기생이었지만 오직 나이 스물에 만난 유희경이라는 사람만 사랑하고 정절을 지킨 여인으로 이 지방에서 400여 년 동안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매창은 유희경과 시를 주고받으며 한 때는 좋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좋은 시절은 잠깐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 유희경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시조의 한 구절처럼 배꽃이 마치 봄비처럼 흩날리던 어느 날, 살아 돌아온다고 기약 할 수 없는 전쟁터로 떠나간 것이다,

 

그녀는 안타까움과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조 한 수를 남겼다. 이 시조는 ‘가곡원류‘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이별가로서 최고의 절창(絶唱)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시조다.

 

 

후에 이매창이 죽자 가까운 사람들이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에 그와 가장 친근하게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어 주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이 봉덕리를 '매창이 뜸'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난 뒤에 그녀의 시가 책으로 간행되었다. 그녀가 쓴 수백 편의 작품 중에서 근동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고 있던 시 58편을 부안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시집을 발간한 것이다. 이 시집이 바로 <매창집>이다.

 

여류시인 매창의 유적을 돌아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조금 달리자 앞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 바다 저 건너편으로 뱀처럼 길게 이어진 둑이 바라보인다. 죽음의 바다 새만금 간척지였다. 미련 없이 지나쳤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안선의 멋진 풍경

 

곧 변산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철 이른 해수욕장은 쓸쓸하게 텅 빈 풍경이다. 차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달렸다. 왼편으로는 굽이굽이 변산 산줄기가 굽이쳐 흘러내리고 오른편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더구나 오목오목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선과 아담한 산들이 어우러졌으니 그 절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있는 사이 내소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평일인데도 몇 대의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들어와 있었다.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걷자 왼편으로 등산로 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길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위길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저 아래 좀 내려다봐? 저 아래 내소사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걸."

 

한참 올라가자 널따란 바위가 펼쳐져 있다. 바위 위에서는 골짜기의 내소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잠깐 쉬며 간식을 먹었다.

 

관음봉(능가산)에서 절경에 취하다

 

다시 걸어 첫 번째 봉우리에 올랐다. 이 봉우리에서는 육지 깊숙이 파고들어간 곰소만이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날씨가 아주 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썰물이었는지 곰소항 쪽으로는 염전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저 바다 건너가 선운사가 있는 고창 땅일 거야, 바다 가운데는 작은 섬도 보이는데 저렇게 작은 섬은 무인도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저 봉우리가 관음봉이잖아? 저 뾰족한 바위봉우리 도저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올라가지?"

 

바다를 바라보며 고창 땅을 가늠해보던 일행들이 방향을 바꿔 관음봉으로 시선을 돌리자 금방 지레 겁을 집어먹는다. 이 관음봉은 능가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봉우리다.

 

"저렇게 보여도 어딘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겠지."

 

일행들을 독려하며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일단 관음봉을 오른 다음 내소사로 내려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관음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급경사를 내려가야 했다. 가느다란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상당히 아슬아슬한 길이었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급경사인데다가 대부분 바위로 형성된 봉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산의 바위들은 미끄럽거나 날카롭지 않고 둥글둥글 하면서도 발을 내딛기가 아주 좋은 바위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은 다른 산에 비해 발이 아주 편한 느낌이었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멀리서 바라본 모습과는 달리 큰 어려움이나 위험이 없었다. 전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으로 숨겨진 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관음봉 정상에 올라서자 전망이 정말 일망무제로 툭 트인다. 곰소만과 서행풍경은 물론 골짜기를 굽이굽이 감돌아 저 멀리 주봉인 의상봉(509미터)까지 기막힌 절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관음봉은 해발 424미터였다.

 

"국립공원에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구먼. 산이 높지도 않은데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다니."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이루어진 산록은 굉장히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었다. 산의 높이에 비해 골짜기도 깊고, 더구나 숲과 암봉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아름답고 멋진 산이었다.

 

 

바다와 평야지대 사이에 자리 잡은 변산은 낮지만 결코 낮아 보이지 않고, 웅장하진 못해도 우람한 풍모를 자랑하고 있는 산이었다. 아름답고 멋진 조망을 둘러본 다음 내소사를 향하여 내려가기로 했다.

 

내소사로 가는 길에는 또 하나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지키고 서있었다. 철제 사다리를 이용하여 봉우리에 오르니 저 아래 골짜기의 내소사는 물론 훨씬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청련암이 산자락 안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모습이다.

 

아늑하게 자리 잡은 천년 고찰 내소사

 

내리막길도 경사가 급했다. 그래도 바위가 미끄럽지 않고 발을 내딛기가 편안하여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내소사 경내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어느 새 해가 많이 기울어진 오후여서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대부분 돌아간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웅전 앞에 이르자 독실한 불교도인 일행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은 대웅전은 고풍스러움과 함께 독특한 건축양식에 특히 천정과 문짝의 정교한 조각이 조선시대 최고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앞마당의 삼층석탑과 함께 ㄱ 자로 구부러진 소나무 아래로 올려다보는 대웅전의 모습, 그리고 그 뒤쪽 관음봉까지 포함한 풍경은 정말 어느 산수화가의 그림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내소사 정말 멋진 절이야. 저 고목나무  좀 봐? 또 저 범종각은 어떻고."

 

사물을 보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지만 그리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백제 시대에 최초로 세워졌다는 오랜 역사의 천년고찰 내소사는 기울어져 가는 석양빛 속에서 고즈넉함에 젖어들고 있었다.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사천왕문에는 두 눈이 부리부리한 광목천왕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얼어붙게 한다. 광목천왕은 들고 있는 칼이 아니라 설법으로 죄인을 벌주는 천왕이라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길은 그 유명한 전나무 숲길이다. 아직은 이른 계절이어서 짙은 숲 향에 젖을 수는 없었지만 조용한 사색에 젖어들게 하기에는 충분한 모습이었다. 일주문 가까운 곳의 숲에는 마침 피어난 노루귀 작은 꽃들이 올망졸망  귀여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능가산, #내소사, #관음봉, #의상봉, #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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