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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의 도를 즐기는 산이라더니 즐기기는커녕 사람 잡는 산이로구먼."

"조심들 하라고, 미끄러져 저 꼬챙이 위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나겠어."

"위험 하긴 해도 산세 한 번 대단하구먼, 속리산을 능가하는 멋진 산이야."

 

일행들의 평가는 제각각이었다. 도락산은 정말 위험한 산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웅장하고 아기자기한 산세며 기암괴석과 바위절벽 그리고 능선 길 소나무들의 모습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정말 아름다운 산이었다.

 

지난 11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다. 중부 고속도로를 달려 충주 시내를 거쳤다. 수안보를 지나 남한강 상류 호수를 굽이굽이 안고 돌아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상선암 마을에 도착한 것은 10시경이었다.

 

화툿장 똥피가 화장실 표지, 엽기야? 재치야?

 

도락산으로 오르는 마을 입구에 벌거벗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는 풍경이 늠름하다.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날씨는 포근했다. 입구 개울가에 있는 음식점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마을로 들어섰다.

 

"어 저게 뭐야? 웬 똥 껍데기가 건물 벽에 그려져 있지?"

 

엽기적인 모습에 모두들 신기해 한다. 마을 위쪽에 이르자 작은 건물 벽에 화투의 똥 껍데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히히! 저 건물 화장실이잖아! 그래서 똥 껍데기로 표시해 놓은 거고."

 

모두들 우하하하 웃어젖힌다.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정말 자세히 살펴보니 화장실 건물이었다. 그런데 밑에서 올라가며 바라볼 수 있는 건물 옆 바깥벽에 화투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저거 엽기다. 엽기!"

"아니야! 엽기가 아니라 재치다 재치. 아주 톡톡 튀는 재치 말이야!"

 

또다시 평가가 엇갈린다. 보는 시각이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리라.

 

등산로 입구 산자락에는 상선암이라는 작은 암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암자 앞에는 손바닥만한 동자상과 작은 불상이 세워져 있는 약수터가 있었지만 물이 말라 있었다.

 

 

아직도 떠나지 않고 웅크리고 있는 동장군

 

어느 집 마당에는 지난번에 내린 눈을 쓸어 모아놓은 눈 무더기가 아직도 수북하다. 산길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이 응달이어서인지 입구 골짜기부터 등산로는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미끄러운 빙판이었다. 포근한 날씨에 가버린 줄 알았던 겨울이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깐 더 올라가자 능선길이 나타났다.

 

양지쪽 능선 길은 햇볕에 마른 흙이 보송보송했다. 그러나 조금 더 걷노라면 어김없이 빙판길이 나타났다. 빙판길과 마른 길, 그리고 다시 빙판길이거나 눈이 푹푹 빠지는 길, 그렇게 이어진 길은 정상까지 계속되었다. 등산객들은 우리 일행들 외에도 백여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를 빌려 타고 온 산악회원들과 승용차를 몰고 개별적으로 오른 사람들이 뒤엉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올랐다. 능선 길에는 특히 바위와 소나무가 많았다. 능선 양지쪽을 향해 서 있는, 백 년 이상씩은 되었을 것 같은 굵고 붉은 적송들의 모습이 정말 기품 있고 멋진 모습이었다.

 

 

가파른 바위길에는 밧줄이나 철제와 나무를 혼합해 만든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끔씩 만나는 바닥에 설치한 나무 계단들이 문제였다. 통나무 두세 개를 구멍을 뚫어 그 구멍을 통해 땅속에 박아 넣거나, 땅속에 박아 받침으로 세운 철근들이 마치 쇠꼬챙이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그렇게 세워져 있는 철근들은 등산객들에게 아주 위협적이었다.

 

혹시 눈길에 미끄러져 그 위로 주저앉거나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뾰족한 철근은 그야말로 흉기가 되어 사람의 몸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통나무가 썩어 철근만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절경에 감탄하다

 

 

"히야! 이 산 정말 멋있다. 저 골짜기 건너 바위 절벽 좀 봐?"

"난 이 능선의 소나무들이 더 멋있는 걸, 저 소나무의 붉은 줄기 좀 봐? 척척 뻗어 내린 가지 하며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어느 산에서 또 볼 수 있겠어?"

 

그래도 산은 정말 멋지고 좋은 산이었다. 능선에서 쉬거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세는 정말 대단했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다가 불쑥 솟아오른 바위봉우리와 산자락을 타고 뻗어 내려간 바위절벽이 아찔한 모습이다. 그렇게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와 바위절벽이 장엄하고 경쾌한 느낌으로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다가왔다.

 

"경치고 뭐고 난 그냥 힘들어 죽겠는 걸, 송시열 선생이 유유자적 도를 즐기는 산이라서 도락산이라고 했다기에 여유 있게 오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든단 말이야."

 

사실 힘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길이 변화무쌍했기 때문이다. 빙판이나 눈속 산행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젠을 계속 착용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바위가 많은 산이어서 빙판이 아닌 곳을 아이젠을 착용한 채 걷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젠을 수시로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녹아내리고 있는 눈길을 걷는 경우가 많아서 다리에 긴장감과 너무 무리가 갔는지 근육통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쉬엄쉬엄 아름답고 장엄한 경치를 바라보며 걷다보니 신선봉이다.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정말 일품이었다. 안개 때문에 희미하긴 했지만 인근의 월악산은 물론 멀리 소백산까지 바라보이는 풍경이 정말 그만이었다.

 

어렵고 힘겹게 정상에 오르다

 

 

넓은 바위에는 수많은 등산객이 모여들어 준비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다. 높은 지역이었지만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포근하여 추위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산에 오르며 흘린 땀이 식는 느낌이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정상은 해발 964m라는 표지석과 함께 돌무더기가 있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제봉과 형봉 그리고 신선봉을 거쳐 오른 정상까지는 무려 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미끄러운 빙판길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상 돌무더기 옆에서 간식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하산 길에 나섰다. 하산은 삼거리 갈림길에서 채운봉과 '큰 선바위' 그리고 '작은 선바위'를 거쳐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힘들기는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한 길이었다. 오를 때보다 눈이 더 녹아 쭉쭉 미끄러지는 길은 더욱 위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어느 산악회의 여성등산객들은 여간 쩔쩔매는 모습이 아니었다. 내리막 빙판길에서는 아예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사고, 위험한 철근을 제거하라

 

그러다가 정말 사고가 나고 말았다. 저만큼 앞서 내려가던 여성 한 명이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다. 넘어진 여성은 옷이 많이 젖고 다리와 등 그리고 팔에 부상을 당했는지 찡그린 얼굴에 약간의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는지 다른 남성 산악회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 내려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저만하기 정말 다행입니다. 이걸 한 번 보세요. 만약 이 위로 넘어졌거나 주저앉았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바로 문제의 철근이었다. 나무계단 받침용으로 세워놓았던 철근이었다. 그 여성은 다행히 뾰족한 그 철근 옆으로 미끄러졌던 것이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끔찍한 사고가 될 뻔했던 것이다.

 

"아까 올라가면서 본 것들 하고 이쪽으로 내려오면서 본 것 모두 합치면 수백 개가 넘을 텐데, 저 철근들 다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등산객 한 사람이 정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떤 곳은 철근이 아니라 비슷한 굵기의 철제 파이프를 사용한 것들도 있었지만 위험하기는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미끄러운 길을 걸어 내려오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하산 길에서도 모두들 땀을 흘리고 있었다. 힘들고 긴장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들은 모두 무사히 상선마을 가산리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큰 선바위’와 ‘작은 선바위’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평범한 능선 길에 갑자기 그렇게 크고 칼로 베어내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의 바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인지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상선마을까지 내려오는 시간도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도락산을 오르고 내린 총 시간은 무려 6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눈이 녹아내리는 미끄러운 길이 아니었으면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 산행은 정말 스릴 넘치는 멋진 산행이었어."

"정말 그래, 이 도락산 전국 100대 명산 중에서도 보배 같은 산이야."

 

힘들고 어렵게 한 산행이어서 그랬을까? 모두들 만족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힘들었던 산행의 피로는 음식점에서 식사와 곁들인 맥주 몇 잔이 깨끗이 씻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락산, #재치, #쇠꼬챙이, #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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