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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일 불교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인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삼각산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이 낭독한 내용입니다. <편집자주>

땅, 물, 태양 그리고 바람은 생명의 본체입니다. 땅은 생명의 모태이고, 물은 생명의 약동이며, 태양은 생기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바람은 그 모든 것을 순환시키는 천지간의 호흡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것에서 비롯되었고 다시 이것으로 돌아갑니다. 이리하여 만물은 동근이고 동체인 것입니다.

 

땅, 물, 태양 그리고 바람은 넷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넷입니다.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입니다.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한반도대운하'에 '수몰(水沒)'될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순례에 나섰습니다. 단순히 대운하를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토의 근간을 허물고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생각조차 해서 안 될 일을 너무나 가벼이 여기는 우리네 삶을 성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순례가 단순히 대운하를 반대하기 위한 일이 아니어야 함을 절감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은 생명의 근원이자 문화와 역사의 토대였습니다. 미래를 향한 희망의 편지를 띄울 주소지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길을 따라 걸으며 강이 들려 준 얘기, 그리고 느끼고 꿈꾼 것들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신의 폭력'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물신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사교육비 때문에 서민은 빈민의 지경으로 내몰리며 가난의 세습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집값이 상식을 조롱하는데도 수수방관입니다. 집을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채 세채 집을 가진 몰염치한 투기꾼은 다수의 잠재적 투기 심리에 기대어 더욱 뻔뻔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돈의 노예가 된 우리 사회에 유포된 거짓 복음의 결정판입니다. 5년 정권을 위해서 국토의 근간을 허물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희망을 탕진하는 반경제적 도박입니다.

 

대운하는 경제를 빌미로 국민의 복종을 강요하는 신개발독재적 발상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대운하가 아니면 당장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청년 실업의 아픔마저도 대운하 건설을 강행하는 몰염치한 주장의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은 토건 사업으로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인 일본 경제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건설 회사의 최고 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성장을 통한 분배를 부르짖습니다. 이런 주장의 허구는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일본이 또 증명하고 있습니다. 허장성세이든 아니든 현재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돈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정의가 설 자리를 잃는다 했습니다. '삶의 질'을 내팽개친 천박한 자본 논리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동력까지 탕진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세계사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환경오염은 서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특히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전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환경 보호는 이제 하면 좋을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는 인권의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어떻습니까. 일시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전근대적 토목 사업을 벌여 마구잡이로 국토를 훼손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근시안적 발상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기후는 아열대성으로 변해갈 조짐이 짙습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는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칫 홍수에 대한 대비를 소홀이하면 전국민을 잠재적 수몰민화 할 공산이 큽니다. 홍수에 대비한 수위 관리가 예측을 벗어날 경우 운송 기능의 무력화는 물론 심각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재앙 수준의 홍수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취임을 전후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전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사 문제를 보면 국민 통합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역 갈등에 종교 갈등까지 얹어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운하를 고집하는 이유는 더더욱 알 길이 없습니다. 경제 살리기가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국토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극히 일부의 건설 회사와 투기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양새로 자승자박하여 다른 국정 수행 능력까지 떨어뜨리지 마시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교회의 장로이신 이명박 대통령은 '섬김'의 의미를 진정으로 새겨 봤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세치 혀의 정치 공학이라는 것을 대운하 강행 의지가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를 하는데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을 섬기겠다는 것인지요. 만약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까지 장악할 경우 민주주의의 후퇴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대의 기능은 선거 기간에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100퍼센트 예측이 빗나가길 바라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 '섬김'이라는 말은 과거 서울 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것처럼,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한 말잔치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당부하건대, 제발 선량한 국민으로 하여금 이런 졸렬한 의심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인류는 문명사적 전환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억지 춘향격이긴 하지만 대운하 논란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환경에 대한 의식의 전환, 민주화 이후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회적 연대의식의 회복 조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에너지가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 청년 실업, 공교육 정상화 같은 문제를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는 단초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속히 이명박 대통령은 21세기에 걸맞는 지구적 관점과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창조적 국정 운영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물신의 사제들이 전파하는 거짓 복음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대운하 계획은 백지화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좀 더 여론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새로운 애드벌룬을 준비하는 얕은꾀를 내지 말고 당장 백지화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은 수단시 되어서도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논란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고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물신 숭배는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표리의 관계를 이룹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생명 불감증 때문에 빚어진 재앙이었습니다.

 

환경은 물론, 문화, 역사,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도 대운하는 미망의 기획입니다. 천문학적 관리 비용은 둘째로 하고라도, 무용지물이 될 경우 훼손된 국토는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해야할 미래 세대의 고통은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한반도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온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고 말 대운하 계획은 이제, 봄 강물 위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대운하를 백지화 하겠다는 결정이 난다해도 우리는 생명의 강을 따라 계속 걸을 것입니다. 그 동안 강을 따라 걸으면 무시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풍광과 생명에 대한 경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율하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 보호 프로그램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일에 너무 서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청정해져야 국토가 청정해집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과 국토가 청정해질 때까지 순례는 계속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수경 "대운하는 신개발독재적 발상이다'
ⓒ 복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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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부대운하, #삼각산주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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